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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14. 2022

소설 <4 개 월>-2

⓶ 실버행복의원

은경이가 동교동 회사 사무실을 나섰다. 송파역 2번 출구로 나와 사방을 둘러보았다. 날은 추웠지만 해는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같은 송파구인데, 은경이 사는 문정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도로의 폭이 널고 깔끔한 고층 아파트가 늘어서 있다.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도 가로수 위의 새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하다. 정수가 입원한 곳이 깔끔한 동네라서 마음이 편하다. 카페와 빵집, 과일가게와 동네슈퍼가 나오고 놀이터가 나왔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아한 5층 단독건물이 아이들이 없어 서글픈 놀이터를 바라보며 서 있다. 입구로 들어서니 바로 엘리베이터가 있다. 4명 정도 탈 수 있을 정방형 엘리베이터. ‘의식이 없는 할머니를 어떻게 이곳으로 모셨을까? 엄마 혜영이도 할머니 정수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해본다. 4층에 내리니 병원이 아닌 계단식 빌라 같다.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열리면서 간병인으로 보이는 분이 맞아준다. 병실도 마치 아파트 거실 같다. 그곳에 침대 예닐곱이 있고 그 위에 환자들이 눕거나 앉아있다. 커튼이 문을 대신한 화장실이 있고 그 반대편에 자그마한 소파도 있어, 몇몇 분들이 앉아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정수와 혜영은 없었다.


-안정수 할머니 손녀딸인데요.

-아~ 네. 안정수 할머니는 이 방에 계셔요.


자신을 간병인이라 소개한 분이 유리창이 있는 별도의 출입문으로 안내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상한 소변이 풍기는 악취가 진동했다. 세 개의 침대가 있고, 출입문 맞은 편에 정수가 누워있다. 엄마 혜영이 보호자 의자에서 일어선다. 다른 두 환자는 84세의 할머니와 40대의 건강하게 보이는 젊은 여자다. 두 분 다 스스로 걸어서 거실 병실 밖으로 나간다. 정수만이 짙은 황갈색 소변이 담긴 소변 주머니를 달고 있다. 역한 소변 냄새는 정수의 것이다. 정수는 잠을 자는 건지, 정신을 잃은 건지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열이 높아서 몸을 달달 떠시더니, 조금 전부터 안정이 되셨어. 너무 안쓰러워 볼 수가 없어서 영양제를 놔드렸더니 효과가 있는 건지.

-우리 할머니 영양주사라면 펄쩍 뛰시는데, 의식이 없으시니, 별수 없으셨네.

-엄마. 할머니가 움직이시는 것 같은데?


정수는 남편과 어린 아들과 딸과 함께 기차를 타고 백천 시부모님께 가는 중이다. 서울로 되돌아오면 남편의 새 직장 문산제일고등학교 근처에 마련한 집으로 이사하기로 되어있다. 볕이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유리창, 토마토와 가지, 그리고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텃밭을 상상하며 정수는 마냥 들떠있다. 그때였다. 꽝!!! 굉음이었고 사방은 암흑이다. 이제껏 곁에 있던 남편이 보이지 않고, 아들도 딸도, 사람이라곤 어디에도 없다. 사방은 회색 벽으로 바뀌었고 벽 넷이 각각 정수 앞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천정은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정수는 곧 뭉개져 버릴 것이다. 너무 무서워 절로 눈을 감았다. 회색 벽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방이 트인 마당에서 정수가 앉은 채 오줌을 누고 있는데 인민군들이 나타났다. 일어나려는 데 오줌이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이 크지만, 수치심이 더 크다. 움직일 수도 없고, 숨을 데도 없다. 행히 누군가가 정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혜영이와 은경이가 있었고, 누군가와 정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통증이 생기면 그걸 없애는 주사가 있을까요?

-네.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 우리 할머니, 눈 뜨셨네.

-어머니. 정신 차리셨네요.

-혜영아. 아버지 어디 가셨어?

-아버님이요? 아~ 잠깐 나가셨어요. 곧 오실 거예요.


혜영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렇게 말을 했다. 아버님, 어머니 정수의 남편, 혜영이는 한 번도 아버님을 본 적이 없다. 1953년에 돌아가신 분이다. 살아있다면 혜영의 시아주버님이 되었을 정수의 큰아들이 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앓아누웠다가 아들을 따라가신 분. 어머니가 그 아버님을 찾는다. 정수는 시제 감각이 없는 것이다.


-은경아. 네 큰아버지, 아빠, 고모, 다 안 들어왔어?

-아~ 금방 오실 거야.     


은경이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할아버지, 큰아버지, 고모를 잊지 못하는 할머니가 가엾다. 기억에도 없는 아빠를 마치 잠깐 나갔다 돌아오는 존재로 말하고 있는 자신과 엄마 혜영이, 그리고 성태가 문득 가엾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빠‘라는 존재가 그립다.     

‘아빠!’ 그저 남들처럼 불러볼 수 있다면. 엄마 혜영은 ‘여보!’, 혹은 ‘성태 아빠’, ‘은경이 아빠’ 하고 수도 없이 불러보고 싶었을 것이다. 느닷없이 아빠의 부재를 느끼며 우울했던 날들이 있었다. 엄마가 침묵하는 날들이 있었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이 컸으리라. 철이 들고 나서 남편 없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아빠의 부재에서 오는 설움이 줄었다. 타인을 향한 사랑이 커지는 그만큼 자기 안의 욕망이 준다는 걸 그렇게 알게 되었다. 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힘들게 살거나 힘든 사람들의 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면서도 은경이 안의 이런저런 욕망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옷가지며, 자질구레한 소품들을 사들이면서도 채워지지 않던 마음속 구멍이 메워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부족한 게 많음에도, 물질이 풍족하지 않음에도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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