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3
시간이 흘러 예약일이 되었다.
회사에는 연차를 내고 예약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태어나서 대학병원을 처음 가본 건데 그렇게 복잡할 수가 없었다.
검진실을 찾아가는 길부터 헤맸다.
첫 병원에서 받은 검사와 거의 비슷한 검사들을 또 한차례 받았다.
두 시간 넘게 이 검사 저 검사 다 받고 여기서 기다리고 저기서 기다리기를 여러 차례.
힘들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참을 수 있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과 검사 결과를 보고 면담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게 더 두려웠다.
제발 간단한 수술이어라. 속으로 빌었다.
내 순서가 되었다.
걱정과 불안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검진 내용도 첫 병원에서 받은 것과 비슷했고 검사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처방은 사뭇 달랐다.
우선 담당 의사 선생님도 1차 진료기관의 소견대로 자궁내막증이 확실하다고 하셨다.
오른쪽이 7센치, 왼쪽이 3센치.
작은 건 지금은 문제 되지 않는데 큰 게 문제라고 했다.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자궁내막증이란 쉽게 말해, 매달 월경할 때 밖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생리혈이 어떤 이유로 자궁으로 다시 흘러들어 가 생기는 병이다.
생리혈이 저들끼리 뭉쳐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할 것이고.
위치야 제각각이겠지만 나의 경우 난소에 있었다.
원래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자리 잡은 이 덩어리가 이대로 계속 자라다가는 암이 될 수도 있으므로 난소암 검사도 했으나 다행히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다만, 무턱대고 수술해서 제거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난소의 조직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난소 기능이 저하되어 불임이 되거나 폐경이 빨리 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무조건 수술을 권하지는 않을 것이고, 우선 3개월 동안 약물 치료를 해보자고 하셨다.
수술은 최후의 방법이라고, 최대한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하는 걸 권한다고, 그리고 약물 치료로 호전을 보이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고 했다.
3개월 후에 다시 봅시다.
담당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검사하고 기다리는데만 오전이 다 갔는데 10분, 아니 5분도 안 걸려서 진료가 끝나 허망하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느라 잠시 멍해졌다.
진단은 단호했고 그래서 알 수 없는 신뢰가 갔다.
어쨌든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은 게 아닌가.
당장 수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거고, 약만 먹고도 좋아질 수 있다는 거잖아?
첫 병원에서 수술 얘기부터 듣고 벌벌 떨며 온 터라, 그 얘기만으로도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수납을 마치고 보험 청구에 필요한 서류들을 떼서 병원을 나왔다.
세상이 마냥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해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동안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비잔정이라는 자궁내막증 치료약을 복용하게 되었다.
안녕, 비잔정아. 세 달 동안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