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풀 Apr 02. 2022

나를 키운 건

10년 생활의 기록



너희와는 사실 준비되지 않은 만남이었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의 손을 빌려 생활하던 경제력 없는 학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결심이기도 했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누구나 한 번쯤은 바라던 동물 키우기의 꿈을 드디어 이루는구나! 에 그쳤을 뿐이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된, 당시 남자 친구 어머님의 집 마당에 들어와서 생활하던 하얀 길 고양이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고 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어서 중성화 수술은 되어있지 않았는데 어느 날 보니 임신을 했던 것이다. 그 아이들을 거두어 키울 순 없으니 주변 사람에게 새끼들을 분양했다. 그중 두 마리가 너희였다. 그렇게 작은 고양이는 생처음 봤다. 크기는 손바닥 만했고, 꼬리엔 털이 하나도 없어서 쥐 같았다. 어미가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은 탓에 태어난 지 3주가 채 되지 않을 때에 우린 만났다.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너희와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고난의 육묘 생활이 시작되었다. 불린 사료조차 먹지 못하는 시기여서 분유를 먹였다. 인간 아이와 같이 두세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 밥을 달라고 울어대는 통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졸린 눈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분유를 태워 빼액 빼액 울어대는 너희의 입에 번갈아가며 젖병을 물렸다. 수업과 수업 사이 비는 시간마다  집으로 뛰어들어가 또 분유를 탔다. 길고도 짧은 시기였다. 그 당시엔 갓난아이를 돌보는 부모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동물과 인간의 시간 흐름은 다르니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너희는 가끔 아팠고 나는 가끔 괴로워했다. 고양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키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알아채야 할 것을 모르기도 했다.  뒤늦게서야 책을 보고는 바보 같은 탄식을 내뱉곤 했다. 빨리 알아챘더라면 너희가 덜 힘들었겠지. 처음이라 서툰 일 투성이었다.



너희와 함께하기 전과 후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전보다 부드러워졌고, 더 웃었다. 스스로 너그러워진 듯한 느낌도 받는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없고 스쳐 지나갔을 동물학대, 동물복지, 유기견, 유기묘 이야기들도 자꾸만 눈에 밟힌다. 1년에 한두 번 동물복지단체에 기부를 하고, 가방엔 길고양이와의 뜻밖의 만남을 대비하여 간식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경험을 먹고 자란다 했다.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을 덕분에 느낀다.



함께한 시간이 쌓이며 나는 자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냠냠과 념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