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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02. 2024

1월 9일

"고전 읽기, 그리고 쓰기" 시즌 2가 오늘 첫 모임이 있었다. 한 분의 말에 조금 변형하면, '죽은 이들의 글을 마주하게 될 산자들의 모임'이다. 아홉 분이 한결같이 쉽지 않은 책, <고전을 만나는 시간>(앨런 제이콥스|미래의창)을 미리 읽고 성실하게 글을 써왔다. 덕분에 기억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정보가 쏟아져나오는 사회, 가속화 사회에서 '과거의 현자들로부터 어떤 지혜를 얻게 될지?' 나눌 수 있었다. 책은 과거의 현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우리 인격의 밀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자연'이야말로 우리 인간 이전부터 존재해온 가장 오래되고, 지구 크기의 가장 큰 고전(오래된 책)이요. 현자다. 자연의 지혜를 듣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빵 좋아하는 악당들이 사는 행성>(곽재식|비채)이 생각난다.

실로 인간 이전 수십억 년 전부터 있었던 자연, 인간의 수명과 비교되지 않는 긴 수명, 우리가 그에 의존해 사는 자연. 오래된, 그리고 광활한 세상을 우리 인간은 작기만 한 인간의 눈으로만 재단해왔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한 부분이 내게 와닿는다. “긍정적 선택을 할 것인가? 긍정적 선택을 할 것인가?”


(블로거, 과학기술 전문가) 얼리사 밴스는 지극히고 유용한 구분법 하나를 제안했다. 긍정적 선택과 부정적 선택 사이의 구분이다.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중시하는 긍정적 선택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장점 권장), 할 수 없는 일을 중시하는 부정적 선택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단점 제거). 부정적 선택에 초점을 두는 경우,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후보자 수가 줄어들고, 이 과정에서 뛰어난 인물들마저 벌레 취급을 당한다. 문제는 후보자들의 범위가 점점 좁혀져 그 폭이 지나치게 좁아진다. 그 범위 내 작가나 책들은 분명 사고의 폭에 있어서도 그만큼 협소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손쉽게 관리할 수 있고 내용상으로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개념들의 꾸러기만 손에 쥐게 된다. (85~87 참고)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일 경우가 많다. 큰 여기(공간의 대역폭. 우주를 포함할 정도로 큰 여기)와 긴 지금! 그런 순간은 개방성과 인내심을 갖춘 사람, 약간의 지루함과 약간의 혼동, 약간의 짜증을 감내할 의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160 참고)


“실로 그 누구도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81)

“누구도 자신이 한 최악의 행동에 의해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전체로 바라봐야 한다.”(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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