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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Dec 22. 2021

해와 달과 별들의 체육시간
이상 없나?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에 사는 별을 만났다.

“별! 안녕? 많이 컸어. 몇 학년?”, “4학년이요.”, “와 벌써? 학교에서 무슨 시간이 제일 재미있어?”, “체육 시간이요.” 별의 답을 듣고 진심으로 좋았다. ‘체육’은 ‘일정한 운동 따위를 통해 신체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일, 또는 그런 목적으로 하는 운동’, ‘육체의 건전한 발육을 꾀하는 교육’ 등으로 정의된다. 체육 시간을 좋아한다면 별이 건강하게 자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 ‘요즘 체육 시간은 다른가?’ 의아했다. 내가 경험한 체육 시간, 어른이 되어 고등학교 선생(교목)으로 지낸 시간에 본 학생들의 체육 시간은 재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체력에 크게 보탬이 되는 시간도 아니었다.      


초, 중, 고등학교, 12년 동안 체육 시간이 있었다. 대학에서도 체육 시간이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초등학교 체육 시간이라면 국민체조 외에는 기억에 없다. 중학교 시절이라면 10M 왕복달리기, 100M 달리기, 800M 오래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공 멀리 던지기, 멀리뛰기, 철봉에 매달리기, 그리고 체력장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모든 종목에서 기록을 쟀다. 당시 고등학교는 입학시험을 치르고 점수대로 합격 여부가 정해졌다. 체력장 점수도 입학점수에 합산되었다. 체력을 기르는 시간이라기보다 입시를 위한 시간이었다. 20점 만점이었고 5등급으로 나뉘어있었다. 각 등급의 차이가 2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대체로 1등급이나 2등급이었고, 내 기록은 형편없었다. 점수는 기본 10점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10점 차이다. 꽤 큰 차이다. 새벽에 체육 과외를 받았다. 두 달 동안의 고된 훈련을 받고 몸에 무리가 왔다. 체력장 전날 발목이 퉁퉁 부어있었고, 통증을 느꼈다. 엄마는 민간요법이라고 푹~ 쪄낸 보리밥을 내 발목에 감싸줬다. 그 보리밥의 효험이 있기만을 바라며 잠을 청해야 했다. 이른 아침 눈을 뜨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체력장은 연기되었다. 보리밥 대신 기후가 위력을 발휘했다. 일주일 뒤, 발목 통증 없이 체력장을 치렀다. 1등급 20점을 받고 다시 운동과 결별했다.      


체육 시간에 관한 유쾌한 기억이 없지 않다. 중학교 때 배구와 발야구를 하기도 했다. 배구공이 무섭고, 공에 맞으면 손목이 벌겋게 부어 아프면서도 그 시간을 기다렸다. 두 손을 잡은 채, 두 팔을 쭉~ 뻗을 때의 느낌, 내 몸의 자세와 움직임을 지금도 기억한다. 손목에 공이 닿는 순간, 느낌으로 공을 제대로 받았는지, 그렇지 못한지 알 수 있었다. 공을 받아 패스했을 때의 통쾌함,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몸을 나의 일부로 느꼈던 그 감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발야구도 있었다. 상대편 선수가 배구공을 발로 차려는 순간, 몸을 긴장시켰다. 공이 내 몸을 향해 날아오는 순간, 발로 뻥~ 차며, 순간 몸이 느낀 희열을. 베이스를 향해 냅다 달릴 때 목표를 향해 기꺼이 질주하던 요긴한 내 다리가 기억난다. 피구 공이 무서워 몸을 숨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에라 맞으라면 맞으라지’ 하는 심정으로 앞으로 뛰어나가 공을 잡을 때 느꼈던 내 몸의 용기도 잊히지 않았다. 지루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기록을 재는 엘리트 체육과 달리 생활 체육을 하면서 느꼈던 몸의 즐거움에 대한 기억이다. 내 몸의 감각과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 놀이를 즐겼다면 나는 지금 어떤 운동에 빠져 있을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시절, 무용 시간이 있었고, 운동장에서 줄을 서 테니스를 배우긴 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끝까지 배운 것도, 제대로 해본 것도 없다. 그와는 반대로 교련 시간은 철저하고 엄격했다. 열을 맞춰, 절도 있게 행군했다. ‘좌향좌’, ‘우향우’, ‘뒤로 돌아’, ‘ㅇ열 종대로 헤쳐 모엿’, ㅇ열 횡대로 헤쳐 모엿’ 구령에 맞춰, 정한 시간 내에 절도 있게 움직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삼각 붕대, 일반 붕대를 다친 팔과 다리에 감는 법을 배웠다. 삼각 붕대를 매는 법은 아리송하지만, 지금도 일반 붕대를 매는 법은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열심히 가르쳤고, 확실하게 배웠다, 절도있는 행동에서 쾌감을 느꼈다. 체육 시간이 그렇게 운동 종목 중 뭐 하나라도 철저하게 배우는 시간이었다면, 어쩌면 지금과 달리 운동 하나는 확실히 할 수 있을지도, 그 운동으로 계속해서 체력을 키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딸 모두 수영을 할 수 있다. 역시 체육 시간에 배운 게 아니다. 수영장에서 레슨비를 내고 배운 덕이다. 테니스며 탁구며 하지 못한다. 배울 시간도, 일일이 레슨비를 내고 배울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자전거를 탈 수 있으나 장거리 주행, 힘든 코스는 어려울 것이다. 딸들 역시 입시 위주 교육을 받았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를 꼬박 교실과 학원 책상에 앉아서 보내야만 했다. 덕분에 체중은 늘어났고 체력은 떨어졌다. 이미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은 두 딸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나도 레슨비를 내고 수영 강습을 받았다. 그러나 내 키를 넘는 물에서 익사할 것이 뻔하다. 수영을 멈춘 채 물에 뜰 줄 모른다. 키를 넘는 깊은 물에서, 그냥 물 위에 수직으로 동동 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다. 그들은 깊은 물에 빠져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겠구나 싶다. 그들은 어디서 어떤 수영을 배운 걸까.     


몇 년 전, 친구가 정년퇴직 후 자전거를 배웠다며, 제주도를 종주했다고 알리더니, 그 후에는 유럽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 한 달 동안 자전거여행을 하고 왔다. 그러면서 왜 학창 시절이 아니라 예순이 넘어 배우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딸의 친구는 대학 졸업 후,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 가 지금까지 그곳에 살고 있다. 똑똑하고 자립심 강한 그 친구는 처음 독일에 갔을 때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수영도 하지 못했다. 독일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수영을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단다. 그곳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당연히 수영을 배우고 자전거를 타고, 각종 운동을 자연스럽게 배운단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일본인 학교와 독일 학교가 있다. 코로나 펜데믹이 찾아오기 전, 가끔 교사와 학생이 자전거를 타며 동네 공원으로 오는 것을 봤다. 두 학교 운동장에서 수시로 축구 하는 학생들을 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교목으로 지내던 시절, 부지런한 남학생들이 수업 전, 혹은 점심시간에 땀을 흘리며 농구를 하는 모습이 활기찼다. 그러나 체육 시간은 자습 시간이 되기 일수였다. 그 시간 학생들은 피곤한 몸에 쌓인 독소를 배출해내지 못한 채. 늘어진 채로 책상 위에 엎으려 잠을 청하거나 여전히 입시를 위한 공부를 하느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혹 지금은 달라졌을까?  며칠 전 여전히 내가 있었던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한 분을 만나 요즘 체육시간에 대해 여쭸다. 달라진 것이 없었다.     


손자 해와 달이 있다. 그중 해의 체력이 약하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합기도 학원에 보냈다. 학원을 갔다 오면 이미 6시가 넘고, 저녁을 먹고 나면 7시를 훌쩍 넘겼다. 고작 초등학생 2학년 손자가 그 시간에 기꺼이 학교 숙제를 하고 학습지를 푸는 게 쉬울 리 없다. 손자와 딸이 옥신각신 벌이는 씨름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던 중 다리뼈가 부러지면서 쉬게 된 게 지금까지 이어진다. 많은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별도의 시간과 돈을 들이며 하루를 부족하게 사는 대신, 초ㆍ중ㆍ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체육 시간, 즐겁게 배구하고 농구하고 야구하고, 합기도, 태권도, 수영, 자전거, 테니스, 탁구 중 뭐라도 기꺼이 즐기며 체력을 키울 수 있는 날이,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제는 코로나 시대가 되었으니, 그런 날은 영~ 틀린 건가?


‘장난꾸러기라도 좋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는 그냥 적당히 만들어진 카피가 아니다. 건강에 대한 진지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건강을 잃고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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