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긴 취했나보다. 갑자기 놀라운 토요일 패널처럼 나이스를 외치다니. 귀가 떨어질뻔 했지만, 그전에 심장이 더 먼저 떨어졌다. 갑작스레 실종된 눈치라니, 늘 눈치를 챙기고 다녔던 거 같은데, 한순간에 눈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심장은 미처 준비도 못하고 수직낙하했다. 다음날 영서는 심장 브레이커인 중얼거림을 기억하지 못했고, 주혜도 그 기억을 저 멀리 뒤편으로 보낸 지 오랜데, ‘보리’색이 된 운동화를 보자니 불현 듯 지금 상황에 그 중얼거림이 생각난 이유는 뭘까.
찜찜함을 뒤로한 채 운동화를 구겨 신고 열림 버튼을 눌렀다. 어느새 비가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비를 맞고 가기엔 많이 오고, 우산을 쓰기엔 적게 오는. 그 애매하고 찝찝한 간극을 채우기에 주혜는 버겁다. 우산을 팡 펴자, 투명한 비닐을 타고 또르르 빗방울이 떨어진다. 내일은 이 투명 우산처럼 모든 사람의 의중이 투명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주혜는 생각했다.
<여은 Say>
여은은 마리오네트처럼 누군가 주혜를 조종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님 관절에 문제가 있거나. 삐걱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올챙이 때 저랬었나, 하는 의구감과 함께
유치원 꿈을 꾸었다. 그 숨막히는 교사실에서 혼나는 건 아닌데 벌서는 기분으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꿈.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도 거르고 대충 씻고 침대로 다이빙했다. 오늘 어땠냐는 엄마의 질문을 뒤로한 채 속수무책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퇴근을 했는데, 출근한 이 기분은 대체 뭘까.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면서 꾼 꿈을 되새겨보지만 기억나는 건 없고, 막연하게 교사실에 서 있던 것만 또렷이 기억난다. 이제 곧 주혜 자신도 교사실에서 서류 업무를 보고, 자주 드나드는 공간이 되어야 할 텐데, 벌써부터 그곳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일었다. 교사실 공간의 문제인지, 교사실을 가득 메운 불편한 공기인지 아직 불분명하지만 선명한 건 출근하기 싫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자식이 출근한 유치원이 어땠는지 궁금했을 엄마의 애타는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자식이 무엇이 예쁘길래, 밤새 추울까봐 온수매트는 켰을까.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밤새 충전한 휴대폰을 들었다. 아직 새벽 5시다. 이 새벽에 깬 걸 보면 악몽은 악몽인가보다. 밤새 안녕이었나 확인하기 위해 데이터를 키자마자 무수히 많은 메신저 톡 알림이 울렸다. 까톡, 까까톡,까톡 연달아 울리는 알림음에 맨 위에 있는 채팅방을 눌렀다.
‘퇴근할 때는 반드시 교실 적정 온도 맞췄는지 확인 후 퇴근 바랍니다.’
‘내일 오전 당직 선생님은 청소기 필터 끼워놓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반 **이 자차등원합니다. 등원 1코스 안 타요’
‘가정통신문 내일 발부합니다. 교사실에 있으니 가져가세요’
‘네~’
출근도 전에 출근한 기분이다. 다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대충 내용을 슥 확인한 후, 주혜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 후 채팅방을 껐다. 그리고 갈아입을 새 속옷과 잠옷을 꺼내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온수와 냉수, 제 체온과 가장 가까운, 그 중간의 따뜻함을 찾아 이리저리 끼익끼익 돌리며 온도를 조절했다. 적당한 따듯함과 적당한 수압. 업무도, 관계도 이렇게 이리 저리 돌리다보면 적당함을 갖게될 수 있을까?
긴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서 위로 올린 후 칫솔을 꺼냈다. 민트향이 가득한 치약을 묻힌 후, 본격적인 칫솔질을 시작했다. 매드맥스의 분노의 질주처럼, 차인표의 분노의 양치질을 한 건 아니지만 입안에서 비릿한 피맛이 맴돌았다. 역시 인생은 쓴맛이 아니라 비린 맛이다. 물로 입안을 헹구자 비린 맛이 온 입 속을 돌아다닌 듯 더 진해졌다. 그래도 해야할 건 해야지. 새 옷으로 갈아입자 개운함이 밀려왔다. 역시 인생은 개운함이지. 드라이기로 바람에 머리카락에 안면을 강타하며 흩날리자 오늘 마저 해야 할 일들을 복기시켰다.
‘이름표 작업은 다 했으니까, 오늘은 영역별 교구만 채우면 되나?’
‘학부모님한테 전화는 언제 한다고 했더라, 처음에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뭘 물어봐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