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벨 페도토프의 <소령의 구혼>

19세기 러시아 명화

by 갤러리 까르찌나
02_02 소령구혼.jpg 파벨 페도토프(1815-1852), <소령의 구혼>, 1848년, 58.3 х 75.4cm, 캔버스에 유채
화폭에 담긴 인간사
그림으로 보여 주는 시대상


마치 마법의 지팡이가 그림 속 시간을 정지시켜 버린 것일까요?

상영되던 영화의 한 장면을 잠시 정지시켜 놓은 느낌입니다.


옅은 분홍빛 드레스의 여인은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워요.

이렇게 치장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을 겁니다.

제일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정성스레 머리를 빗고 ‘내 님은 누구일까? 어찌 생겼을까?

처음 보는 내게 어떤 눈빛을 아니 어떤 첫마디를 건넬까?' 생각하며

두 볼을 붉게 물들이고 남편감을 기다렸을 거예요.

네, 그림 속 풍경은 바로 결혼을 위해 남녀가 처음 만나는 맞선 자리입니다.

아마도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권력과 부가 만나는 맞선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결혼 상대에 실망한 신부, 그녀가 못마땅한 어머니

당시 러시아의 부유한 계층들은 모두가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대요.

그림 속 여인도 어려서부터 읽은 프랑스 낭만 소설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미래의 결혼할 그분을 만나면 그분 앞에 손수건을 살짝 떨어뜨리고,첫만남의 남자는 떨어뜨린 손수건을 집어들며 '이 아름다운 손수건이 당신의 것이오'하며 첫마디를 건네올 그분과의 낭만을 기대하며 가슴 떨려 했을 거예요.


하지만...

설렘을 기대했던 만남에서 그녀는 “이건 아니야!”를 외치며 몸을 돌리고 있네요. 낭만의 징표인 손수건이 휴지 조각처럼 바닥에 던져버린 채로 말입니다.


그녀의 남편이 되고자 찾아온 남자는 딱 봐도 풋풋한 아가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저씨같은, 이미 세상의 때가 묻을 만큼 묻은, 고작 소령이라는 사회적 지위 하나만 부여잡고 지참금을 두둑이 뜯어내 앞으로의 일신을 편안히 돌보려는 속물처럼 보입니다.

문 앞에 기대서서 '혹시 나 홀대하는 거요? 감히 내게?'라는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는 소령의 모습이 참으로 느끼합니다.



소령과 결혼시키려는 의지가 강해 보이는 신부의 어머니

번들거리는 자줏빛 비단옷을 온 몸에 두른 여인의 어머니는 휙 돌아서는 철딱서니 없는 딸이 못마땅합니다. 그녀에게서 결혼은 남녀에게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일이지요.

이 불변의 절대적 진리를 두고 철없이 구는 딸 아이의 옷자락을 어머니는 세게 잡아당깁니다.

결국은 가장 힘이 세 보이는 엄마가 본인의 의지대로 소령에게서 권력을 사서 딸에게 안겨 줄 거예요.






이 거래로 복비를 두둑이 챙겨야 하는 중매쟁이는 아가씨의 돌발 행동에 몹시도 불편한 표정입니다.

매우 불편한 상황에 신부 아버지를 다그쳐보는 중매쟁이

혹시라도 이 결혼이 깨질까 노심초사하는 거지요.

거래의 성사에 전혀 힘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아버지라도 다그쳐 봅니다. 검은 옷의 아버지는 중매쟁이를 묵묵히 받아낼 뿐이네요.

“난 이 집에서 힘이 없다우.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도 아내가 가져온 지참금 때문이라오. 난 무능력한 상인… 아내는 그것이 천추의 한이 된 사람이라오”라고 소심하게 중얼대는 듯해요.

수십 년 알코올에 절어 붉어진 아버지의 콧잔등이 현실에 흥분하는 항변으로 착각되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체념하고 신부를 지켜보는 유모

이 연극 같은 장면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소녀를 쳐다보는 분홍 옷의 여인입니다.

손님을 접대할 상차림에 분주한, 앞치마를 두른 여인은 어릴 적부터 그녀를 키운 유모인 것 같아요.

딸 같은 그녀가 사랑이 아니라철저히 계산된 현실에 희생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하지만 유모는 힘이 없답니다.

체념하고 지켜볼 뿐이예요.


그림으로 시대상을 꼬집는 풍자 풍속화
페도토프의 '소령의 구혼'


당시 러시아에도 황금 만능주의가 팽배,

인륜지대사인 결혼마저도 돈과 권력에 의해 사고 파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많았나봐요.


그런 웃픈 현실을 페도토프는 그림으로 따끔히 꼬집습니다.



대물묘법으로 시대를 대변하는 풍자 풍속화
그 대표 작가인 "파벨 페도토프"


페도토프는 러시아 풍속화의 한 장르인 풍자적 풍속화를 집대성한 작가라 합니다.

이 작품은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렸어요. 아주 생생하게요.

이렇게 그리는 기법을 대물묘법이라고 하고

19세기 러시아 미술을 상징하는 풍속화는 대부분 이 기법으로 그려집니다.


러시아 소설에서도 그러하듯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 주는 현실의 세계를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받아들이다가 순간 그 속에 숨겨진 참뜻을 깨닫고 난 후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이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풍속화입니다.


당시 러시아 민중의 눈이되고 입이 되어 그들을 대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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