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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Aug 31. 2022

소설 <4개월>-11(마지막 회)

'진리'에 다가가는 감격?!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가셨다. 너무 힘든 시간 보내지 않도록 가는 시간까지 맞춰주셨다. ‘고부간에 이런 관계가 과연 가능한가?’ 물음을 던지던 혜영은 무슨 비밀의 열쇠라도 발견한 듯, 이제까지의 아픔, 의문과는 전혀 달리, 마치 신명이라도 난 듯, 갑자기 자판을 쳐 내려갔다.      


‘고난’. ‘흔적’. ‘그것들이 주는 깊이와 상상력’. ‘자신이 되어감’. ‘인간이 되어감’. ‘세상이 주입하는 가치’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아니 매몰될 수 없었던 고난받은 이들’, ‘연대’. ‘어린 것들’, ‘약하디약한 바로 그 어린 것들’, ‘비통한 삶을 살아온 나 혜영과 어머니, 할머니, 여인들끼리의 삶’, ‘서로를, 삶을 가능하게 한 것’ …     

그리고는 문득 혜영에게 깊이 각인되었던 글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읽었던 오래된 글귀를 생각해냈다. 릴케가 젊은 시인 크사버 카푸스 보낸 편지 일부를 혜영은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냈다.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러낼 만큼 아직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당신이 갇혀 있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혜영은 의아했다.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이라고? 혜영은 그동안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이 아닌, ‘왕조차도 가질 수 없는’ 기억의 보물창고라고 읽었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 읽는 지금도 여전히, ‘왕조차도 가질 수 없는’ 기억의 보물창고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왕의 기억에 대한 혜영의 왜곡된 시각이라고 해도 좋았다. ‘왕이 가지는 기억이라는 게 과연 보물이라 할 만하겠는가?’ 혜영은 의심한다.      

얼마전 페친 오세훈 선생의 칼럼에서도 그런 글귀가 있지 않았던가!     


“명함 큰 놈들은 대개 탐욕적이다. 이토의 저 악마성을 에너지로 쓰면서 거들먹거리며 활보하다가 끝내 하얼빈에서 막을 내린다. 이 시대 일본 주류의 회의실 정중앙에는 이토가 앉아있다. 이 정부는 이토를 상관으로 여기고 맘껏 저자세를 취한다. 망국의 조짐이 보이면, 항상 포수와 담배팔이와 허다한 무직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저항하며 구국의 전사가 된다. 큰 법칙이다.”(출처 : 경기신문 2022. 8. 5 <오세훈의 온고지신> ‘눈먼자들의 도시’>


할머니, 어머니, 나 혜영이와 어린 것들 성태와 은경이 서로를 붙잡아준 거다. 아프지만 서로 기대며 살아왔던 소중한 기억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살아냈다. “세상이 이리도 아플 때, ‘약하고 약한 것들’ 우리가 ‘서로’를 붙잡아줬다. ‘우리는 비통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결코, 누구도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잔인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그것들이 주는 깊이와 상상력을 가질 수 있었고, 세상이 주입하는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각자 자신이 되어왔다. 인간이 되어왔다.’ ‘그리고 함께 고난받는 이들과 연대한 것이다.’ ‘아마 신이 있다면, 그게 바로 신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일 것이다.’”     

혜영은 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손이 보이지 않게 자판을 두들기며, 가슴에서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감격이다. 이런 감격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준호와 사랑을 나눌 때, 그와 결혼식을 올리고, 쌍둥이가 뱃속에 잉태되었을 때조차 느껴보지 못했던 특별한 감격이다. ‘진리’와 관련된 어떤 감격이다. ‘진리? 그게 뭘까?!’     

괜히 영양주사를 놔드려서, 정수의 힘든 날을 연장한 건 아닐까?, 후회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4개월’ 덕분에 어머니 정수에 대해 몰입할 수 있었다. ‘94년간의 정수의 고난’에 몰입할 수 있었다. ‘40년간의 동거’, ‘요양원’ 그리고 ‘4개월’조차, 정수가 혜영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글은 어렵지 않게 써졌다. 생각이 손을 앞설 정도였다.      


혜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촌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향한다. 정수가 떠난 후 시작한 페이스북에서 혜영은 사회적인 약자들 곁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만난 적이 있다. 작은 도서관도 그중 하나였다. 그곳 운영자가 목사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거의 2년간 갈 수 없었지만, 그곳 목사가 올린 책과 글들을 읽었다. 코로나 엔데믹이 되면서 다시 혜영이 그곳에 간다. 분야를 막론한 책을 읽고 나눈다. 물론 신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어쩌면 그곳에서 어머니 정수의 하느님, 성태와 은경의 하느님을 자신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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