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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16. 2022

소설 <4개월>-3

⓷지난 역사


혜영은 성태 가족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 마침 방학이었지만 광주 처가에 있다가 혜영의 연락을 받고 출발했는데 1월의 초저녁은 이미 캄캄하다. 혜영은 병실에 오래 있었기에 바깥 공기가 그리웠다. 병원 옆 편의점에서 손자들의 저녁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고르려는 데 마땅치가 않다. 늦어져도 저녁은 집에 간 다음 먹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나나 두 개를 샀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은경이와 성태네가 함께 마실 커피를 주문한 채, 창밖을 내다보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궁리한다. 사실 궁리할만한 게 도무지 없다. 돌아가시는 건 시간문제다. 상속받을 재산도, 장례 절차를 의논해야 할 일가친척도 없다. 혜영이, 성태네와 은경이가 유일한 핏줄이다.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꽁꽁 언 땅 위에 서서 정수가 거센 바람에 맞서 앞으로 걷는다. 등에 봇짐을 메고 한 손에는 보따리를, 또 한 손에는 어린 아들을 잡은 정수의 자그마한 몸이 안간힘을 쓴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질질 끌려간다. 울음조차 삼키는 어린 것이 정수 마음을 찢는다. 그 뒤에서 뼈만 앙상한 마른 체구의 정수 시어머니가 손녀딸을 업고 꿋꿋하게 걷고 있다. 그때 한쪽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정수야~” 친정엄마가 누군지 모를 어린아이를 업은 채 쓰러져있다. 장면이 바뀌었다. 정수는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땅을 아무 연장도 없이 맨손으로 파고 있다. 엄마를 묻고 있는 손이 곧 피로 물들었다. 정수는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가 정수를 잡아 흔든다.     


-할머니. 꿈꿨어?

-은경아. 여기가 어디야? 집으로 가야지.    


‘할머니는 요양원에서의 삶을 기억에서 지웠을까?’ ‘할머니가 가자고 하는 집은 어디일까?’, ‘어릴 적 살던 백천 집?’, ‘시댁 백천 집?’, ‘할아버지와 행복한 날을 보냈던 남산 과학관 사택?’, ‘문산제일고등학교 근처 텃밭을 꿈꾸던 그 집?’ ‘우리와 함께 살았던 집들?, 문정동 아파트?’ 정수가 은경에게 들려준 이야기에는 집들과 얽힌 사연들이 빼곡했다. 문이 세 개나 있던 백천의 친정집에서 정수는 유복자였으나 가산은 부족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살뜰한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땅에 내려놓지 않으셨다고. 삼국지, 흑진주 같은 소설들을 읽으셨고 자기에게도 들려주셨노라고 했다. 세라복을 입고 동덕여자중학교에 다닐 꿈을 꿨다고도 했다. 큰아버지의 반대로 가지 못했다고, 아버지가 없는 설움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고도 했다.

집으로 가자던 정수는 어느새 꿈속으로 들어가 계속된 여행을 한다. 은경이가 생각해내지 못한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 청남초등학교 뒤편 피난민 수용소에 정수는 와있다.


딸아이가 고통스럽게 수용소 바닥을 기고 또 긴다. 그러다가 벽에 부딪힌다. 온몸에 잔뜩 부풀어 오른 물집과 열로 뻘겋게 된 몸이 괴로운 게다. 그리고는 움직임이 멎었다. 아이는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졌다. 이번엔 너덜너덜해진 옷을 입은, 사라졌던 남편이 나타난다. 남편에게 안겨 흐느껴 운다. 남편이 다시 사라지고 열에 들뜬 시아버님의 싸늘한 시신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정수의 마음과 몸도 싸늘해진다.     


혜영을 따라 들어온 성태가 정수를 보더니 울컥하며 눈물을 흘린다. 성태의 아내와 어린 것 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성태를 살핀다. 성태도 은경이도 할머니 정수 손에서 자랐다. 성태 아빠는 83년 겨우 스물아홉 나이로 죽었다. 할아버지가 서른하나의 나이에 큰아들을 따라갔으니 성태 아빠는 그보다도 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노할머니도 그때 아빠를 따라갔다. 엄마 혜영은 교사였다. 할머니 정수가 성태와 은경이를 키웠다. 정수는 성태에게도 은경이에게도 엄마 이상의 할머니인 것이다.     

혼수인지 잠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정수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성태와 은경이, 혜영이가 각각 생각에 잠긴다. 성태의 아내는 두 어린 것들을 데리고 미세먼지 가득한 놀이터로 나갔다, 혜영은 40년 과거를 회상한다. 1980년 졸업을 앞둔 1월 중등교사 순위 고사를 보자마자 결과도 나오기 전 준호와 결혼했고 임신했다. 성태와 은경이 쌍둥이가 그렇게 허니문 베이비로 태어났다. 그때는 모든 게 완벽했다. 준호를 1976년 캠퍼스에서 만났다. 혜영이 연세대에 입학했고, 그때 준호는 방위를 갔다 온 복학생이었다. 둘에겐 공통점이 많았다. 혜영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엄마마저 혜영이 대학을 졸업할 때쯤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다. 준호 역시 아버지 없이 유복자로 태어나 할머니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둘 다 친척이라고는 전혀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절로 가까워졌다. 혜영은 준호의 집에 자주 갔다. 정수는 혜영을 친딸처럼 대했고, 할머니는 며느리 정수에게 존대만 사용할 정도로 근엄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곧 친할머니처럼 여겨졌다.

3월에 함께 교사 발령을 받았다. 함께 출근하는 즐거움이 컸다. 비슷한 시간 퇴근해오면 어머니 정수와 할머니가 따뜻하게 차려주는 밥상을 마주하며 세상 부러운 게 없었고 행복이라는 걸 맛보았다. 남들이 한다는 입덧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 정수와 할머니의 얼굴에도 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너무 행복한 게 불안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긴 했다. 결국, 그 행복은 겨우 일 년도 채우지 못했다. 그동안의 행복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아직도 혜영은 하곤 한다.     

1980년 5월 혜영의 남편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리고 7월에 폐인이 되어 나타났다. 그해 태어난 쌍둥이 성태와 은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을 뿐이었고, 83년 봄 그는 세상을 떠났다. 한 줄의 역사가 더 있었다. 그해 정수의 어머니요, 친구요, 동지였고, 성태와 은경의 증조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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