지수 이야기
포효하는 폭포
지수
꿈을 꾸었다. 거센 물줄기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면에 부딪혀 요란하게 부서져가는 물줄기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한때 존재했던 것들을 감싸안고 울부짖었다. 고막이 터질 듯한 우레같은 소리로 포효하는데, 온 대지가 뒤흔들리며 곧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았다.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생을 다하는 빅토리아 폭포 그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폭포수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나는 좀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폭포라는 경이로움을 빌려, 대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한 인간의 먹먹한 감정을 핑계 삼아, 살아오면서 묵혀왔던 모든 울음들을 쏟아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렇게 울부짖으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진짜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내 머리채를 붙잡고 물이 가득한 욕조에 반복해서 나를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물속에 들어갈 때마다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오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 엄마, 엄마, 엄마... 이렇게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애걸했지만 엄마는 정신이 나가 있었다. 어느덧 빅토리아 폭포의 우렁찬 폭포수는 샤워기의 쏟아지는 물줄기로 변해갔고, 나는 넓게 트인 대자연이 아니라 어린시절 우리집 미성아파트 101호 화장실 바닥에 있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 곳곳으로 도망치고 도망쳤지만, 저 먼 아프리카 낯선 나라 잠비아의 빅토리아 폭포까지 갔지만, 결국 또다시 여기로 돌아온 것이다. 스물아홉이나 먹고서도 바보처럼 엄마, 엄마, 엄마... 하고 울고 있었다. 그렇게 불러도 늘 오지 않았던 엄마를, 나를 몇 번이고 죽이려고 했던 엄마를, 나는 왜 놓지 못하는 걸까.
감고 있던 눈을 지그시 떴다. 꿈속에서도 나를 죽이려 했던 엄마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나를 또다시 버리려고 했던 그 알 수 없는 엄마가 내 눈앞에 있다. 이번엔 혼자 도망가려 했다.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가 있어?”
한밤중에 준원이랑 엄마가 떠났다는 말을 연이에게 전해 들었을 때, 연이가 잠결에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악몽을 꾸었나보다 생각하며 연이를 다시 재우고 방을 나왔다. 별생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안방 문을 열어 기어코 확인을 했다. 엄마가 없었다. 이상한 마음에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준원이도 없었다. 연이의 말대로 엄마는 떠난 것일까.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고 내가 제일 먼저 마음먹었던 것은 엄마가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엄마에게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승무원이 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런데 사실 나는, 세상 곳곳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는 것을 몇 번의 비행 후에 알게 되었다. 어디든 도망가 있어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그런 상태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애써왔건만, 이번엔 엄마가 먼저 선수를 쳤다.
엄마가 다시 돌아온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무엇을 하다 왔는지 흠뻑 물에 젖어있었다. 현관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서있는 엄마를 보니 기가 찼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엄마 없는 밤을 뜬 눈으로 지새며 별의별 공포에 휩싸였건만, 물에 홀딱 젖은 생쥐마냥 저렇게 애처롭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화딱지가 났다. 준원은 어디 갔는지 온데간데 없고 엄마만 덩그러니 있었다. 우선 엄마를 안에 들이고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분노가 점차 사그라들고 안정을 찾아가는 나를 느끼며, 나도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었어.”
“그냥, 밖에 바람 쐬러 나갔다 온 거야.”
“이 밤중에? 그걸 말이라고 해?”
대강 연이한테 전해들어 알고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사실은 느끼고 있었다. 준원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감했다. 엄마가 평생 짊어지고 살아왔던 죄책감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번 악몽을 꾸고 있다는 것도. 준원이 처음 왔을 때 준원을 향한 엄마의 눈빛과 표정,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보아하니 준원은 엄마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도 얼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와 이렇게 떠날 줄은 몰랐다. 과거의 상처가 있다지만 엄마는 너무 과거에 얽매여 있다.
“정말, 죽으려고 했던 거야?”
이불을 몸에 두르고 침대에 걸터앉은 엄마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는 뜻의 눈물은 결코 아니다. 평생을 그리워해도 곁을 내주지 않았던 엄마가, 저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손쉽게 내 앞에 앉아있는 것이 허탈했을 뿐이다. 엄마만큼은 절대 늙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가 죽는다면 나는 너무 억울할 것 같다. 엄마는 영원히 멋있게 살아있어야 한다. 평생 나에게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어야 내가 마음껏 미워할 수가 있다. 일단, 저 모습은 아니다.
“죽다니....... 아니야, 내가 너를 두고 왜 죽어.”
“나 다 들었다고. 연이가 다 들었대. 한강에 갔다며! 이 밤중에 갑자기 한강을 왜 가! 그것도 가방까지 바리바리 싸서. 왜! 그애랑 같이 한강에 뛰어들려고라도 했어?!걔는 어딨어? 같이 나갔는데 왜 엄마 혼자만 돌아왔어!”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는 엄마를 보자, 울분이 터졌다. 늘 이런 식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침묵과 모르쇠로 일관했다. 엄마는 내가 울고 있을 때 한 번도 무슨 일이냐고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어쩔 땐 제발 좀 알아채달라고 울음을 애써 안 숨겨본 적도 있었다. 내 울음을 보고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도로 문을 닫고 나가는 엄마의 모습에 심장이 쿵 내려앉던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리며, 엮이고 싶지 않은 듯 나는 모르오하는 경멸스러워하는 그 표정을 기억한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살아가다 이렇게 불쑥불쑥 떠올라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눈빛. 딱 그 눈빛으로 엄마는 앉아있었다.
“진짜 왜 그래, 왜! 왜 엄마는 자꾸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 왜 자꾸 나를 혼자 두고 나가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너는 잘못한 거 없어.”
“그럼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데!”
“아니야, 지수야. 엄마는 너를 미워한 적이 없어.”
됐다. 내가 엄마랑 무슨 말을 하겠어. 엄마는 지난날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의 상처에 영원히 갇혀, 주변에서 그동안 무슨 일들이 피어나고 사그라들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진짜야. 오히려 불안했어. 너도 영영 사라질까봐.”
“뭐?”
“소중한 것들을 잃어보니까 알겠더라고. 그것도 내 손으로, 그 손들을 내가 전부 놓아버렸으니까. 엄마는 그랬어. 간절한 꿈이 있었으면서도, 죽고 못사는 친구가 있었으면서도,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왔었는데 비겁하게 도망쳤어. 맞을까봐, 그 무서움이 제일 컸거든. 그런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없었어. 그게 엄마야. 무서우면 저항하지 못하고 뭐든 바로 놓아버릴 수 있는 사람. 소중한 누군가를 또 내 손으로 놓을까봐 그게 무서웠어.”
“비겁한 변명이야. 엄마는 이제 힘없는 어린아이가 아니야.”
“나도 알아. 맞아, 변명이지, 그건.”
“이제 좀 벗어나. 그 사고는 엄마잘못이 아니야. 엄마가 같이 따라가지 않아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고. 그건 배신한 것도, 비겁한 것도 아니야. 그냥 우연히 그날 사고가 났을 뿐이야.”
웬일인지 엄마는 그동안 삭혀왔던 상처들을 조각조각 꺼내기 시작했다. 침묵에 싸였던 케케묵은 사연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며, 엄마는 생각보다 담대한 모습으로 그것들을 읊조렸다.
“오늘 한강에 간 건 맞아.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그려왔던 곳이 있어. 옛날에 그곳에 정말 갈 뻔했는데, 용기가 없어서 포기했지. 오늘 다시 갈 수 있다길래 따라가봤는데, 그게 한강 속에 있다네. 강에 뛰어들면 그 속에 꿈의 섬이 있다나 뭐라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래, 말도 안 되지. 그래서 그냥 왔어. 그리고 오면서 깨달았어. 강물에 지수 자꾸 네가 보이는 거야. 아, 나는 너를 두고 떠날 수가 없겠구나. 지수야, 너는 그런 존재야. 엄마가 다시 한번 꿈을 포기하게 하는 힘. 그런데 이건 비겁함은 아니었어. 꿈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거야. 지수 너는 떠나지 않을 용기를 엄마한테 주었어.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꿈보다 더 소중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고.”
뒤에서 살며시 문이 닫히는 인기척이 들렸던 것도 같은데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다정하고 솔직한 모습이다. 이 낯섦이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아, 그냥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다. 곧, 현관문이 조용히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 듯했으나 잘못 들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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