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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Dec 24. 2023

12월 23일

아침 시간 화장실에서 <어떻게 늙을까>(다니애너 애실

뮤진트리)를 읽으며 발견한 내용이다.

()안의 설명은 글 쓰는 중략으로 인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위해 내가 끼워 넣은 것.


“소설이 ‘시들해졌다’는 내 말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놀랍고도 부러운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이가 드니까 내가 까다로워졌다는 얘기다. 식욕이 줄어서 보기 드문 진미가 아니고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 까다로운 논픽션에까진 미치지 않는다. 논픽션의 매력은 저자의 상상력보다는 주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169.


“이런 책들(<편지를 대신해>을 비롯해 다이애너 애실이 쓴 책들) 가운데, 그 어떤 책도 제 용도를 다한 후에는 내게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물론 사람들이 그 책들에 대해 좋게 말해주면 무척 기쁘긴 했지만, 그리고 출판사의 성화에 못이겨 1960년대에 썼던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 185.


“아홉 편의 단편들, 그중 어떤 것도 계획한 게 아니었다. 뭔가 기분 좋게 근질거리다가 난데없이 첫 문장이 떠오르고 그러다 깜박거리며 이야기 하나가 나오곤 했다. (…) 이번에는 깜박이며 등장하는 게 아니라 쉭 하고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나의 첫 책인 <편지를 부탁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는 나의 무의식 속에 쌓여있던 것을 암시하는 힌트에 불과했는데, 그때까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무의식 속에 쌓여있었던 이유는 치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연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했다) (…) 아무 체계 없이 글을 썼는데도 완성된 책은 신중하게 구성한 작품처럼 보였다. (…) 책이 일단 완성되자 실패자라는 느낌이 영원히 사라졌고, (실연의 상처를 남겼으나) 내 평생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으니까.” 182~184


“그 책이 증명한 것은 어쨌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부득이한 경우 소설 하나쯤은 쥐어짜낼 수는 있지만 그렇게 소설을 짜내는 사람은 소설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 글을 계속 쓰고 싶어도 뭔가가 나오려고 근질거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185, 6.


나 역시 고 난  글은 적어도 내게는 이미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쓰는 행위는 다음 삶을 살기 위한 작업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또 하나.

매일 일기를 쓰다보면,  이야기 거리라곤 전혀 없는 듯한 하루 안에 실은 수많은 이야기거리가 넘친다는 걸 알게 된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적다. 과거에는 일주일도, 열흘도 집에 그대로 있을 수 있었다. 그런 나를 불러 내주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가 늘어난다. 온라인(페이스북) 친구가 내 책의 독자가 되고, 오프라인 친구가 되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연결해준다. 오늘은 일산 음식 맛집, ‘효교’에서 새로운 친구 크리스 선생님을 만났다. 전종휘, 배은영 선생님이 주선했다. 풍산역에서 크리스 선생님을 만났고 효교로 가서 책 두 권을 드렸다. 조금 뒤 전종휘, 배은영 선생님이 둘째 딸 유리와 동행해 나타나셨다. 내 책 중 <이 정도면 충분한> 두 권과 <몸을 돌아보는 시간> 한 권을 꺼내시면서 싸인을 청하셨다. 지인께 드린다고.

게는 할 일을 다한 그 책들을 소중히 여겨주시는 분들께 그야말로 감사하다.

‘효고’의 시그니처인 가지 탕수, 멤보샤, 해물 쌀국수, 볶음밥과 공심채를 사주셨고, 약속된 전시회를 가야 해서 자리를 일찍 뜨셨다. 크리스와는 쌀 케잌으로 유명한(기다리는 줄 때문에 주문하는데 적어도 15분 이상은 걸릴 정도로) 근처 카페에 가서 긴 시간 책과 구체적인 삶을 이야기했다.

내가 책을 선물했다는 이유를 대며 이번에는 크리스  선생님이 차와 케잌 값을 지불하셨다.

대화 도중, “누구라도 제게는 어떤 이야기라도 다 할 수 있는 그런 편한 사람이 되는 게 제 바람이었어요”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그 말을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더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참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미 경험했다.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일 수 없다. 게다가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할 에너지도 남지 않았다. 착각하지 말아야지. 더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저녁에 남편과 다퉜다. 오랜만이다. 서로 대화하는 법이 다르다. 43년하고도 11개월을 함께 살았는데도,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법이 다르다보니, 이놈의 다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갈등을 유지하려면 너무 먾은 에너지가 들고 그런다면 몸이 반응할 것이다. 얼른 내가 먼저 풀었다. 이게 삶의 지혜다. 몸을 망치면 안 된다. 어차피 서로를 미워하지도, 그 속을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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