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관심사도 닮아가는 관계
대학교 졸업 전시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10대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 아주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요즘 졸업 전시를 준비하느라 너무 바쁘다, 밤도 자주 새운다, 같이 수능 공부하던 때가 훌쩍 지나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니 세월 참 빠르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여운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물었다.
너가 원래 자동차를 좋아했었나?
혹시 남자 친구 따라
자동차 좋아하는 건 아니지?
너가 진짜 좋아하는 게 이게 맞는 거지?
그 친구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척 대답하면서도 속으론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에이 아냐~ 나도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 엄청 좋아했었어!”라고 답했지만 실은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같은 걸 되물었다. 내가 정말 자동차를 좋아하고, 자동차 UX를 아니면 인테리어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싶어서 이 주제로 대학 졸업 전시를 했을까?
아주 어렸던 시절 아마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도 되기 전이었다. 나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는 걸 참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나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빈 틈에 엉덩이를 넣고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는 걸 참 좋아했다고 엄마가 훗날 얘기해 주셨다.
이 차는 어떻게 생겼는지, 저 차는 어떤 브랜드인지 맞추는 걸 좋아했던 그 꼬마가 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빨리 커서 차를 운전해야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차를 사야지 정도만 생각했다.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도 차를 좋아하셔서, 자연스레 차의 다양한 브랜드나 대중적인 모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관련된 일을 꿈으로 삼진 않았다. 그저 자연스레 관심이 갔고, 차를 잘 모르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다양한 차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와서 그를 만나고 나선 자연스레 많은 대화가 차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산책도 주차장에서 하길 좋아했다. 어느 날은 주차장에 벤틀리 GT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감탄을 하며 그 차를 360도 돌아가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림으로만 보던 차를 실제로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게 너무 신기하다며, 빤히 관찰했다.
우리 커플에게는 ‘자동차’ 그리고 ‘디자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였다.
친구 집에 있던 RC카가 너무 부러웠던 어린 소년은 그 친구 집에 매일 놀러 갔다고 한다. 부모님께 사달라고 부탁도 해보고 떼도 써봤지만, 사주시지 않았다. (주륵)
그랬던 그는 고등학교 때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우연히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일본인 자동차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엔조 페라리를 디자인한 켄 오쿠야마였다.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유명한 자동차 디자인 스튜디오인 피닌파리나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일과 일상을 담은 다큐였다. 푹 빠져버린 그는 처음으로 무언가가 간절히 되고 싶었다. 무조건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공부하라던 부모님과 사회의 기대 속에서만 자라온 그에게 처음으로 주체적이고 진지한 장래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부모님께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하지만 고2 이과생이었던 아들을 갑작스럽게 입시 미술 학원으로 보내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았다. 결국 그는 미술 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원래 하던 입시 방향대로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래도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학교 산업 디자인과에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인 교수님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 기초부터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이렇게 자동차를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자동차의 외관 디자인을 사랑하는 그는 지금도 스케치를 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다. 그에게는 이 일이 주중 업무 시간에만 하는 ‘일’이 아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다.
흔히들 서로 사랑하면 닮는다고 한다. 거울효과 때문일까. 내 얼굴보다 상대방의 얼굴을 더 많이 자주 보면서 웃고 울고 화내기 때문일 것이다. 30년 넘게 함께 살고 계시는 우리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자연스레 표정과 인상이 닮아지신 걸 느낄 수 있다.
관심사도 그렇다. 상대방의 관심사를 더 자주 보고 접할 일이 많아진다. 평생 미술관을 다니지 않던 사람이 상대방에 맞춰 매주 미술관에서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매달 축구장에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보러 간다. 심지어 여자 친구 따라 교회에 가던 한 선배는 본인이 여친교라고도 했다.
연애할 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가 즐겨보는 자동차 리뷰어들의 유튜브도 더 찾아보고, 그도 나를 따라 미술관에 올 때가 있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연애라는 관계는 서로의 얼굴도 관심사도 더 쳐다보게 만든다. 하지만 뭐든 적당히가 좋다. 그리고 쌍방의 흔쾌한 합의가 전제조건이다. 간혹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춘다던지, 도가 지나치게 이를 요구하거나 요구당하는 관계를 본다. 그런 관계는 감히 위험하다고 말해본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가 좋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와 관심사가 더 닮아갔다. 대학 졸업 전시 때는 같은 큰 주제 아래서 함께 프로젝트도 했다. 그치만 아예 같은 관심사는 아니다.
그는 차의 외관에서 오는 아름다움, 비율과 볼륨에서 오는 직관적인 미에 관심이 많다. 나는 반대다. 내부에서 이를 타고 있을 사람에게 더 관심이 많다. 나는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무엇이 그 사람을 행복하거나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일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종종 “언니, 우리 커플은 같이 좋아하는 게 없어서 걱정이에요. 관심사를 맞추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어보는 동생들이 있다. 물론 공통 관심사를 열심히 찾아보거나, 상대의 관심사에 도전해 보는 것은 매우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심사가 꼭 일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 질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닐까. 서로 닮고 싶고, 같이 하고 싶은 그 마음이 참 예쁜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당신은 요즘 관심사가 있나요?
그 관심사를 열렬히 나누고픈
누군가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