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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Nov 05. 2022

통영일기: 스물닷새째.

한산도 그리고 마지막 승마

# 승마 마지막날


밤새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좁은 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잔 탓이다. 2인용 침대가 하나 있어서 두 분이서 침대에서 주무시고 내가 바닥에서 자겠다고 했더니 침대가 불편하다며 본인들께서 바닥에서 주무시겠다고 하셨지만 부모님은 일찍 주무시는 편이기 때문에 결국 부모님을 침대로 모시고 내가 바닥에서 잤다. 이쪽이 마음이 더 편하다.


통영 한 달 살이와는 상관없는 쓸데없는 이야기 좀 덧붙여 볼까.


장교로 임관하고 나면 부임할 부대로 일주일 정도 실습을 나간다. 지금도 15년 넘게 연락하고 지내는 선배를 실습을 나가서 만났는데 선배가 일주일 동안 방에서 나를 재워줘야 했다. 1인실이었기에 침대는 당연히 혼자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배가 내게 침대를 양보하는 것 아닌가. 다른 곳도 아니고 군대다. 나도 절색을 하며 사양했지만 선배가 자기는 원래 바닥에서 잔다며 너가 침대가 싫으면 바닥에서 같이 자면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주일 동안 내가 침대를 썼다. 넉 달이 지나서 후배들이 실습을 왔고 나도 방에서 후배를 함께 재워야 했다. 3명이나 함께 왔던 까닭에 바로 내 위의 선임이었던 선배도 이번에도 방에 후배를 받아야 했다. 넉 달 전의 기억이 생생했던 까닭에 어느 날 후배에게 '너는 침대에서 자지?' 하고 물었더니 이 후배가 뭔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후배가 웃으면서 안 그래도 나를 재워 주었던 그 선배가 그때 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찬 바닥에서 자다가 입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고 너는 그냥 바닥에서 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 나에게 해 놓은 말이 있어서 중간에 바꾸자고는 못했다고. 지금 생각해도 나에게는 너무 유쾌한 기억이다.


부모님께서는 일찍 주무신 대신에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셨다. 아침이 아니다. 새벽이라고 해야 옳다. 아버지는 새벽 4시에는 일어나셔서 아마 밖으로 나가셨던 것 같다. 아무래도 부모님이 함께 계시니 나도 신경이 쓰여서 평소처럼 늦게까지 잘 수가 없었다. 일찍 일어난 까닭에 '어? 이 정도면 오늘은 한산도를 가 보아도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산도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산도 가는 배는 사량도 가는 배보다 훨씬 자주 뜬다. 사량도는 평일 기준으로 2시간에 한 번씩 배가 있다. 그러나 한산도는 평일에도 1시간에 한 대 이상의 배가 다닌다. 처음부터 한산도를 가려는 일정을 잡았던 게 아닌 까닭에 아침에 배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방으로 돌아오시고 나도 준비가 끝난 상태여서 서두르면 9시 배를 탈 수도 있겠다고 보았다.(매 정각마다 배가 있다.) 그런데 차를 몰고 길을 나갔더니 이게 웬걸. 다른 사람들에게는 출근시간이었다. 평소에 한두 번만에 신호를 받을 곳에서 아마 5번 이상은 기다렸을 것 같다.(커브길이라서 뒤쪽에서는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9시를 갓 넘겨 도착한다면 방에서 괜히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나온 셈이 된다. 1시간을 기다리며 할 것도 없고. 그런데 다행히도 9시 30분 배가 있었다. 한산도는 여객선 운항사 외에 한산농협에서도 따로 배를 운항한다. 여객선 운항사가 거의 정시마다 운항한다고 보면 되고, 농협은 하루에 몇 회 정도. 그래서 배가 자주 있다.


배를 타고 가는 길에 미륵도 쪽을 찍은 모습


한산도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배가 가는 길이 온통 양식장이다. 사량도로 갔던 때에 비하면 운항하는 배도 훨씬 많다. 아무래도 이쪽이 부산, 거제 방향이어서 더 그러려나.


한산도에 거의 도착할 때쯤이면 거북선 등대가 입도객을 환영한다.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사진에서 보이듯 정말로 암초다. 등대가 아니더라도 암초를 알려주는 시설물은 반드시 필요할 듯. 뒤쪽으로 보이는 비석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는데 한산대첩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아닐까 싶다.


한산도는 사량도만큼 등산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제승당 항구에서 망산을 거쳐 진두항으로 내려오는 경로가 보편적인 듯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제승당. 제승당부터 둘러보아야 했으나 제승당은 망산을 오르는 길과는 반대여서 제승당은 건너뛰고 바로 망산으로 올랐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망산 등산은 추천할 만한 코스가 못 된다. 왜 사람들이 사량도 종주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겠다. 사량도는 산은 험한 반면 등산하는 능선에서 내내 바다 조망이 가능하다. 반면 망산은 주위로 나무가 울창해서 주의를 기울여 보면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는 건 알 수 있겠지만 바다 경관을 조망하면서 등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망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경치도 이 정도뿐이다.



북쪽으로는 바다보다도 한산섬 내륙이 더 잘 보인다. 망산 정산을 거쳐 진두항에 도착한 시간은 1시 30분. 대략 3시간 반 정도 시간이 걸렸다. 사량도도 마찬가지지만 한산도도 버스 시간이 거의 배 시간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1시 30분 버스를 타려고 부지런히 내려 왔다. 최초에 나는 1시 버스를 타는 게 목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2시 버스는 너무 늦다고 생각했다. 2시에 버스를 타면 2시 30분 배를 타야 하고 그러면 통영에는 3시가 넘어야 도착한다. 부모님께서는 아침에 간단히 간식을 드시고 등산하면서도 중간에 사과를 깎아 드시고 간식도 드셨지만 이 날 한 끼도 못 드신 상태에서 등산을 마치신 셈이 되었다. 나야 끼니를 크게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별로 문제가 없었지만 부모님께서는 힘드셨을 것이다.


1시 30분 버스는 진두항에서 1시 30분이 아니라 1시 35분에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버스를 놓칠까 싶어서 부지런히 내가 먼저 내려 왔다. 다행히도 내가 먼저 내려 왔고 조금 뒤에 버스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문제는 부모님께서 아직 도착하시기 전이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큰 간격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내가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에 많이 쫓아 내려오셨는데 버스가 왔을 때에도 아직 100m 이상은 더 뛰어 오셔야 했다. 서울이었다면 이런 경우에 버스를 타는 게 불가능했을텐데 다행히도 여기에서는 기사님이 그 시간을 모두 기다려 주셨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제승당으로 돌아가서는 또 급하게 통영여객선터미널로 나가는 배를 끊었다. 돌아가는 배는 한산도 의항을 들렀다 가는 배였다. 아마 10~15분 정도가 더 걸리지 않았을지. 이렇게 생각하면 또 그냥 2시에 버스를 탔어도 1시 30분 버스보다 15분 정도밖에는 늦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한산도를 떠나며. 한산도 읍내는 배가 가장 많이 정박하는 이 제승당쪽 항구가 아니라 반대편 진두항 쪽이다. 학교도 면사무소도 모두 그쪽에 있다. 이 날 나가는 배에는 암석을 잔뜩 실은 덤프트럭 몇 대와 환경정화차량 수 대가 탔다.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을텐데 배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


돌아오는 뱃길에서 촬영한 통영 시내 전경과 통영여객선터미널


결과적으로 망산 등산은 실패였다. 산은 잘 탔지만 한산도의 바다 절경을 잘 보지도 못했고, 한산도 명승지인 제승당도 가 보지 못했다. 섬에서 조금 천천히 나온다면 제승당까지 모두 관람할 수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일정도 있었던 까닭에.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계속 식사를 하지 못하신 것도 마음에 걸렸고.(말씀으로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3시부터는 거의 모든 식당들이 브레이크타임이라서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되었는데 [정원]에 전화해 보니 오라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정원]은 2018년에 통영에 왔을 때 방문해 보고, 4년 반만의 재방문이다. 가정집을 식당으로 꾸민 것은 동일하지만 그새 입식으로 바뀌었다. 나는 굴비빔밥을 부모님은 갈치조림을 시켰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려는데 [정원]은 제로페이 상품권을 받지 않았다. 네이버에는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엊저녁에 [오월]에 갔을 때는 가맹점이란 얘기가 없었는데 가맹점이었더니, 여기는 가맹점이라고 되어 있는데 또 아니다. 정보가 틀리는 것이 숱하다. 그래도 [오월]이 밥값이 훨씬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런 결과에 만족(?)한다.


깜깜한 밤에 내가 운전하는 것도 꺼려지는 까닭에 가능하면 부모님께서 환한 시간에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4시에나 출발하셨다. 집에 도착하면 거의 8시. 그래도 6시까지는 환한 시간에 가실 수 있을테니까. 조금만 나가면 고속도로를 타고 가시고, 고속도로에서 나왔을 때는 익숙한 길이니 이 정도면 아주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4시. 그러고 보니 장인어른 장모님도 이 시간쯤 떠나셨고, 한 주 뒤에 온 후배도 그랬다. 이 가을에 타지에서 이별을 맞이할 만한 시간인가. 장인어른 장모님이 떠나셨을 때, 그리고 후배가 갔을 때에도 공허하고 섭섭하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지만 부모님이 가신 다음만은 예외였다. 바로 정신 없이 나도 승마장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윈디, 잘 있어!


처음 한 번 탔을 때를 제외하고는 승마장에는 매번 오전 11시에 갔다.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약간 여유를 가지고 도착한다치면 아침에 천천히 일어나서 11시에 가면 딱 맞았다. 승마가 끝나고 바로 점심을 먹기에도 최적의 시간이기도 했고. 원래는 오늘도 부모님께서 오시겠다고 하시기 전에는 11시로 예약을 해 두었었다. 갑작스레 부모님께서 오신다고 하셔서 한 번도 탄 적이 없지만 예약을 오후 4시로 미루었다. 5시에 승마가 끝나고 출발하면 그래도 깜깜해지기 전에 6시까지 통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산도에서 망산을 오르면서 계산해 보니 이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4시에 도착하려면 여유 있게는 2시 반, 빠듯하게도 3시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 3시에 출발한다고 치면 섬에서 1시에는 나가야 할 듯했다. 아침에 30분 늦은 배를 탄 것이 괜히 엄청 아쉬워졌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 승마장에 연락해서 5시에 타는 것으로 변경하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승마장은 원래 당일 취소나 변경은 안 된다. 다행히도 목요일이 가장 한산한 날이라서 그런지 이 날은 양해를 해 주었다.


빠듯하게 1시 35분 버스를 타고 2시 5분 배를 타고 통영 시내에 나가서 식당에 도착하니 3시. 4시까지 방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밥이 금방 나와서 방에는 4시쯤엔 도착했다.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나도 급하게 출발해야 했다. 바로 승마장으로 갈 수 있도록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끝내고 출발했다. 4시 15분쯤이었다. 길도우미를 보니 승마장 도착시간은 5시 15분으로 나왔고 마음이 급했다. 이곳에 와서 승마장을 갈 때는 항상 무료도로로 다녔다. 시간 차이도 크지 않았고, 무료도로로 가도 가다 보면 시간이 줄어서 다른 길안내와 큰 차이가 없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마음이 급해서 그냥 안내해 주는 대로 고속도로를 탔다. 몇 km 되지도 않았지만. 이게 과연 빠르기는 할까 싶었는데 냅다 밟았다. 단풍이 잘 들고 있었지만 가는 길에서는 경치를 확인할 새도 없었던 것 같다. 덕분에 승마장에는 5시 정각에 도착했다. 역대 최단시간이었다.


막상 승마장에 도착했더니 오늘 새로 흙을 받는다고 바로 말을 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천천히 와도 되었을텐데. 오늘은 코치님께서 윈디와 케이시 중에 말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셨다. 원래대로였다면 케이시를 타게 할 생각이었겠지만 마지막 승마라고 하니 배려해 준 것이다. 처음 이곳에서 말을 탈 때 함께 탔던 분이 이 날도 같이 탔다. 이렇게 되면 다른 기승자와 말이 추가되어 변수가 생긴다. 게다가 마지막 승마이기도 해서 윈디를 타기로 했다. 윈디는 지난주처럼 엄청 잘 달려 주었다. 내가 잘 탔다기보다는 말이 잘 달렸다고 해야 맞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서운했다. 여기에 와서 말 타는 것도 훨씬 더 재미있었고 또 늘기도 많이 늘었는데. 이 날은 코치님이 좌속보(앉아서 타는 것)를 좀 해 보라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말 한마디는 '좌속보를 못하시면 평생 경속보밖에 못해요'라고 했던 것. 아,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11시에 승마를 하고 나면 코치님께 부탁해서 항상 나도 점심을 같이 주었었다. 6시에 끝난 터라 저녁을 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그 전에 포니(조랑말)부터 들여 놓아야 한다고. 포니는 어린이들이 타지 않는 이상 운동을 하지 않으니 낮에는 밖에 풀어놓는 듯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밤이 되면 다시 마사로 들여 놓는 것이다. 포니라고는 하지만 힘이 세다. 몸무게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 같다. 방심하다가 손이 찍혀서 무척 아팠다. 아마 많이 다쳤다면 괜히 같이 들여 놓는다고 했다고 엄청 후회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냥 찍힌 정도여서 상처가 나거나 멍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말들에게 밥을 주고는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곳에서 한 달 동안의 일상 중에 처음으로 해 보는 작별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여기에서 가장 좋아했던 승마장과의 이별이라니. 마침 시간도 해가 지고 깜깜해질 때여서 기분도 감성적으로 변하고 울적하고 서운하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다시 또 내가 여기에 와서 말을 탈 수 있을까.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거의 매번 혼자 코치님의 지도 아래 말을 탔다. 서울 근교에서 이렇게 (이 가격에) 승마를 배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길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조심스레 숙소로 향했다. 갈 때처럼 밟지도 않고. 낮에는 큰길에 사람이 많으면 주행하는데 방해가 되어서 별로 안 좋았는데 밤이 되니 오히려 반가웠다. 앞에 가는 차도 앞차가 길을 밝혀 주고 사람이나 다른 장애물이 없는지 확인한 셈이라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내가 받는 느낌과 생각도 달라진다. 점심을 3시에 먹은 터라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은 더 가야지 했던 [죽림분식]에 가서 저녁을 해결했다. 통영에 있는 동안 나의 최애 맛집은 아마도 [죽림분식]인 것 같다. 이때까지 모두 세 번이나 방문했다. 두 번 간 식당은 있긴 하지만 세 번 간 곳은 죽림분식 한 곳뿐이다. 마지막날쯤에 가서 매운 어묵을 하나 먹고 안녕, 해야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루 일찍 죽림분식에도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이제 온전한 하루는 내일 하루 남았다.(내일 이야기는 통영일기: 스물엿새째.로 이미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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