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알렉산드르 이바노프<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19세기 러시아 명화

by 갤러리 까르찌나
알렉산드르 이바노프(1806~1858),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1837~1857년, 540 х 750cm, 캔버스에 유채,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지금까지 이런 그림은 없었다.
트레챠코프 미술관 최고의 작품


유명 영화의 한 대사처럼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작이다.


러시아 그림의 보고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방문하면 우리가 제일 처음으로 압도 당하는 그림은 바로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다. 우선 가로 7m, 세로 6m 크기의 대작이 미술관 한쪽 벽면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크기에 한 번 놀라고 또 이 그림에 담겨 있는 스토리와 미술사적 위치를 알게 된 후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그림이다. 그만큼 러시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며 러시아 미술이 19, 20세기 폭발적 부흥을 일으키는 데 불꽃 같은 역할을 한 그림이기도 하다.




러시아 최초의 근대적 혁명 <데카브리스트 반란>을 겪으며 탄생한 그림
고국을 아파하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그림


우선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러시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 한 가지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1825년 12월 니콜라이 1세 시절 러시아에는 최초의 근대적 혁명인 데카브리스트 반란이 일어난다. 러시아에서 농노제 폐지를 목표로 귀족 출신의 청년 장교들이 귀족 정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으나 일반 대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지 못하여 거사는 실패했고, 보수 반동 정치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일로 주동자 다섯 명이 처형당하고 1,000여 명의 젊은 지식인들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러시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혁명과 개혁의 불씨를 심는 계기가 된다. 푸시킨 또한 데카브리스트 반란에 대한 황제의 처사에 분노를 느끼며 「시베리아에 보낸다」라는 시를 썼다.


이바노프도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황실의 후원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지만, 참담한 조국의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황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이바노프는 유학생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미술 아카데미 교수였던 아버지조차 학교에서 쫓겨났다. 불순한 반정부 세력으로 낙인 찍힌 이바노프는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고 아주 불우한 생활을 연명했지만, 예술과 조국에 대한 자존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머물렀던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그림과 관련된 습작 600점 이상을 그리며 대작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완성한다.


그리고 차르 니콜라이 1세 사후 27년 만에 이바노프는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고향 땅을 밟은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가의 살아 생전에 이 그림은 팔리지 않았으며 이바노프가 세상을 떠난 후 경매에 부쳐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은 이바노프를 그렇게 만든 니콜라이 1세의 아들인 알렉산드르 2세가 구입했으며 심지어 그림에 강한 애정을 보여 궁전 안에 이 대작을 걸기 위한 별궁을 따로 설립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토록 핍박했던 작가의 그림을 아들이 주저없이 구입한 것이다. 트레챠코프 또한 이 작품에 강한 애정을 보였지만, 황제에게 그림을 양보하고 자신은 습작을 사들인다. 당시에는 이처럼 이바노프의 그림이 나뉘어 수집되었지만 현재는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원작과 습작이 함께 전시되어 그림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림의 내용은 이러하다.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장 29절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 중앙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세례 요한이 저 멀리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이렇게 외친다.

”저기 우리 앞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도다.”

바리새인들, 로마 병사, 죄인들, 젊은이, 늙은이 등 각계각층 사람들이 요르단 강변에 모여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를 바라본다. 그림 중앙에 십자가를 들고 서있는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믿는 자는 왼쪽에, 믿지 않는 자는 오른쪽에 위치해 그리스도의 도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 위치한 믿지 않는 자

현세는 구세주의 등장이 필연적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계층별로 다르다. 당연히 기득권을 쥐고 있는 오른쪽에 위치한 자들은 현실의 달콤한 안락이 즐거울 것이니 구원이니 해방이니 따위는 필요 없다. 세례 요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그들의 안락을 뒤집어놓는 훼방꾼이 있으니 적의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마치 예수가 서 있는 저곳이 세상 부조리와 거짓의 표상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하는 그런 분위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수를, 구원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세례 요한 뒤로 성자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붉은 머리 젊은 요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세례 요한 뒤로 성자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붉은 머리 젊은 요한이 있다. 그들은 예수의 출현에 기뻐한다. 그들의 웅성임이 생생하게 들리듯 그림이 사실적이다. 현실의 비참함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 모두 부풀어 있는 듯하다.

우선 그림 속 수많은 인물들 중 주목해야 할 한 사람은 왼쪽 무리 끝 즈음에 서서 두 눈을 질끈 감고 이 현실을 외면하는 듯 서있는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이다. 바로 『죽은 혼』, 『검찰관』 등을 쓴 작가 고골이다. 이바노프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그 또한 이바노프와 동시대를 살며 현실 구원이란 주제로 고민하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한 작가다. 하지만 참혹한 러시아의 현실에 좌절하여 모든 희망을 접어버린다. 참혹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이바노프는 그런 그를 그림 속에 그려 넣는다. 러시아의 참담한 현실을 걱정하는 고골이지만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며 현실을 외면한다. 참혹한 현실 앞에 외면을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을 빗대어 고골의 침묵을 작가는 그려 넣었을 거다. 그리고 러시아의 현실 앞에 침묵하는 많은 자들에게 왜 가만히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질문하는 듯하다.


작가는 황제의 압제 하에 숨 못 쉬며 고통받는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간절히 원하는 러시아의 염원을 예수의 모습을 빌려 표현하고 있다. 예수라는 구원자가 나타나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변혁시켜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주는 뼈아픈 교훈을 훌륭하게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예수의 도래에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는 세례자의 얼굴

특히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 속 각 인물의 부분화들이 메인 그림 양 옆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대작을 그리기 위해 이바노프는 600점이 넘는 습작을 그렸다. 마치 휴대폰에서 확대해 보기 기능처럼 부분별로 그려진 습작들이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각 인물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다. 습작들은 트레챠코프 미술관 10~12번 방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부분화들을 꼼꼼히 살피며 본 그림과 비교해 보는 재미 또한 다른 미술관에는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거리상 메인 그림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섬세한 부분들(예수의 도래에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는 세례자의 얼굴이나, 예수의 도래를 의심에 찬 눈으로 쳐다보는 바리새인의 표정 같은 요소)이 너무도 흥미롭다.심지어 습작의 수준을 본 그림을 능가하는 경우도 여럿 있다고 한다.



예수의 도래를 의심에 찬 눈으로 쳐다보는 바리새인의 표정

그렇게 습작들을 천천히 보다 보면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햇빛이 비치는 나뭇가지 부분화

세례 요한 뒤에 서 있는 나무를 보자. 나뭇잎의 색깔이 빛을 받는 양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서유럽 화가들이 빛을 표현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기는 19세기 중반이다. 나뭇잎이 빛을 받아 색깔이 다르게 표현된 점이나 바람에 살랑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라든가 물표면이 아른거리는 것 등은 프랑스 화단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상주의적 표현과 통한다. 오히려 그 표현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이런 사실들은 트레챠코프 미술관 11번 방에 걸려 있는 <나뭇가지 에튜드>나 <성 밑에 있는 돌과 물> 등의 습작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 미술계를 뒤흔든 프랑스의 인상주의가 러시아에서는 19세기 이바노프에 의해 이미 시도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물표면이 아른거리는 모습


이 같은 사실은 어느 나라가 미술 표현에 앞섰는지를 따지려 밝히는 것이기보다, 그만큼 이바노프의 천재성이 대단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러시아 미술의 우수성을 되새겨보자는 의미를 가진다.












<이 그림이 걸려있는 트레챠코프 미술관의 전시 모습>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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