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에 실린 글입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건강에 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사소하지만 귀찮은 증상이 끊이지 않아 건강하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2001년 봄날 허리를 다쳤다. 이후 10여 년간 통증을 달고 살았고, 2016년엔 척추유합술을 받았다. 기대와 달리 통증이 더 심해졌다. 회복이 불가하다고 생각하며 날마다 ‘죽음’만을 떠올렸다. 우울증도 깊어졌다. 정신과 치료와 운동(걷기)을 꾸준히 병행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났다. 그동안 남편과 여행도 했고 책도 낼 만큼 회복했다. 그러나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적당한 통증과 더불어 산다. 그 시간 덕에 타자의 고통에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었다. 여전히 함께하는 통증이, 타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게 한다. ‘죽음’만 떠올리던 그때 ‘아픈 몸’과 ‘죽음’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덕분에,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실현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죽음 계획을 세웠다. 통증이 준 역설적인 선물이었다. 너무 고달픈 시간이라, 되돌아가라면 그리 못하겠다. 결코. 하지만 아팠던 시절을 삭제하고 싶지도 않다. 결코.
친구가 아프다. 균형 잡힌 체격에 언제나 몸이 가벼웠고, 식욕을 잃어본 적 없었다. 심지어 하얗고 반짝거리는 치아도 튼튼했다.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고, 성취감을 느끼며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당뇨, 불면, 소화 장애가 한 번에 찾아왔다. 불과 몇 달 만에 체중이 10킬로 줄었다. 췌장암 3기. 곧 닥쳐올 통증과 항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차라리 뒷전이었다. ‘차라리 자살하자’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살은 구원받을 수 없는 죄’라는 교회의 가르침이, 그동안 인식하지 않았던 구체적인 죄들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그를 정죄하며 죄가 생각나게 한다고 했다. 결국,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고, 죽은 후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아픈 몸, 자살, 죄, 구원 없음’이라는 사고가 그를 지배했다. 핵심 감정이 두려움이었기에, 마침내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 4:18)라는 구절로 자기 자신을 가스라이팅하게 되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그를 몰아가는 이 상황을 진정시켜야 했다. 나는 매정하게, 그 순간 가장 솔직한 방법으로 물었다. “자살은 쉬운 줄 알아? 자살 후 가족이 안고 살아야 할 트라우마는? 네가 생각하는 구원은 뭔데? 네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데?” 모태신앙으로 자라 교회를 떠나보지 않은 그는, 답하지 못했다. 대신 “너라면?” 내게 물었다. “나라면? 일단 의사가 예측하는 내 병의 예후에 대해 정확하게 듣겠어. 지금 하는 항암의 목적에 대해. 즉 의사는 항암으로 무엇을 기대하는지. 4차 항암 후 결과에 따라 치료 계획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결과적으로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치료 계획에 나 자신이 개입하겠어. 어느 선까지 치료를 받을지, 언제 포기할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남겨질 남편과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을 남겨줘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겠어. 가능하다면 병상 일기를 쓸 것 같아. 이제껏 쓴 세 권의 책은 사회적 글쓰기인 동시에 내가 가족들에게 남기는 공유 유품이기도 해. 병상 일기를 쓸 수 있게 된다면, 그 일기가 나의 마지막 사회적 글쓰기요, 가족에게 남기는 마지막 공유 유품이 될 거야”라고 답했다. 그대로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게 하리라고 미리 생각해 두었었다.
이미 자살로 생을 마감한 친구가 있다. 나도, 지금 이 친구도 그의 자살을 죄로 여기지 않았고, 구원과 연결 짓지도 않았다. 내가 통증의 시간을 보내며 죽음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며 자살을 떠올리던 그때도 나는 자살을 구원받지 못하는 죄라고 여기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더욱이 한 사람의 구원을 죽음 이후의 일로도 여기지 않고, 어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른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가끔 어떤 분들이 말한다. “○○○가 예수를 영접하고, 병상 세례를 받았어요. 그가 구원을 받아 기뻐요.” 그때마다 나는 불편하다. 현실에서의 구원이라면 모를까, 죽어본 적이 없으니 죽음 이후의 구원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내게도 구원의 확신이란 게 있을 수 없다. 다만 예수께서 그러셨듯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고백할 뿐이다. 구원을 확신할 수 없는 자로서, 숨을 거둔 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으로서, 나로서는 온전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따르겠다는 의미로 하는 고백이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를 믿는 자는 이미 세상을 이겼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때의 ‘믿음’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으나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예수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제자들 앞에도 언제나 고통이 따라다녔고 형벌 같은 죽음이 예비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면 행복해 어쩔 줄 모르며,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시련이 없었더라면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결코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을 헤아려보려는 강한 욕구를 자발적으로는 느끼지 못하며, 운명이 묻기 전에는 자신에 대해서 물음을 던질 호기심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의 행복, 아니 불행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자기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자기 내부에서 잠자게 하여, 실제로 몸을 지킬 필요가 생겨서 혼신의 힘을 짜내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는 근육처럼 위축시켜 약해지도록 내버려둔다. 평범한 인물이 자기 자신에게 가능할지도 모르는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이전부터 예견하고 느끼고 있었던 것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 밖으로 내쳐져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 운명이 쥐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불행”이라는 채찍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박광자·전영애 옮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청미래) 12쪽.)
한 번도 자기가 누구냐고 물어본 적이 없는 이 여자는 고통 한가운데서 마침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는 순간 마침내 변신한다. … 시련이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무엇인가 새로운 것, 위대한 것이 내부에서 시작됨을 감지한다.
오만하고 동시에 감동적인 말이 그녀의 놀란 입에서 갑자기 흘러나온다. “불행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고통을 통해서 그녀가 살고 있는 하찮고 평범한 생이 후세에 하나의 보기가 된다는 예감이 그녀를 엄습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다 높은 의무를 인식하면서부터 그녀의 성격은 그 자체를 초월하여 성장한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14쪽.)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 평전에서 시련 없는 행복은 차라리 불행이라며 도리어 고통의 유익을 말한다.
친구와 나는 ‘구원’과 ‘죄’을 주제로 몇 번 더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작게는 지구라는 이 행성, 크게는 우주의 모든 ‘타자’가 서로 ‘연루’되어 있다는 데 동의했다. 구원이란, 타자의 아름다움과 비통을 ‘감각’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의지’ 가운데 있으며, ‘죄’란 그와 같은 감각을 외면하고 ‘자기애’에 몰입하는 데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나는 무엇보다도 세상에 편재하는 고통을 감각하는 그때 구원이 시작된다고 느낀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내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겪는 시기마다 사사와 예언자가 출현했다. 1세기에 예수가 고난에 처한 이들 가운데 계셔서, 고쳐주셨다. 고통 중에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예수처럼 살다 갔다. 각종 재해와 참사, 차별로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유가족들은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소리를 냈고, 이제껏 없던 법률이 제정되었다. 세상은 고통에 대한 감각과 이를 끝내려고 하는 의지로 조금씩 나아진다. 2015년 이후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전세 사기로 일상을 잃어버린 이들은 계속해서 연대해 소리를 내고 있다. 가까운 이웃부터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인간을 비롯해 창조주가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모든 피조물로부터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지구는 더 이상 Earth가 아니다. Eaarth가 되었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초위험 상태에 놓여있다. 이들은 공동 운명체로 연결·연루되어 이제껏 경험해보지 않은 더 크고 깊은 고통을 겪게 되리라 예상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한반도와 아시아, 서구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얽히는 역사를 조명한 18가지 에피소드로 19세기 말-20세기 중반의 세계를 살핀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한겨레출판)에서 사회학자 조형근은 “‘연루’를 통해서만 우리는 인간이 된다”라면서, 이 책이 독자와 연루되기를 바란다고 썼다(12쪽). 그리고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추천사에서 조형근의 이 말을 인용해 한나 아렌트를 언급한다. “한나 아렌트는 ‘사유’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나를 끼워 넣는 일’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연루됨의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그가 말하는 사유의 의미는, 우리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 김만권은 연루된 존재로서 역사적 책임을 향한 질문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우리는 연루된 존재다. 연루된 존재로서 역사적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가 연루된 역사란 다만 인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흙 한 줌에 5천여 종, 1억의 생명체가 살아있다고 한다. 지렁이, 달팽이, 산호초, 상어, 고래, 나비, 벌, 새, 코끼리 등등. 같은 방식으로 지구를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것들. 이 세계에서 우리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과 연루되어있다. 내가 보지도 못한 먼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 실험실·동물원·사육장에서 태어나 죽어가는 생물들에 연루되어있다. 집집이 문 앞에 높게 쌓이는 택배 상자들을 생각해보라. 다 입지도 쓰지도 못할 만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옷과 잡화들,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요리하고 주문해 쌓이는 음식물 쓰레기, 심지어 커피까지 배달해 먹는 문화로 쌓이는 폐기물들, 하루 80그램이면 족한데 지나치게 먹어대서 문제가 되는 육류 소비 등등. 우리는 편재하는 고통에 연루되어있다. 과장인 듯하지만, 이 고통과 위기에 나와 당신이, 우리 인간이, 싫건 좋건, 의도했건 아니건 연루되어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몰지각함, 어쩔 수 없다고 외면하는 무책임함, 아무리 애써도 이 틀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가 고통을 더 빠르게 확산시킨다.
9월 22일에 지난 2월 17일 고인이 된 김경아 작가의 병상 일기와 남편 김종호 목사의 기도 편지가 묶여 《자유롭게, 용감하게, 현명하게》(바람이불어오는곳)로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왔다. 김경아 작가는 열여덟 살에 시작된 자가면역질환으로 수십 년간 통증과 더불어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이유 없이 주어진 고통에 함몰되는 대신, 타자의 고통에 자신을 연루시켰다.
투병으로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완벽한 살림을 하고 육아를 하고 남편을 도왔습니다. 고통이라는 질고의 노예가 되길 거부하고 일상을 살아냈고, 본인의 관심사를 추구하며 저술, 강의, 독서 모임, 상담, 손님 초대 등의 활동으로 본인의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그는 질병에도 갇히지 않은 자유인이었습니다. (238쪽. 남편 김종호의 기도 편지 중에서)
“유한한 인생에서 고통을 의미 있게 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하던 김경아 작가는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아프고 힘든 게 아니었다.… 하나님이 내게 기대하신 열매는 상처 입고 결핍 있는 사람을 끌어안으라는 것 아니었을까.” 그는 가늠하기 어려운 고통 중에 막내를 입양해 키우며 《너라는 우주를 만나》(IVP)를 써서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IVP)을 써서 성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 장기 기증 서약도 했다. 《자유롭게, 용감하게, 현명하게》로 출간된 원고 역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썼지만 끝낼 수 없었다. 남편은 미완성 원고와 일기 일부를 취합해 출간을 감행했다. 김경아 작가의 삶과 저술, 강의, 독서 모임, 상담, 손님 초대는 모두 타자의 고통에 자신을 연루시키는 그의 방식이었다.
지난 일주일, 아픈 친구의 집에는 그의 막내 올케가 와서 함께 지냈다. 그동안 평안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픈 친구를 너무 쉽게 잊고 지냈다. 어제저녁에서야 올케가 이미 돌아갔겠거니 생각했고, 마음이 무너졌다. 어느새 자기애에 몰입해 친구가 겪는 고통에서 나만 홀로 빠져나온 셈이다. 거창하게 많은 말을 했다. 다시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와 곁의 고통과 나를 연루시켜야 하겠다.
조희선 : 두 존재의 할머니. 《이 정도면 충분한》 《몸을 돌아보는 시간》 《나이가 하는 일》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