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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13. 2022

소설 <4 개 월>-1

 ⓵ 신우염

정수에게 소변줄과 링거가 매달렸고 링거에는 항생제가 들어갔다. 세 시간이 지났지만, 정수가 달달 떤다. 열이 내리지 않는다. 숨이 당장이라도 넘어갈 것 같다. ‘이대로 가시는 게 나아.’, ‘아니야. 내가 힘들어서 하는 생각이야.’ 혜영의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뉜다.     


정수가 기력을 잃기 시작한 건 2014년 후반기. 여든아홉이었지만 그때까지 기력이 좋아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실 정도였다. 그런 정수가 교회에 발길을 끊었고, 말수가 줄었고, 입맛을 잃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모든 게 갑작스러웠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라 진단했다. 치료 약을 먹었지만, 점점 야위어갔고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개학을 앞둔 혜영의 마음이 불안했다. 퇴직을 생각했지만, 방학이 있으니 정년퇴직까지 어떻게 버텨보자고 마음먹었다. 죄송한 마음으로 여행을 생각했다. 은경이가 크게 마음먹고 함께 나섰다. 여름 휴가철도 아닌 데, 무려 일주일의 휴가를 냈다. 월급은 다른 곳의 반이지만, 이유 있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경쟁이 아니라 서로 돕는 회사에 다니는 덕을 본다. 그 작고 가난한 회사는 3년에 한 번 한 달 안식 휴가를 제공할 만큼 별나다. 사정을 말하니, 회사 동료들이 10만 원을 모아 건네주기까지 했다.


-건강하셨을 때 이렇게 여행할걸. 죄송해요.

-무슨 소리. 나는 항상 좋았어. 너희들이 있어서 충분했어.

-할머니. 정말 후회가 없어?

-응. 후회가 없어. 그래도 오늘 이렇게 온건 정말 좋아. 근데 이걸로 족해. 정말이야.    


처음엔 온천 여행을 생각했다. 실내 온천은 재미가 없고, 야외온천은 정수에게 무리였다. 과감하게 생각한 게 제주도였다. 정수가 순순히 응했다. 김포공항까지 택시, 공항 휠체어 사용, 예약한 렌트카로 호텔로 갔다. 급할 게 없었다.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호텔의 바다 조망, 호텔의 조식 뷔페.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왔다. 이제껏 해보지 않은 일생 최고의 사치에. ‘비쌀 텐데’라고 입을 떼긴 했으나 정수는 자세히 묻지도 마다하지도 않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옥색, 검은색, 청색 바다에서 정수는 눈을 떼지 않았다. 간간이 보이는 청노랑 귤, 한라봉, 레드향 등등이며, 핏빛처럼 붉은 동백꽃을 보며 ‘아유 저것 봐라~’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돌이 많을까! 저 말들 봐라~’ 정수는 기꺼이 바깥 경치를 누렸으며, 통갈치조림이며, 몸국, 그리고 고등어 조림에 대해 비싸다고 사양하지 않았다. 혜영이와 은경이 가자는 대로 갔고, 하자는 대로 했다. 카페에서 아이스크림 가격을 묻고서도 순순히 아이스크림을 떠먹었고, 맛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행에 순순히 따라나선 것도, 온갖 사치를 마다하지 않는 정수가 혜영이와 은경이에게는 의아했다. 그러다가 기왕에 따라나선 여행에서 혜영이와 은경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변덕스럽다는 제주 날씨가 일주일 동안 맑은 건 기적 같았다.

돌아오는 길 공항 정수를 휠체어에 태우고 면세점에 갔을 때였다. ‘너희들 선글라스 쓰지?, 그걸 하나씩 사. 아무 말 말고. 그거 아니면 너희 사고 싶은 거 뭐라도 사.’ 정수가 바지춤에서 자그마한 지퍼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무려 쉰 장을 꺼냈다. 혜영이와 은경이가 깜짝 놀라 잠시 멈칫했고, 둘이 눈을 마주친 후 그 돈을 받았다. 정수 앞에서 선글라스를 이것저것 써보며 연출했고, 생전 처음 소위 명품 선글라스를 하나씩 손에 쥐었다. 정수가 그 돈을 다 쓰라고 한 것이다.


-어머니. 피곤하셨지요? 어서 쉬세요.

-나야 좋은 구경 해서 좋았지. 네가 애썼지. 근데 잠깐 여기 앉아봐. 피곤하겠지만 꼭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어차피 방학인데요.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많이 생각해봤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 이제 나 요양원에 보내줘, 너 방학 동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알아봐.     


공휴일이면 혜영이와 은경이가, 그리고 그보다는 조금 뜸하게 성태 가족이 정수의 요양원을 찾았다. 그때마다 정수는 환한 얼굴로 맞아줬다. 성태가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가면, 정수는 손뼉을 치며 몸을 덩실거렸다. 방학이 되면 혜영은 어김없이 하루 한 차례 정수를 찾았다. 요양원 근처의 맛집을 가면 정수는 별로 먹지도 않으며 맛있다고 말했다. 어느 봄날에는 혜영이와 은경이는 김밥과 과일을 싸고 성태네는 정수가 가장 좋아하는 교촌에서 치킨을 사서 옅은 초록 잔디가 있는 공원에 갔다. 그곳에서 성태의 아들들이 어설프게 공을 따라다니다가 넘어졌고 정수는 깜짝 놀랐다가 조금 후에는 웃었다. 더운 여름날엔 카페에 가서 빙수 혹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성태네가 정수의 요양원을 찾는 날이면, 두 어린 것이 ‘하파함머니’라 부르며 정수 무릎 위를 기어올랐고, 정수는 ‘우리 강아지’라며 어린 것들 궁둥이를 두드렸다.     

혜영이의 수업이 끝나지 않았을 때, 주머니에서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수업을 끝낸 후 핸드폰을 확인하니 발신자가 요양원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네. 안정수 할머니 며느리입니다. 아까 전화하셨던데.

-네. 할머니가 침대에 앉으신다는 게 그만 바닥으로 넘어지셨어요. 이곳에 오시는 의사 선생님이 왔다 가셨는데

별 이상은 없대요. 약간 부으셔서 약을 발라드렸어요.    


힘없이 누워있는 정수의 얼굴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혜영은 자신의 낯익은 감정을 읽었다. 만사를 포기하고 싶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듯한 무력감. 함께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정수는 아프지 않다는 의미로 말 대신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나 등에 혜영의 손이 닿자, 정수가 움찔했다.


-식사를 안 하시려고 해요

-어머니. 식사는 하셔야지요. 여기서 영양주사는  놔주실 수 있지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던 정수가, 혜영이 영양주사 이야기를 하자, 신경질적으로 주사를 거부했다. 아주 완강했다. 영양주사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그날이 정수가 ‘혼자’ 걸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정수의 통증은 서서히 가라앉았으나 그 일이 있고 나서 요양원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정수 혼자 다녀서는 안 되다고 했다. 움직이려면 침대 난간에 달린 벨로 간병인을 불러야 했다. 야간을 위한 간이식 변기가 침대 옆에 놓였다. 정수는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았다. 간병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다. 얼마 후 정수는 종이 팬티를 입었고, 수치심을 느꼈고, 극도로 조심스러워졌다.     

정수의 기력이 하루하루 달라졌다. 엉덩이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요양원 밖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정수가 느끼는 엉덩이의 무게에 비례해 혜영이 마음의 무게도 덩달아 무거웠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질 때마다 혜영은 정수가 빨리 세상을 뜨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수는 자신은 잘 있으니 괜히 힘들게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혜영이가 ‘어머니~’하고 부르면 예외 없이 정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요양원에 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혜영은 고려장을 지내고 오는 심정이었다. 3년이 지났음에도 익숙해지기는커녕 갈수록 괴로워질 뿐이었다.     

2018년 11월. 예년보다 독감이 일찍 유행한다는 뉴스가 있고 나서 얼마 후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독감 유행으로 면회가 금지된다는 연락이었다. 혜영은 자신을 기다릴 정수를 생각하며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는 걸 느끼며 불안했다. 토요일 아침, 혜영이 외로울 정수를 생각하며 밀린 집안일을 하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요양원이었다. ‘면회 금지가 풀렸나 보다’ 생각하며 받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안정수 할머니 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아요. 열이 너무 높아요. 거의 의식이 없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나요?

-보통 가까우니까 경찰병원에 가시곤 해요.     


신우염이었다. 정수는 전신을 떨었고, 특히 가느다란 팔을 심하게 떨었다. 숨을 할딱거렸고 눈을 뜨지 못했다. ‘얼마나 힘드실까? 외로우실까?’ 그냥 편히 가시는 게 더 좋을 만큼, 차마 보지 못할 정도로 가여웠다.

그러나 가여운 정수는 열흘 만에 퇴원할 수 있었고 요양원으로 돌아갔다. 한 달이 채 안 되어 같은 일이 곧 반복되었다.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다시 퇴원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더 자주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10개월 남은 정년퇴직을 앞당길까, 생각했지만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오늘 세 번째로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을 때, 혜영은 어쩔 수 없이 더 큰 피곤과 부담을 느꼈다. 치료비와 간병비가 요양원비 외에 별도로 지출되는 게 부담이었고, 사설 구급차를 부르는 일도 번거로웠고, 더구나 같은 일이 반복될 터였다. 요양원에서 이번에는 어려우실 거라며 종합병원 아닌 노인 병원을 제안했다. 요양원 쪽에서 먼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혜영이 차마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노인 병원을 검색했다. ‘실버행복의원’ ‘서울시 최초의 노인치매병원’, ‘신경정신과로 출발’, ‘노인환자만 10년 이상 치료해온’ 병원. 빨간 벽돌 건물로 단정해 보이는 건물 외관이 안정감을 주는 듯했다.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 모시러 오신다고 하니 훨씬 피곤함이 덜어졌다. 사설 구급차를 부르는 일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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