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Nov 10. 2020

대학에 떨어진 S에게

 얼마나 떨리던 하루였을까. 한 시간, 한 시간 억지로 지나가는 시간을 보며 한편으로는, 합격 여부를 발표하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또 한편으로는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이길 얼마나 빌었을까.


 4시 55분, 56분, 57분... 시간은 너에게 얼마나 더뎠니. 1분이 가진 무게를 고스란히 어떻게 짊어지고 있었니. 그리고 땡. 다섯 시가 되었을 때 수험 번호 한 글자 한 글자를 집어 넣는 너의 손가락은 얼마나 떨렸니.

'합격자 조회' 버튼을 누르기 직전 쿵쾅거렸을 심장은 어떻게 부여잡았니.



버튼을 누르고 나서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를 확인했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혹시나 입력된 내용일 틀린 건 아닐까. 수험번호 한 글자 한 글자를 입으로 따라하며  꼭꼭 화면에 새겨넣고 조회 버튼을 눌러보았겠지. 다시 뜬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 '불'이라는 그 한 글자의 잔혹감이 너의 눈과 머리와 온몸을 휘감았을 때,  짧지만 밀도 높게 느꼈을 허망함과 좌절감은... 이제는 좀 옅어졌는지.


 너는 우리 학교의 1등이었다. 시험 때면 누구보다 힘들어 했지만, 너는 늘 최고의 성적을 결과로 남겼고, 그 때마저도 "찍은 게 맞아서 그래요."라며 너의 능력을 스스로가 믿지 않았지. 너뿐이었을 거야. 너를 믿지 않았던 것은. 그러나 1등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는 것보다, 너를 계속해서 의심하고 다그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거야. 그런 생각들이 자꾸 너의 몸과 마음을 깎아먹었겠지. 그래서 하루 하루가 더 버겁고 힘에 부치는 나날들이었을거야.

 

 세상은 그동안 너에게 '노력하면 된다.' 라고만 알려줬을거야. 그 말을 새기며 넌 남들보다 적게 자고, 남들보다 이를 더 세게 악물고 여기까지 왔겠지.


 그런데, 너보다 조금 더 살아보니 그 말에는 거짓이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겠어. 수학에서 배운 필요 조건, 충분 조건 기억 나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은 필요 조건이지, 충분 조건이 아닌가봐. 노력을 아무리 해도, 생각과는 달리 안되는 일들이 있더라고. 꽤 많이.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풀썩 주저앉아서 엉엉 울어버려. 울다가 지치면 드러눕기도 하고. 예전부터 너의 발밑에 있었을 흙 냄새가 너를 위로해줄거야. 너도 모르는 사이에 앉아서, 누워서 보는 세상이 새롭게 느껴진다면,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된거야.  

 

렇게 시작하는거야. 쉬는 시간도 없이 공부를 하고, '1'자가 빼곡히 적혀 있는 성적표를 받아 들 수밖에 없었던 그 위태로운 봉우리에서 이제 내려와볼래? 몸을 조금 움직이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아 불안하겠지만한 발만 멀리 내딛으면 바로 내려올 수 있을거야. 자 밑에서 봐봐. 네가 올라섰던 곳이 별 거 아니었지? 이렇게 내려와 있어도 마음 편히 경치를 즐길 수 있었던 건데 모르고 있었지?


 결과가 노력을 배신할 때, 결과가 기대에 어긋날 때 좌절을 하게 되지. 피구 경기에서, 어딘가 튕겨서 날아온 공에, 생각지도 않게 몸을 맞을 때처럼 좌절의 순간은 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더라고. 누구에게도 반갑지 않은데 말이지. 좌절이란 녀석은 지독하기도 해서, 자꾸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할 수록 끈질기게 나를 따라 붙곤 하더라. 그럴 땐, 그렇게 잠시 있어보는 것도 괜찮아. 사람들은 용기를 내라고, 다시 일어서라고 등을 떠밀겠지만, 조급해 할 필요 없어. 힘들면  지금 그 자리에서 잠시 머물러 보렴. 어디선가 어떻게 또 나타날지 모르는 녀석이니까, 그 느낌에 그렇게 익숙해지는 것도 나쁠 건 없어. 그 시간을 이겨내기가 힘들다면 너에게 가장 친근한 '신'의 영역으로 잠깐 '좌절'을 미뤄놔도 좋아. 과학을 좋아하는 너에게 엉뚱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다만, 가끔은, 내가 이런 일을 겪는 것도 의미가 있겠구나, 이유가 있겠구나. 무작정 믿어보는 게 도움이 될 때도 꽤 있더라고.


수고했어. 잘 했어.  지금의 여러 감정들을 겪어내며, 너는 자라고 있는거야. 당장은 너의 생채기만 눈에 띄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시간의 의미는 너에게 깊이 와 닿을거야. 그 날은 분명히 올거야. 네 삶의 의미는  몇 사람들이 '합격', '불합격'으로 감히 갈라치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매순간을 지나면서, 너는 커 가고 있으니 그걸로도 충분해.


여기까지 봤는데 별로 위로가 안된다고?

너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아이들을 1초쯤 웃게 만드는 극약 처방이 하나 있지. 뜬금없고 유치한데 은근 이 말의 힘이 있더라고.


"운이 없던 건 S네가 아니라, Y대학교야. 어디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인재를 몰라보고 내치다니. 너를 몰라볼 만큼 수준 낮은 곳에 네가 갈 이유가 없지. 참나 어이가 없어서."


 다음 주 등교 수업 때 내가 육성으로 시원하게 욕을 섞어서 내뱉어줄게. 학교에서 보자.








 




 





 

 


 



작가의 이전글 두 발 자전거 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