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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29. 2022

우리는 나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남에겐 한없이 엄격하다

(글이 상당히 길 것으로 생각되는 바, 아래의 첫 문단은 본문과는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에 건너뛰셔도 괜찮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도 나지 않는 10년도 더 된 일이다. 한 후배가 나를 위로해 주면서 그런 말을 했다. '선배는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져 봐요. 남들에게는 그렇게 너그러우면서 왜 그렇게 본인에게는 엄격해요.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져 봐요.'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후배가 했던 이 말을 내가 들었던 최고의 칭찬으로 꼽는다. 내로남불의 시대. 나에겐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다는 것만큼 듣기 좋은 말이 어디 있겠는가. 내로남불의 시대가 오기 전에도 유가 경전을 두루 읽었던 나는 항상 스스로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기를 꿈꿨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는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실은 후배의 조언보다 그 말 한마디 자체가 나에겐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내가 내로남불의 사나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서도.




퇴근길에 사야 할 것이 있어 백화점에 들른 김에 아내에게 전화했다. '저녁 먹었어? 나 지금 ㅎ백화점인데, 저녁으로 먹을 것 좀 사 갈까?' 그렇게 저녁거리를 사 가면서 나는 분명 내가 그래도 썩 나쁘진 않은 남편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돌이켜 보니 그렇다. 나는 한 번도 내가 그렇게 나쁜 남편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도 아니요, 그렇다고 도박을 한다거나 재산을 탕진하는 남편도 아니요, 처가를 아예 등한시하는 남편도 아니다. 도리어 나는 그래도 내가 개중에 조금 좋은 남편 쪽에 해당한다고 내심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세상에 이렇게 처조카와 같이 바닥을 기어 다니며 놀아 주는 고모부가 어디에 있을 것이며, 아내의 8촌 행사까지(정말 8촌이 아니라 그만큼 먼 친척) 쫓아다니는 남편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처조카와 같이 바닥을 길 때마다, 아내의 집안 행사를 갈 때마다 나는 내심 스스로가 그래도 썩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 내게 아내는 크산티페까지는 아니어도 썩 좋은 아내가 아니었다. 남편을 인정하고 잘 대해 주기를 하나, 시댁을 잘 모시기를 하나, 그렇다고 가사를 잘 챙기길 하나. 이유를 대라면 셀 수도 없겠지만 마음속 깊이 쌓인 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깨닫는다. 개중에 내가 아내에게 대놓고 따질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사를 잘 챙기지 않는 것은 아내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나는 결혼하기 전에 나의 끼니를 잘 챙겨 주는 아내를 만나길 바랐지만, 아내도 나와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고 비슷한 만큼 번다.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아내가 나의 끼니를 꼭 챙겨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댁에도 내가 처가에 하는 만큼은 했다. 기억해 보면 지지난달에 어머니께서 입원하셨을 때도 아내는 자기도 꼭 나누어서 병간호를 해야 한다고 했었다. 과연 나는 아내가 나처럼 말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따져 보면 아내도 꼭 나만큼은 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원래 더 많은 것을 바랐을 뿐이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아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항상 나를 더 못한 사람들과 비교했다. '그래도 내가 아내에게 폭력적인 남편은 아닌데', '그래도 나는 도박이나 마약을 하는 남편은 아닌데', '난 그래도 어딜 가서 사고 치고 다니는 남편은 아니잖아', '내가 경제력이 아에 없는 것도 아닌데', '나 정도면 그래도 처가에 잘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비교를 하고 보니 나는 꽤나 좋은 남편이었다.


반면에 나는 아내를 항상 더 낫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교했던 것 같다. '누구 아내는 생일도 잘 기억하고 챙겨 준다는데', '누구는 똑같이 일해도 밥도 잘 챙겨 주던데', '누구는 항상 시댁이 우선이던데', '누구는 남편에게 정말 잘하던데' 등등.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한 번도 '누구 아내는 바람을 폈다더라', '누구 아내는 남편을 때린다더라', '누구 아내는 잘못해서 집안의 전 재산을 날렸다더라' 이런 사례와 아내를 비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비교 대상 자체가 달랐다. 그렇게 했다면 아내도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크산티페와 같은 악처는 되지 않았을 터였다.




머지않아 결혼한지도 벌써 5년이 된다. 물론 5년 내내 저렇게 생각하고 살았을 리 없다. 내가 아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는 대체로 아내가 결혼 생활 초기에는 내게 보여주었던 것들이기 때문에.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우리도 신혼이 지나가면서 (아니 어쩌면 지나갔고) 그냥 그렇게 변해 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그렇구나. 실은 아내가 나쁘고 악처였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원래 정당한 것이었을 수도 있음을. 아내의 변화를 보면서 나는 한없이 좋은 남편인데 아내가 한없이 나쁜 아내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은 내가 그저 그런 아주 평범한 남편이었던 것처럼 (혹은 아주 후하게 쳐줘서 평균보다는 조금 좋은 남편?) 아내 또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실은 비교 대상이 잘못된 것이었을 뿐 그냥 그저 그런 아주 보통의 아내(혹은 평균보다는 조금 더 좋은 아내)였음을 깨닫는다.


알고 보니 그동안 나는 그저 나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겐 한없이 엄격한 내로남불의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나. 내로남불을 극복해도, 혹은 극복할 수 없는 또 다른 문제가 우리에게는 있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것은 다음 편에 다시 적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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