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상에 차린 날

백일 상 위에 아기 올리기

by hee

언젠가 한 외국인이 한국의 돌상인지 백일상인지를 보고 왜 아기를 상에 차리냐고(왜 아기로 테이블 데코를 하냐 뭐 그런 거였음) 했다는 얘기를 적은 짤를 보고 빵터진 적이 있다. 그 얘길 생각할 때마다 웃기다. 그러게, 아기를 왜 상에 차릴까..?


그러면서 나도 지난주 주말에 우리 아기를 상에 차렸다. 아기 백일상이었다. 아기의 백일을 축하하며 차리는 상인데, 어쩐지 우리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아기를 상에 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를 그렇게 상에 차리면 아주 귀엽다. 상에 안차려도 귀여운데 상에 차리면 더 귀여워지는 효과가 있다.


나는 이것저것 차리는 거나 어떻게 차릴지 고민하는 건 너무 귀찮아서, 상차림 접시가 적고 한국 백일상보다는 파티 느낌이 나는 간단한 상차림 키트를 빌렸다. 이 바닥도 꽤 취향에 호소하는 비즈니스라, 대여 물품은 비슷한데 분위기 연출을 어떻게 하는지로 승부하는 듯했다. 내가 주문한 건 꽃이랑 캔들, 장식용 케이크, 아기 이름이 쓰인 토퍼 같은 게 있었다. 접시에는 그냥 백설기랑 수수경단을 조금 주문해서 올렸다. 파티 느낌 나라고 풍선도 했다.


아기는 상차림 당했지만, 어른들은 꽤 즐거웠다. 가까이 사는 시댁식구만 간단히 모여서 사진도 찍고 멕시칸 음식도 시켜먹고 그랬다. 남편이 가라아게랑 화이타를 만들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상차림 키트 색에 맞춰 드레스코드도 정하고 논알콜 샴페인도 먹고 다들 즐겁게 보냈다.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았다.


아기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보닛을 썼다. 가끔은… 맨날 집에 누워 있는 백수 삼촌 같았는데 드레스를 입혀놓으니 아주 이뻤다. 물론 누워 있는 백수 삼촌 같을 때도 예쁘다. 단지 머리가 항상 하늘로 솟아 있고, 메리야스나 다를 바 없는 여름용 메쉬 소재 바디수트만 입고 있다 보니 좀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아기는 어른들이 사진을 찍어대고 노는 동안 손을 빨거나 멍때리거나 했다. 요새 손빨기에 더더욱 꽂혀 있어서 조용히 손이나 빨고 싶어 하는 것도 같았다. 손을 난생 처음 보는 물건처럼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네 다섯개씩 고 작은 입에 욱여 넣을 때도 있다. 평소보다 시끌벅적하고 정신 없어서 낮잠도 제대로 못잤는데, 밤잠 자는 시간에 완전 뻗어버렸다. 그래도 어른들이 몇 명 더 있으니 평소보다 많이 안아줘서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항상 어른 좋자고 하는 이런 행사에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기는 주인공인데 자기가 주인공인지도 모르고 뭘 축하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하루를 보내니까 말이다. 불공정한 거 아닌가. 게다가 상에 데코로 활용되는 처지라니, 너무한 거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나도 상차림 당해본 사람으로서 생각해보면, 이게 나중에 커서 사진으로 보는 게 또 꽤 재밌는 것이다. 나도 내 백일이나 돌 사진을 보면 기억도 안 나는 그 시절이 흥미롭고 신기하고 귀엽다. 배우자가 상차림 당한 아기 시절을 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다.


게다가 아기는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고 사회 속에 사는 존재다. 나는 아기가 전염병 리스크만 좀 줄어들면 조금 피곤하더라도 부모 이외의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 자라는 데 새로운 장난감 하나보다 그런 경험이 더 중요할 거라 믿는다. 그래서 이런 자리도 아기가 사회인으로서 겪어야 할 통과의례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음..상에 차려지는 건 좀 다른 문제지만…)


사회의 일원이 된 것을, 먼저 살아본 사회인들이 처음으로 모여서 축하해주는 자리가 요즘의 백일인 것 같다. 요샌 영아 사망률이 줄긴 했어도 백일 이전까지는 아기한테 치명적일 수 있는 전염병에 관한 예방접종도 있고, 아기가 외부 세계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 하기 때문에 사람 왕래가 좀 적은 게 이해도 된다. 그런데 이젠 좀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반응도 더 다양하고 많아져서 데리고 노는 재미도 있다. 사람 속에 섞일 준비를 점점 더 해나가고 있는 것.


아기를 상에 차리고 사진을 열심히 찍은 다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기의 작은엄마, 작은아빠가 많이 안아주고 예뻐해줬다. 그러니까 상차림 당한 것 정도는.. 아기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낮잠을 바닥에서 재우려 하면 찡찡대는 걸로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고 있는 것 같으니.. 또이또이다.


아기야 사회생활은 원래 쫌 귀찮고 피곤한 거란다. 하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 음 어쩌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재미는 있었지만 피곤했으니.. 여튼 상차림 당하느라 고생했다 봄이야.


봄이는 2.25kg으로 아주 작게 태어났는데 지금은 현재 월령 아기 평균으로 자랐다. 백일을 맞아 새삼, 이렇게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란 게 너무 대견하고 고맙다. 아기가 나중에, 자신의 사회적 성취가 기대 만큼 안 나온다고 힘들어할 때, 부모를 실망시킬까봐 걱정될 때 이걸 기억하면 좋겠다. 그냥 존재만으로도 너무 대견하고 고맙고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걸로는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는 걸. 그렇게 작게 태어났지만 이렇게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자부해도 된다고. 오늘 하루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파티를 열고 싶다고!


다음 상차림은 돌이다. 약 9개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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