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후 삼촌 이야기에 여은의 뺨이 발그스레 홍조가 올라왔다. 주혜는 그런 여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각했다. 차가워보였던 여은에게 약간의 사람 냄새가 나는 건, 어쩐지 반가운 징조라고. 어쩌면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버석한 어색함 속 작은 희망에 가까운 거라고.
주혜는 곧장 시후의 반인 하늘반에 들어가 선화에게 말했다.
“선생님, 시후 오늘 태권도에서 픽업 온다고 하셨어요. 사범님이 데리러 오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선화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휴대폰을 찾는 듯 앞치마 앞을 더듬이며 말했다.
“그래요? 오늘 온 알림장에는 그런 얘기 없었는데… 시후 오늘 어머님이랑 같이 왔나요?”
주혜는 곧장 대답했다.
“엇, 아니요. 시후 삼촌이랑 같이 왔고, 삼촌분이 말씀하셨어요.”
선화는 그제야 탄식하며 대답했다.
“아~ 삼촌분이 오셨구나. 우선 어머님께 제가 다시 한번 확인해볼게요! 감사합니다”
특유의 기분 좋은 미소로 대답한 선화는 곧장 핸드폰 속 키즈노트 앱을 들어가 알림장을 눌렀다. 그리고는 빠르게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놀려 시후의 하원 변동에 대한 확인을 물었다.
하원의 경우 유괴나 납치 등 안전사고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등원보다 조금 더 세심하고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는데, 선화는 이럴 때마다 ‘미리’, ‘먼저’ 학부모가 교사에게 안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매년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하원 버스에서 내릴 때 인계 보호자가 달라지
는 경우가 난감했다. 보통은 주 양육자인 엄마가 나오는데, 그날따라 휴가인 ‘아빠’ 혹은 잠깐 놀러오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는 경우 교사는 처음 본 남성, 여성에게 아이를 인계할 수 없기에 늘 확인 전화를 한 후 인계를 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정차 중인 버스 뒤로 다른 차량이 클락션을 울리거나 ‘어머님, 오늘 하원 장소에 아버님 혹은 할아버님 혹은 할머님이 나오셨는데, 사랑이 인계해도 될까요?’라고 확인을 받아야 하는 보호자가 전화를 받지 않을 경우는 더 식은땀이 난다. 선화는 이럴 때마다 늘 생각했다. ‘제발 미리, 먼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선화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알림장의 댓글이 달리길 기다리며 투약함에 붙일 새학기 이름표를 오리기 시작했다.
그 시각 주혜는 교무실로 돌아와 할 일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괜히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원감 희숙이 들어오며 말했다.
“안녕 주혜 선생님”
“안녕하세요, 원감님”
희숙은 서랍 안에 있는 출석부와 종이 여러 장을 주혜에게 주며 씨익 웃었다.
“자! 이제 다음주면 우리 주혜 선생님 첫 제자들 오네! 이거는 주혜 선생님 반 출석부고, 애들 자료들이야. 원서랑 아이행복카드랑 등본 같은 거 잘 확인하고, 특히 엄마들이 적어준 발달상황이나 특이사항, 알레르기 잘 확인해야 해! 차량 타는 아이들, 도보 하원 아이들 잘 체크해서 새학기 첫날부터 차량 실수 없도록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주혜는 서류 더미를 받아들며 드디어 시작이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