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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Apr 16. 2021

20 이제 제주 원도심으로

20210402

이제 제주 원도심으로  

(17코스, 18.1킬로, 광령1리사무소-제주 원도심)


8시에 일어나 두부김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10:09에 집을 나서다.   



혹시나 해서 차에 가서 확인해봐도 잃어버린 올레 패스포트가 없다. 흑. 5코스부터 16코스까지 정성 들여 찍은 스탬프가 다 사라진 거다. 슬프다.  


그래 내가 스탬프 받으러 온 거는 아니잖아. 그저 걷고 생각하고 글 쓰면 될 뿐. 맘 편히 갖자구.  


10:33에 17코스 출발점 도착했다. 중산간 지역부터 계속 해안까지 내려가는 코스다. 발걸음 가볍다. 바람도 뒤에서 불어준다.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 비행기 굉음이 교차한다.  



근심을 없애준다는 무수천(無愁川)을 따라 내려간다. 무성한 숲 아래 이런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한라산에서 시작되어 25킬로를 흘러 외도 앞바다까지 이어진다는 무수천, 전날 비가 왔음에도 불구 물은 그리 많지는 않다. 앙증맞은 돌 조형물과 배부른 조랑말도 보다. 비행기가 낮게 날아가는 것으로 봐서는 제주시에 아주 가까운데 이런 숲 속 같은 목가적인 풍경이 있다. 무수천 아래로 내려와 돌다리를 건너 개울을 건넌다.



월대에서 잠시 길을 헤맸다. 바로 리본을 찾아 내도 해안로로 진입한다. 바람. 바람. 앞바람. 바람이 세서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 그리고, 여긴 예전 워밍업 차원에서 이미 걸었던 길 아니던가. 풍속을 확인해 보니 초속 10미터이다. 10미터 앞에서 아주 큰 압력으로 누르는 것 같다. 두 발을 지탱하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간다. 바람 불며 파도치니 좋아하는 이는 서퍼들 밖에 없다.  



이호 백사장의 모래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이채롭다. 스르륵스르륵. 그렇게 날려온 모래가 반바지 아래 내 발목을 때린다. 아프다.  


공항 가기 전 우뚝 선 도두봉. 숨차다. 예전 30대 초반에는 11.9킬로 제주 오름 마라톤 대회에서 1시간 20분으로 끊은 적도 있었는데. 그땐 2개 오름을 오르고 내려오는 코스. 이젠 오름 하나만 걸어 올라가도 숨을 이리 헐떡거리니.  



도두봉을 내려와서 공항 뒤편 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어영소 공원을 지나는데 비가 살짝 흩날리기 시작한다. 오후 1:36에 라면집에 들어와 문어라면을 시키다. 목마르고 힘들다. 3시간 동안 13.97킬로를 걷고 처음 쉬다. 문어 사진을 인스타와 페북에 올렸더니 애경 누님이 라면에 올려진 문어를 보고 틀니 같다고 하시네. ㅎㅎ



다행히도 라면을 다 먹고 나왔을 무렵 비는 흩날리다 그쳤다. 용두암, 그리고 해안 따라 계속 걷는다. 바다에 용머리 닮은 용두암이 있다면 조금 올라가면 용이 살았다는 연못인 용연이 있다. 깎아지는 절벽과 옥색 빛 물 색깔, 그 위를 지나는 다리에서 보는 풍경은 감탄을 절로 나오게 만든다. 예전 한양에서 먼 제주로 유배를 많이 보내졌는데, 그 유배자들이 모여 풍류를 느꼈다는 용연. 나도 여기서 막걸리 한 사발 하고 가야 하는데,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 급하다. 다시 시내로 들어서다. 건널목, 골목, 좌회전, 우회전, 그리고 기와집인 제주목 관아. 예전 제주목사의 첫 번째 임무는 말을 잘 키우는 것이었다던데.  



구도심의 골목길, 작은 책방과 식당들과 집을 지난다. 오후 3시 정각, 4시간을 걸어서 17코스 종점(18코스 출발점) 도착하다. 올레안내소 선생님이 사진도 찍어주신다. 혹시나 해서 고내포구 올레안내소 전화걸 수 있냐고 여쭤보니 직접 걸어주신다. 사실 고내포구 도착 이후 스탬프 찍고 그 안내소에서 안내해 주시는 선생님과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때 패스포트를 두고 왔는가 해서이다. 와우. 그분이 보관하고 계신단다. ㅎㅎ 이런 행운이.  



기쁜 마음에 18코스 안내소에서 티셔츠와 두건도 샀다. 나와서 올레 표지판 앞에서 만난 아저씨 세명과 얘기도 나누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시는 분들, 여러 가지 물어보길래 자세히 알려드렸다. 명함도 받았다. 나중에 산티아고 정보 많이 드려야겠다. 오늘 어디서 묶냐고 묻길래 연동이라 했더니 자기들도 연동이라고 소주 한잔 하자시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서울서 인들이 오는 날이라 다음 기회를 만들기로 했다.  


4시쯤 숙소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가벼운 몸으로 지인들을 만나다.  


거의 여섯 시쯤 지인들을 만나 모슬포로 이동한다. 모슬포항에 있는 한 횟집에서 방어회, 고등어회, 통 갈치구이, 객주리 조림 등 푸짐하게 먹는다. 소주도 술술 들어간다. 그리고, 애월 광령에 있는 후배 집으로 이동해서 맥주,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이어간다. 블록체인, NFT, 인생 그리고 음악들. 넘 좋은 경험들. ㅎㅎ 그렇게 제주의 밤은 깊어간다.



1박 일정으로 내려와서 귀한 저녁시간을 나와 함께 해주고 술도 사주는 친구들, 후배들이 있어 인생이 즐겁다. 이번 주에만 벌써 세 번째니. ㅎㅎ 제주 내려와서 저녁이 더 바쁜 것 같기도. ㅎㅎ


P.S.

17코스는 18킬로로 다소 길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내리막 코스라 그리 어렵지 않다. 제주 원도심으로 들어오기 위해 오르는 도두봉 하나 넘으면 공항이 나오고 제주시 해안이 나온다.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수많은 식당들, 카페들, 차들,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게 도심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제주 원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이지만, 아름다운 무수천도, 이호테우와 용두암 해변도 즐길 수 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면 고향 같은 올레 안내소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걸으면 제주 도심을 벗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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