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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일호 Mar 20. 2021

도대체 그는 룸스프레이를 두 번 뿌린걸 어떻게 아는거지

감각에 예민한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프롤로그에서 나눴듯이 그와 나는 참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첫 번째 에피소드를 고민하던 찰나, 불현듯 그의 질문이 떠올랐다.



혹시 룸스프레이를 두 번도 세 번도 말고 한 번만 뿌리는 건 어때?




도대체 이 남자는 내가 룸스프레이를 두 번 뿌린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렇다, 그는 감각에 예민하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오감이 나보다 발달된 것 같다. 같은 떡볶이를 먹어도 그 안에 들어간 미세한 재료 차이를 알아내는, 자긴 항상 그곳이 아프다며 등과 어깨 사이 어딘가의 근육을 풀어주는, 볼에 조금이라도 살이 붙으면 웃으며 우리 와이프 좀 더 동그래졌네 놀리는 그런 사람이다.


그에 반해 나는 상대적으로 감각에 무딘 사람이다. 실은 내가 그런지도 몰랐다. 그와 함께 살기 전까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인지 알고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화이트 초콜릿 맛이었고, 어느 날 무릎에 멍이 들었는데 어디서 생긴 건지도 몰랐다. 장점도 있다. 어떤 음식을 해줘도 맛있게 잘 먹고, 어떤 소리에도 잘 안 깨고 잘잔다.




누가누가   찾나, 시각적 디테일


그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그려야 하고, 비슷해 보이는 스케치 안에 다양한 형태를 연구하는 디자이너이다. 그러다 보니 시각적인 디테일에 점점 더 집착할 수밖에 없다. 그는 간혹 나에게 A안과 B안 중 무엇이 더 낫냐고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가끔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말 그 차이를 모를 때가 있다... 나도 일할 때엔 픽셀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단번에 찾아내는 디자이너지만, 그를 이길 수는 없다. 청첩장을 만들 때에 더 디테일하게 검수하고 수정을 요구했던 것도 남편이었다.




냄새와  


앞서 얘기한 그의 질문처럼 그는 후각에도 예민한 듯하다. 향수도 항상 쓰던 것만 쓰고, 내가 향수를 바꾸면 금방 알아차린다. 본인의 향수는 마음에 들면 바꾸지 않고 몇 번째 하나만 고집하는 스타일이다. 최근에는 화장실에 룸스프레이를 두 번 뿌린 적이 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얼마 뒤에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향이 너무 세다고 혹시 한 번만 뿌리면 안 되냐고 하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아챈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향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요즘 내가 빠진 인센트 숲 향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예전엔 왜 향을 피우냐고 했는데, 이젠 종종 자기가 먼저 불을 붙인다.




세심한 그의 입맛 


그의 취미는 요리다. 외국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스스로 요리할 일이 많다.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의 레시피를 찾아보고, 재료를 구하고, 직접 요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콩나물 불고기, 김치찌개, 대구탕, 찜닭, 청경채 된장국 등을 먹을 수 없다. 우린 매일 저녁 같이 요리한다. 하지만 그가 메인 셰프다. 불 앞에 있는 사람이 메인이지 않는가. 그는 레시피를 보긴 하지만 재료만 확인하고, 주로 본인의 방법대로 요리한다. 그리고 그게 맛있다.




처음엔 어떻게 그가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나 궁금했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그리고 그의 요리를 매일 먹어본 결과, 그는 세심한 입맛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준 양파절임의 맛을 기억하고, 그 맛을 찾아 설탕, 액젓, 매실액, 국간장, 참기름 등 자신의 비율대로 섞는다.


예민한 오감을 가진 남편과 사는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미각에서 오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도 수색대 출신이지만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한 그의 촉각적, 청각적 세심함을 느끼며 매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와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 않을까.


최근 우리 둘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대학 친구가 물었다. 둘은 연애도 길게 했고, 같은 분야에서 일하기도 하니, 서로 다른 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지 않냐고. 단칼에 아니라고 답했다. 이번 달에 만 9년이 되는 우리지만 알고 지내면 지낼수록 더 다른 점이 많이 보인다. 그 친구는 최근 연애를 하면서 너무 다른 상대를 만났고, ‘이렇게 달라도 되는 걸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로 너무 달라 함께 살기 힘든 관계도 분명 있겠지만, 난 감히 달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히려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 분명 나와는 달라서 그 사람이 좋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오랜만에 먹는 나물밥에 비벼먹을 간장소스를 순식간에 만들어 주는 그의 미각적 세심함이 좋다던지, 꿈을 자주 많이 꾸는 그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해주는 실없는 꿈 이야기가 재밌다던지, 그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모여 나의 결혼 생활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새삼스레 깨달았다.



많은 부부들이 처음엔 자신과 다른 상대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그 다름에 지치기도 한다. 우리 역시 그런 다름으로 인해 서로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그럴 때마다 자신의 방식이 맞다고 당연스레 믿고 상대방에게 강요할 때도 많다. 하지만 금세 깨닫는다. 그냥 다르다고 인정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서로를 못살게 구는 걸까. 누구 좋자고.




사랑한다면 그냥 인정하자 우리의 다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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