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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풀 Sep 05. 2023

선생님, 이거 진도가 너무 빠른데요.

초급 강습 첫날



 드디어 강습 첫날이다. 아파트 바로 앞이라, 지하에 차를 주차한 후 챙겨 온 목욕바구니를 들고 센터로 향했다. 첫날이니 넉넉하게 40분 전인 5시 20분에 센터에 도착했다. 데스크에 가서 회원증을 받고는 지하로 내려갔다. 다음부터는 회원증을 찍으면 사용할 사물함 번호가 적힌 종이가 출력이 되니, 그걸 가지고 입장하면 되는 형식이었다. 오늘은 처음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껏 잘 살펴야 했다.


 누가 봐도 처음 온 사람처럼 어색하게 목욕바구니를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흠흠 언니이모들! 저 에티켓, 유튜브로 다 공부했어요. 치약을 쭉 짜내어 양치를 하고, 비누망 거품을 팍팍 내어 머리부터 감았다. 바싹 마른 수영복을 물에 적혀 비누칠을 한 후 낑낑대며 입고 수모를 집어 들었다. 수모.. 이거 너무 어렵다. 팅! 팅! 소리를 내며 벗겨지기만을 반복한다. 정유인 선수 유튜브에서 수모 절개라인을 이마 정중앙에 맞추고 탁 쓰라고 했는데 왜 안되냔 말이야. 겨우겨우 수모를 쓰긴 했는데, 이거 왜 자꾸 벗겨지는 거지? 눈썹 바로 위까지 한껏 끌어내려 수모를 쓰곤 수경까지 머리에 걸쳤다.


수영장으로 나가는 다른 분들의 뒤를 쫓아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자유수영 시간이라 모두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초보 수영은 어디서 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뻘쭘하게 바깥에 서서 멀뚱히 기다렸다. 55분쯤 되자 관리감독이 호루라기를 불었고, 물속에 있던 모두가 나왔다. 수업이 있는 분들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고, 수영을 마친 분들은 탈의실 쪽으로 이동했다. 쪼르르 앉은 마지막 분에게 다가가 초보, 여기 맞냐고 확인 후 물속에 다리를 담그곤 기다리기 시작했다. 6시가 되자 강습생들과 선생님이 다 모였다.

 처음은 일렬로 서서 물속 걷기. 걷기도 쉽지 않았다.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몸이 흔들흔들거렸다. 그 흔들림이 무서워 벽과 레일을 잡고 걸었다. 두 바퀴를 돌고는 선생님 앞으로 모였다. 기존 회원이 반, 처음 등록한 사람이 반이었다. 병력 등을 확인한 후 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 차, 물에 얼굴 담그기를 했다. 물 무서워하는 인간, 여기 있어요 선생님. 벽에 등을 기대고 선 상태였는데, 그 상태로는 얼굴을 도저히 숙일 수가 없었다. 옆으로 서서 한 손으론 벽을 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 숙이기를 하고 나서는 앉아서 머리를 물속에 다 집어넣기를 했다. 도저히 머리를 담글 수는 없어서 무릎을 굽혀 입까지만 들어갔다 나왔다. 나처럼 물을 무서워하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보다는 내가 더 공포증이 심했다. 서로 쳐다보곤 동지네요, 하며 웃었다. 앞날이 캄캄했다.

 다음으론 팔을 쭉 뻗어 벽을 잡고 귀까지 푹 잠기도록 머리를 넣고 뒷다리를 띄워 물에서 뜨기를 했다. 빠른 진도에 점점 정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다리 사이에 풀부이를 끼워서인지 가볍게 떠올랐다. 숨이 턱, 하고 막혔지만 그래도 이건 발리숙소에서 몇 번 해봤기에 시도할 수 있었다. 기존 초급 수강생 분들이 있어서 그런지, 진행속도가 빨랐다. 모든 건 두 번 정도 해보고, 바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나란히 일렬로 줄을 서서 킥판을 들고 풀부이를 끼우고 물에 떠서 이동하기 ( 발차기 없이 )를 진행했다. 벽을 밀어내며 출발하면 선생님이 조금 더 밀어주셨다.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이동한 후 일어나야 했다. 물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제일 어렵다. 발이 닿는 곳이라는 걸 알지만, 꼭 빠질 것만 같다. 일어나는 법을 몰라 항상 허우적 대며 일어났다. 두 번 반복 후, 킥판을 빼고 부표만 끼운 채 물에 떠서 이동하기, 마지막으론 부표까지 빼 버리고 맨 몸으로 이동하기까지 진행했다. 출발할 때 벽을 차고서 출발하라고 하는데, 첫날부터 나에겐 너무 어려운 내용이다. 선생님이 몇 번이나 도와주시려고 했으나 결국은 그냥 평지에서 출발했다. 그것도 첫날치고 많이 한 거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떠 있다가 일어날 때 허우적 대는 모습을 보곤, 팔을 뒷 쪽으로 밀면서 일어나라고 얘기해 주셨다.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수업의 마지막은 새우등 뜨기. 회원 한 분이 시범을 보이셨다. 아니, 선생님. 물속에서 무릎을 안으라니요. 내 표정을 본 선생님은 나와 동지를 맨 끝으로 불러내 봐주셨다. 다른 회원분들은 동동동, 잘 떠올랐다. 내가 더 무서워하는 것 같으니, 다른 회원분을 먼저 봐주셨다. 한 번에 성공하시네, 나 어떡해. 물속에서 발을 어떻게 띄우나요, 선생님?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들어 올리라는데, 내 다리 누가 밑에서 잡고 있나. 두 번 실패하고 나서는 그만 하나 했는데, 왔으니 한 번은 해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본인을 믿고 다시 해보자는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다시 고개를 숙여본다. 한 번만 내 몸이 자연스럽게 뜬다는 걸 알면 된다고 했다. 용기를 내어 다리를 접어 깍지 낀 손으로 무릎을 껴안았다. 뜬다!라는 걸 인식하자마자 무서워서 금방 고개를 든다.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집에 돌아와선 유튜브로 초보 수영을 검색해 봤다. 물속에서 일어날 땐 무릎을 끌어당기며 손을 뒤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자유 수영 시간에 연습을 해야 할 듯하다. 내일은 주말이니 혼자 가서 물속에 다 잠기도록 앉기 연습과 물에 뜨기 연습, 물속에서 잘 일어나기 연습을 해 봐야겠다.


강습수영의 맛은 이런 것이구나, 제대로 느꼈다. 내 순서가 되면 무서움을 참고 여지없이 물속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것이 곧 조금씩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도 하나를 해내고 나면 조금 물이 편해졌다. 혼자서라면 무서움을 넘어서질 못할 것을 함께하니 어떻게든 해내게 된다. 수업의 끝에 다 같이 동그랗게 모여 손을 맞잡고 파이팅! 을 외치고 끝나는데, 그게 참 기분이 좋다.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좋고,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모두를 함께 격려하는 그 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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