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사과1

선과 악, 나는 데미안이었다.

by 희블리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신영통에서 동탄으로 넘어가는 92-1번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3년 내내 수도 없이 다녔던 길, 엉덩이가 닳을 정도로 탔던 버스,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상점의 위치와 간판. 모든 게 어제와 같았던 나의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간 건 그날부터였다.


야간, 자율, 학습. 자율적으로 학교에 남아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걸 뜻하는 이 단어에 담긴 어폐는 비단 나만 느낀 건 아니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강제적으로 학교에 남아있다고 주장하며 불만을 터뜨렸는데, 이는 미술과 음악과 같은 특기 활동을 하는 학생을 제외하는 조항에서 파생된 분노였다. 그런데 오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아, 나 우산 안 갖고 왔는데.”

“엄마한테 데리러 오라고 해야겠다.”

“아 짜증나, 앞머리 다 풀리겠네.”


웅성거리는 분위기에 스며들지 못한 한 명이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야, 니들 조용히 안 해? 비가 와서 단체로 미쳤나, 얼른 앉아서 책 펴!”


복도를 지나던 야자 감독 선생님의 호령에 웅성거림이 칼 자른 듯 딱 멈추었다.


“희주 좀 봐라 이것들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우리 희주. 얼마나 예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책을 보던 나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다들 튈 생각 하지 말고! 어? 알았어?!”


하이힐 뒷굽을 또각거리며 교무실로 향하는 선생님의 발걸음 소리가 잦아들자 딱 네 글자가 이어폰을 비집고 내 귀에 박혔다.


“재수 없어.”

“야~ 들리겠다.”

“들으라고 한 소린데?”


또다시


‘쿵’


불안정하게 뛰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표정을 지운 채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내가 저들 중에 속했더라면 나도 그들과 같은 시선과 같은 말을 ‘너’에게 던졌겠지, 아니라면 더러운 함박웃음을 짓고 손뼉을 치며 널 조롱했을까?


‘나’도 ‘너’도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차디 찬 멸시 속에서, 밤마다 제발 아침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속에서 잠이 들까?


아, 고해하자면 나는 죄가 있다. 아주 명백한 죄. 아마 무수히 많은 ‘너’에게 내가 한 죄는 지독히도 쓰고 독해서 독방에서 한 줌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썩어가도 할 말이 없다.


왜냐, 이동수업이 있는 날이면 전날부터 잠을 설치던 나는 현 왕따, 전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불온한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