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수유 단상
아기와 함께 지내고부터는 알람 시계를 맞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기 소리에 깨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잘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니 놀랍다. 8시에 알람을 맞춰두고도 5분씩, 또 5분씩 기상시간을 늦추던 나였다. 그런데 이젠 아기 소리가 곧 나의 알람이다.
지금은 아기 방 없이 큰 방에 아기침대를 따로 마련해 재우기 때문에 금방 소리를 듣고 살필 수 있다. 무슨 소리가 들려 일어나보면,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쩝쩝거리거나 팔다리를 버둥대며 끙끙거리고 있다. 그렇게 데시벨이 높은 소리도 아닌데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 신기하다. 남편은 아기 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피가 솟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위험을 감지했을 때 뒷목 어디께가 뜨겁고 긴장되는 느낌이랄까 뭔가 솟아오르는 기분이 있는데, 그런 느낌이 난다.
엄마가 아기 울음 소리에 깨는 이유는 옥시토신 호르몬 분비 때문이라고 한다. 아빠들이 상대적으로 아기 소리에도 깨지 않는 이유는 이 호르몬이 적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넷플릭스 <베이비스> 시리즈에서는, 아기와 애착이 높은 아빠들은 옥시토신 분비가 활발하다는 연구 결과를 담았다. 일부 아빠들이 아기 소리에 깨지 않는 건 그만큼 아기와 애착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일이라고만 생각했겠지. 아기와 모든 걸 함께하고 싶어하는 나의 남편은 하여튼 잘 깨는데, 피곤할까 걱정이다.
특별히 변화가 없으면, 대강 9시쯤 잠든 아기는 새벽 3~4시쯤 한 번 일어난다. 아기는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도 낑낑거리는 소리를 낸다. 발을 버둥거리고 손을 빨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잠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기 소리가 시작될 때 눈을 뜬 우리 부부도 아기를 가만히 몇 분 동안 지켜본다. 화장실에 가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아기는 움직이다가 다시 잠잠해지기를 몇 번 반복한다. 아기는 참 바쁘다.
아기는 깊이 잘 때나 안정적으로 안고 있을 때가 아니면 계속 자주 움직인다. 근육 발달을 위한 움직임이기도 하고, 갑자기 깜짝 놀라 팔을 쫙 벌리는 모로반사이기도 하다. 정말, 먹고 자고 싸고 주변 사람들이 상전 모시듯이 달래주고 안아주고 하니 아기의 삶이란 편할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자면서 깜짝 놀라듯 팔다리를 벌리고 움찔하거나, 잠에서 깰 때쯤 낑낑 거리며 손을 빨고 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낯선 세상이 조금은 버겁겠지. 사람처럼 자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구나.
비로소 아기가 눈을 뜨면 침대에서 꺼내어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인다. 조명은 밝게 켜지 않는다. 차차 새벽에 먹는 일을 없애고 밤에는 쭉 잠을 잔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기는 이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 밤에는 쭉 잠을 자는 거란다. 밤에는 먹지 않는 거란다.
이 시간 수유 담당자는 남편이다. 나는 이때 유축을 하면서 두 사람의 움직임을 살핀다. 아기는 낮과는 달리 분유를 먹자마자 잠에 빠진다. 트림을 시키고, 조금은 세워 안아 아기의 소화를 돕는다. 소화기관이 발달하지 않은 아기들은 먹은 것을 잘 게우기 때문에 먹고 바로 눕히지 않는다.
남편은 아기를 어깨에 걸쳐 세워 안았다가 무릎에 눕혔다가 한다. 아기가 누웠다 일어나면 트림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기의 등을 자기 배에 기대어 앉혀놓기도 한다. 세워 안는 일은 손목과 팔을 혹사시키는 일인데, 이렇게 앉혀놓으면 일정 시간 동안 편안한 자세로 아기의 소화를 도울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이 일을 길게 하지는 못 한다. 잠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클라이너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진 남편과 그 무릎 위에 드러눕거나 아빠 배에 기대어 누운 아기의 투샷을 종종 보게 된다. 큰 어미곰과 작은 아기곰 같다. 내가 귀여워하는 두 사람이 귀여운 모습으로 널브러져 잠을 자고 있다. 당사자들은 매우 졸리겠지만, 두 사람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세상이 살만한 곳처럼 느껴진다. 내 인생에 이런 풍경이 있다니 핫초코라도 한 잔 마신듯 아기자기하고 따뜻해지는 것이다.
내 기억 속에 나는 밤에 깨어 분유를 먹던 일이 전혀 없다. 그때 우리 엄마, 아빠는 어땠을까. 나를 안아주고 먹여줬겠지.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 아기가 이 기억을 싹 잊고 나에게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감사는 필요 없다. 이 시간과 기억은 나에게 소중한 기억일 뿐, 아기에게는 기억해야 할 시간이라기보다 적응하고 배우고 생존해야 하는 시간일 게다. 태초의 분투는 싹 잊고, 공기 마시듯 자연스레 잠 잘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된다면 그걸로 좋다. 엄마,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아기가 커서 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때쯤엔 기억나지 않는 시간일 것이다. 예전엔 엄마, 아빠가 ‘옛날에 너가 이랬다' 하면 콧방귀를 뀌었다. 기억도 안 나는 거 어쩌라고. 그런데 이젠 알겠다. 내가 기억하든 아니든, 엄마, 아빠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거란 걸. 아기는 기억하지 못 하지만 부모는 그 강렬하고 따뜻한 기억을 힘으로 살아간다는 걸.
그렇지만 새벽 수유는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웬만하면 새벽에 깨지않고 자는게 너무 익숙한 어른이니까.. 물론 그렇기 때문에 아기를 도울 수 있는 거겠지. 나중에 아기가 콧방귀를 뀌더라도 얘기해주고 싶다. 새벽에 밥 달라고 깨면 아빠랑 저쪽 리클라이너에서 먹다가 둘이서 스르르 잠들었단다. 어쩌라고? 음 그냥 그렇다고. 너 예쁘다구. 소중한 내 아기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