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위트와 유머로 현실을 보여주는
풍자적 풍속화

19세기 러시아 명화

by 갤러리 까르찌나

위트와 유머로 현실을 보여주는 19세기 풍자적 풍속화


◆ 파벨 페도토프

마치 한편의 작은 드라마를 보듯 페도토프의 풍자화 속에는 현실의 가장 서늘한 아픔이 배어있다.

하지만 그 현실을 보여주는 작가의 기술은 위트와 유머로 반짝거린다. 웃음을 통해 환멸과 냉소를 표현하는 블랙 코미디 같은 그림이다.

15번방 파벨 페도토프 (1815-1852)신출내기 사교계 남자 (1847)48,5 х 42,5.jpg 파벨 페도토프(1815~1852), <신출내기 사교계 남자>, 1847년, 48.5 х 42.5cm, 캔버스에 유채,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림 속 남자는

귀족이라는 신분 하나를 밑천으로 살아가는 방탕한 장교다.

아마도 매일 매일 사교계를 누비며 돈 많은 여인 한 명 꼬시는 것이 인생의 목표일 것이다.

허름한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오늘도 파티에 출석하기 위해 단장을 하고 있다.

머리에 종이 파마를 덕지덕지 붙이고, 곧 사교계 꽃미남으로 변신하기 위해 분주한 상황인 것 같다.

하지만 밀린 방세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주인 여자가 남자를 찾아와 닦달을 한다.


그녀의 달갑지 않은 방문과 다그침에 남자는 입을 삐죽 내밀며 손가락으로 훈장을 가리킨다.

마치 '내가 바로 황제의 훈장을 받은 사람인데 그깟 집세 몇 푼에 평민 주제에… 흥!’ 하며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그래도 귀족이랍시고 걸레로도 못 쓸 것 같은 더러운 가운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다.


그림 속 그의 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방세는 갚지 못하더라도 기본 소비 수준은 줄일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방바닥에는 지난밤 마신 포도주 병이 널브러져 있고 한량의 대표 놀이기구인 기타도 있으며,

심지어 천장을 보면 새장에 새까지 키우고 있다. 자기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웃어야 할지 비난해야 할지.. 그런 그에게 주인은 이렇게 소리친다.


“집세를 갚을 때까지 당신의 가죽신과 커피 분쇄기는 압수예요!”


그의 유일한 재산인 가죽 신발을 담보로 가져가려 한다. 사실 러시아에서 신발은 곧 생명줄이다.

눈이 발목까지 쌓이는 추운 날씨에 두꺼운 가죽신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조금만 기다려 주면 한 번에 다 갚아 버릴텐데’라며 남자는 입을 내밀고 집주인과 실랑이하지만

갚을 길이 막막한 것은 누구나 아는 현실이다.

작가는 당시 현실을 망각하고 오로지 유희에 찌들어 있던, 몰락한 러시아 귀족들을 이렇게 풍자한다.


02_02 소령구혼.jpg 파벨 페도토프(1815~1852), <소령의 구혼>, 1848년, 58.3 х 75.4cm, 캔버스에 유채
파벨 페도토프 귀족의 아침 식사 1849-1850년  캔버스에 유채 51x 42 트레챠코프 미술관.jpg 파벨 페도토프 귀족의 아침 식사 1849-1850년 캔버스에 유채 51x 42 트레챠코프 미술관
파벨 페도토르 까다로운 신부 1847년 캔버스에 유채 37x45.jpg 파벨 페도토르 까다로운 신부 1847년 캔버스에 유채 37x45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 바실리 푸키레프

02_01 불평등 결혼.jpg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불평등한 결혼식>, 1862년, 173 х 136.5 cm, 캔버스에 유채,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칠십 살은 넘어 보이는 노인과 손녀뻘 되어 보이는 여린 소녀가 백 년을 함께 살자고 가약을 맺는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남자가 금방 핀 한 떨기 꽃같은 예쁜 여자 옆에 서서 결혼의 촛불을 밝힌다. 쭈글쭈글한 남자는 제일 좋은 양복을 입고 반짝반짝 광을 낸 블라우스 리본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가슴에는 황제에게 하사 받은 황실 훈장을 다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알코올에 찌든 것일까, 너무 어여쁜 신부 모습에 수줍은 것 일까,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늙은 남자는 곁눈질로 가련한 소녀를 힐끔거린다.


백옥같이 빛나는 하얀 드레스에 우아함과 순 수함까지 차려 입은 청초한 여자는,

‘행복, 순결, 반드시 행복해집니다’라는 꽃말을 지닌 은방울 꽃을 가슴에 달고,

머리에는 아직 피지도 않은 은방울꽃 화환을 예쁘게 쓰고,

축 늘어진 힘없는 손을 어렵게 내밀어 결혼반지를 끼려 한다.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두 눈은 초점을 잃고 바닥을 헤맨다.

이미 포기한 맘 이야 붙들어 맬 수 있지만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애써 참으려는 그녀의 울음이 눈 주위로 붉게 일어나고 앙다문 양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금실 은실로 겹겹이 수놓은 사제복을 휘황찬란하게 차려 입은 대 머리 사제는

구부정한 허리를 똑바로 펴지도 못하고 어린 신부의 미래를 옭아매려 허겁지 겁 매달리고 있다.

늙은이와 소녀를 엮는 데 가장 큰 공을 세 운 노파는 이 결혼이 허사가 되진 않을까 노 심초사 노려본다.

그리고 이 둘의 인연에 더 얻어낼 것은 없는지 주름진 싸늘한 눈을 희번덕인다.


신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늙은 하객 4인방은 늘그막에 횡재한 친구가 심히 못마땅하다.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다. 늙은이들의 심통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들의 뒤틀린 시선이 그림 전체를 건조하게 만들고 얼굴에 진 주름만큼이나 겹겹이 한숨짓게 한다.


그런 그들을 그림 한쪽에서 팔짱을 낀 채 우울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은방울꽃의 어린 신부와 나란히 서면 딱 어울릴 법 한 턱시도의 젊은 남자는 푸키레프 자신이란다.

빚을 갚지 못하는 농노의 어린 딸을 선뜻 자신의 노리개로 취 하고 말도 안 되는 불합리를 재력으로 포장하는 현실을 작가 자신은 비통한 얼굴로 바라본다.

그림 한켠에 야멸차게 자리 잡아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참담한 현 실을 고발한다.

조용히 호통치는 것이다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지참금 목록 1873년 캔버스에 유채 66x73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jpg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지참금 목록 1873년 캔버스에 유채 66x73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돈으로 거래하는 결혼 지참금 목록을 챙기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결혼 절차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신부 어머니는 분홍빛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내보 인다.

드레스의 아름다움을 찬사하는 말 한마디 건네면 좋으련만

검 은 옷의 신랑 측 집사는 지참금 목록을 손에 들고 빠진 것이 없나 점 검하느라 분주하다.

신부는 어머니와 신랑 측 집사와의 메마른 거 래를 근심스레 쳐다본다.

이 삭막한 분위기 속에 삶을 끼워 넣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한 것일까, 아님 조금이라도 더 챙겨가길 원하는 걸까. 어머니와 집사와의 거래에서 한 발짝 물러나 불안하게 서성 인다.

들어오십사 정중히 권하는 신부 측의 환대도 거부한 채 문 앞쪽에 서 있는 신랑 측 사람들의 거들먹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신부가 신 랑 측에 건넬 혼수품을 챙기는 하녀의 손길 또한 몹시 분주하다.

방안 가득 메우고 있는 건조한 돈의 기운이 19세기 러시아의 황폐 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 레오니드 솔로마트킨

01_09 경찰의찬송.jpg 레오니드 솔로마트킨(1837~1883),<경찰의 전송>, 1882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크리스마스인지, 아님 러시아 부활절인지 모르지만,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경찰들이 상인의 집을 방문했다.


정복을 차려 입고, 다소곳이 모자를 옆구리에 끼고 성과 열을 다해 찬송을 한다.

표정이 사뭇 진지하고 엄숙하다. 아주 깍듯한 자세로 상인 집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듯한 모습이다.

불그스레 달아오른 경찰들의 취기 어린 얼굴을 보니

온 방 안에 가득 차 있을 알코올 냄새가 그림에 묻어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한쪽 눈은 집요하게 상인의 지갑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자신들에 대한 환대 정도를 상인이 꺼내는 지폐의 두께만큼으로 가늠하는 경찰들인지라,

얼마를 꺼내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상인의 얼굴은 묵묵히 굳어 흑색에 가깝다.

경찰은 웃고 있지만, 상인은 속으로 울 것이다.

그녀의 아내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지 뒤돌아서 귀를 막고 있다.

경찰의 노래가 돈을 내놓으라는 소리로 들려 도저히 참을 수 없나 보다. 그냥 외면이 최 고인 듯 온몸을 웅크린다.

경찰들은 이런 설정이 한 두 번이 아닌 익숙함으로 자연스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19세기 말엽 러시아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는 부조리를 화가는 익살스럽고 장난스럽게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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