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리뷰

미성년, 조희선! 까라마조프, 조희선!

by 조희선

1.

“이 글을 쓰는 저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우리 모두는 신체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미성년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년은 무엇일까요? 어떤 하나의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물줄기의 유입을 수용하며, 한 우물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우물을 탈출하며, 깊고 풍성한 삶을 도모하는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성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성년은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입니다. 우리 안의 미성년을 인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년의 길 위에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영웅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중에서


저는 책을 늦게서야 손에 잡았습니다.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특히나 도스토옙스키의 책은 더더욱 읽기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죄와 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백치》를 읽었지만, 완독했다는 데 의미를 두었을 뿐, 실상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었습니다. 그나마 《백치》는 제일 뒤늦게 읽었을 뿐 아니라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고 나눈 분들이 있었기에 조금은 나은 듯했지만, 여전히 아쉽지요.


그동안 읽은 책들 대부분에 대해서도 그렇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반드시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언제?' 하고 묻습니다.


그런 중, 처음 읽기, 다시 읽기(재독)에 더해 함께 읽기까지, 읽기를 거듭하며 점점 더 넓고 깊게, 집요하게 분석하고 사유한 글을 혼자 소유하지 않고 기꺼이 나눈 저자의 글은 제게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요즘, 계속해서 같은 내용의 생각과 입장을 주장하며, 자신이 갇혀있을지도 모를 우물 안에서 자기 생각과 경험이 곧 진리인 양 거듭 주장하는 어떤 분들의 글과 말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는 그런 것을 향해 가진 것 없기에 도리어 ‘확대된 자아‘, ’비만해진 자아‘ 등등이라 ... 판단하며 스스로 높아지려는 아찔한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만난 책이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이고, 그 책 안에서 만난 글이 위에 인용한 글입니다. 저자가《미성년》을 재독하며 쓴 글의 일부죠.


이 글에서 바로 내 안의 미성년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예전의 미성년, 지금도 여전한 미성년 조희선을 말이죠.


2.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은 도스토옙스키의

초기작 (《가난한 사람들》

<분신>, <백야>, <약한 마음>

중기작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상처받은 사람들》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로부터의 수기>, <악몽 같은 이야기>, <악어>

후기작(《죄와 벌》, 《노름꾼》, 《백치》, 《악령》,《미성년》,《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15개 작품을 이야기 합니다.


처음 읽으며 느낀 것, 다시 읽기로 깨달은 것, 함께 읽기로 더욱 확장된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읽기를 거듭할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저자의 읽기를 따라 읽다 보면 저자와 도스토옙스키를 따라 저의 인간 이해가 확장되며 제가 갇힌 우물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듯합니다. 미성년이 성년이 되어가는 과정이겠죠. 저자가 말했듯, '끊임없이 새로운 물줄기의 유입을 수용하며, 한 우물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우물을 탈출하며, 깊고 풍성한 삶을 도모하는 길'에 서게 되는 과정이겠죠.


《미성년》을 읽고서 자신과 우리 모두가 미성년일 거라고 한 저자는《까라마조프 씨네의 형제들》을 읽은 후 ‘까라마조프’가 ‘인간’으로 읽힌다고 합니다. 예외없이 인간이라면 그 안에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갖고 있죠. 안타깝지만 수용해야만 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곧잘 판단하는 어떤 이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 안에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 간파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과 수십 시간 시공간을 향유한 자로서 위대한 작품 앞에서 미천한 인간임을 깨닫고, 경건해진다고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을 읽은 저와 다른 독자들도 그리 되면 좋겠습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은

수시로 나의 미성년 됨을 인식하면서도, 어느새 내가 판단하곤 하는 어떤 분들과 다르지 않게 확대된, 비만한 자아로 살아가는 제게 꼭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저를 믿지 못해 안내를 받으며 책을 읽는 편인 제게, 이 책이 도스토옙스키에게 안내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성년, 조희선!

까라마조프, 조희선!

나와 우리 인간 안에 있는 이율배반적인 모습, 이중성을 마주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회복시킬 수 있는 작고 사소한 사랑을 잃지 않는 사람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3.

저자는 끝으로 중요한 질문을 남김으로 독자 역시 계속해서 어딘가에 갇히지 않고 질문하며 생각을 끝없이 확장하게 합니다.


"과연 스메르자꼬프도 까라마조프 안에 있는가?"


이는 그도 '인간으로 구원의 가능성 안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도 있을 지 모른다는 의미겠지요.


이러한 저자 김영웅의 집요한 질문하기는 저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책을 덮으며 도스토옙스키라는 '우물'의 벽을 두드려 보게 되었습니다.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 정교회라는 거대한 토양 없이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요? 며칠 전 읽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입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을 겪지 않고,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화려하고도 비정한 사교계에서 발자크와 동시대를 살았더라면 그는 어떤 인간의 이면을 포착했을까요?


책 말미 ​저자의 열린 질문이 '성년의 길', 즉 끊임없이 새로운 물줄기를 유입시키며 내가 알던 세계(우물)를 탈출해 보라고 권합니다. 도스토옙스키를 러시아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만 가두지 않고, 발자크라는 거울에 비추어보며 저의 인간 이해를 한 뼘 더 넓혀보고 싶어집니다.

​ ㆍ


* 참고로 이 책의 특징은 독서모임에 최적 형태로 짜여져 있습니다.

독서 모임의 시작부터 15회의 만남까지, 독서 모임을 자세히 기록했고, 갖가지 꿀팁이 있습니다.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거나, 계획하는 분, 그리고 저자의 '전작 읽기'를 시도하는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탁월한 책일 듯 싶습니다.


* 앗. 이 좋은 문장을 놓칠 뻔 했습니다.


"정신분열증의 다른 이름은 조현병입니다. 조현이란 현악기 위주를 고른다는 뜻으로 조현병은 뇌의 신경 구조 이상으로 마치 현악기가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것처럼 혼란을 겪는 상태, 즉 제대로 조율되지 못한 정신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조현병은 마음을 제대로 조율하고 싶어도 그렇게 놓아두지 않는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조율이 망가진 상태라고요. 나아가 우리 주위에 실제하는 조현병 환자들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는 눈을 뜬 것 같습니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그렇게 만든 사회적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뉴스나 강의나 인문학 서적이 아니라 놀랍게도 소설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49.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모든 고통에 연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