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드라이기를 끄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대방의 눈빛에 동요하지 말 것, 적당함을 유지할 것. 눈...치도 적당히 살필 것. 대학교에서 배운 초임 교사로서 지켜야 할 덕목에는 영유아의 발달의 개인차를 이해하고 개별화 지도를 위해 교수, 학습 방법을 연구하고 계획하는 자세, 무엇보다 학부모와 상호 믿음과 신뢰 관계를 쌓는 것을 예시로 많이 보고 시험지에도 그렇게 써서 A를 받았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주혜가 갖춰야 할 덕목은 눈치 있게 살피기, 가벼운 엉덩이, 때와 장소를 가려 질문하기 등과 같은... 이를테면 눈치는 필수 아이템이요, 민첩함은 스킬인 점을 몸에 장착해야했다. 미어캣처럼 고개를 쭉 내밀고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며 눈치 보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와 적당한 행동과 표정으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행동은 하지 말 것.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를 평가받고, 그 평가가 내가 달고 다닐 꼬리표같은 색안경과 다름없는 이미지가 됨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늘 초예민상태로 다녔다. 지나치게 무던했던 지난 날을 청산하고 예민함을 무기로 눈치 보기 바빴던 스스로를 다독이며 멀리 보이는 출근 버스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손바닥에 홍수가 난 듯 땀이 차오르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오늘도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벨을 눌렀다. 날뛰는 7세를 기선제압하는-포스가 철철 흐르다 못해 넘치는 선생님이었던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오는, 그러니까 고경력의 포스와 여유를 풀풀 풍기며 문을 열어주러 오는 선화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다시 긴장감이 조여왔다. 문을 열어주는 선화를 향해 주혜는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꾸벅 내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특유의 무신경한 눈빛과 시니컬한 인사를 끝으로 그들 사이엔 어색한 공기가 가득 채워졌다. 선화는 그대로 뒤로 돌아 교사실로 쏙 들어갔고, 주혜는 닳고 닳아 뭉특해진 운동화 앞코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언젠가 자신의 날선 신경도 저렇게 깎이고 눌려서 반들반들한 구름처럼 둥글둥글해질 수 있을까라는 상념에 젖어들기도 전에 뒤에서 띵동, 벨이 울렸다.죽음의 종소리를 들은 것처럼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둥글둥글 앞코고 나발이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을 구원해줄, 이를테면 교사실 인터폰으로 벨소리를 들었을 시니컬 선화라던지, 문 앞의 어른 한명, 어린이 한명을 단숨에 물리쳐줄 카리스마 뿜뿜인 선화라던지, 정체 모를 누군가를 3초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기다렸지만, 주혜는 애써 입꼬리를 올린 채 여유로운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문을 열었다. 대충 걸친 듯한 체크무늬 셔츠에 무릎이 다 늘어난 회색 츄리닝 바지를 입은 남자와 똑같은 체크 셔츠를 입었지만, 그의 1/3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이의 깜찍발랄한 인사에 저절로 눈웃음이 지어졌다. 어깨 너머로 본 등원 맞이를 떠올리며 주혜도 인사했다.
“어서와~ 아빠한테 다녀오겠습니다~ 인사~”
처음 대면하는 학부모 앞에서 누가 성대에 진동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떨렸지만, 표정만은 프로처럼 태연했다.
“아빠 아니라 삼촌인데요?”
삐죽 입술을 내밀며 제 삼촌을 바라본 아이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크게 한번 꾸벅이더니 신발장 안으로 냅다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