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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Apr 28. 2021

31 추자: 산티아고를 가장 닮은 길

20210413

추자: 산티아고를 가장 닮은 길

(18-1코스, 18킬로, 상추자항-상추자항)


오전 7시에 눈 비비며 일어나 오늘 추자도 운항정보를 확인한다. 얏호, 오늘은 정상 출발이다. 지난 3일 동안은 바람이 많이 불어 결항이었는데, 오늘은 하늘이 도와주는가 보다. 바로 샤워하고 짐을 챙겨 제주항 여객선 터미널로 간다.  



바람이 허락하는 섬 추자, 오늘 입도를 허락해준 바람에 감사하다. 오전 9:27에 추자도로 출발한다. 출발 전 편의점에서 군밤과 요구르트 하나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다.  


바람은 초속 5-6미터 정도로 조금 부는 수준이지만, 파도는 2미터로 제법 높다. 그래도 배가 뜰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배는 상당히 흔들린다. 배에 부딪친 파도가 창문을 친다. 추자도는 배 타기까지도 잦은 결항으로 힘들었는데 섬으로 들어가는 바닷길도 결코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추자도에 가까이 오니 조류가 역방향으로 흐른다. 바닷 물길도 변화무쌍한 곳 추자도에 1시간 걸려 오전 10:37에 도착했다. 당일 돌아오는 배가 오후 4:30분이라 다들 바삐 출발한다. 난 하루 머무를 예정이기에 점심 먹고 여유롭게 걸을 거다. 전날 박훈준님이 알려준 오동여 식당에서 참조기 구이로 점심을 먹다. 굴비도 맛났지만 배춧국이 시원했다.



추자도 올레 안내소에서 인사하고 스탬프 찍고 오전 11:28에 출발하다. 안내소 선생님이 어제도 배가 안 떴는데 오늘 갑자기 출항되었는데 잘 타고 오신 거다 라고 말씀해 주신다. 사실 출항할 때 보니 완도나 다른 곳으로 가는 배는 거의 다 결항이었다. 걷기 시작하는데 내가 출자한 벤처펀드의 중간 분배금이 입금되었다. 우하하 신난다. 오늘 저녁엔 플렉스 좀 해야겠다.  



느긋하게 배부르게 밥도 먹고 천천히 출발하니 넘 좋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도 없고 ㅎㅎ 추자도 올레길을 먼저 걸은 분들도 다 추자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하루 머무는 것이 좋다고 얘기하신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최영 장군의 사당이 먼저 나온다. 왠 추자도에 고려말 최영 장군이 나온단 말인가? 고려말 공민왕 시절에 제주에서 말을 기르던 몽골인들이 난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은 그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 대피하였다고 한다. 최영 장군은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추자도 주민에게 그물로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추자도 주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만든 사당이다. 사실 7코스의 외돌개 앞 범섬도 도주하던 몽골인들이 최후까지 저항했던 곳이라 했는데.



봉우리 두 개를 오른다. 하나는 봉골레산, 다른 하나는 추자도 등대다. 일박하고 가려고 짐을 좀 넣었더니 오늘은 배낭이 무겁다. 산티아고 시절 배낭에 비하면 1/3 무게도 안 되겠지만 오랜만에 무거운 걸 메니 다소 버겁다. 그래도 등대 있는 봉우리에서 하추자도를 바라보니 여기 오기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시가 나온다.





추자도


바람이 허락하는 섬  

추자

제주도에 속하지만

화산섬도 아닌

그런 섬


후풍도(候風島)로 불렸을 정도로

바람이 유독 거센 곳

하추자도를 바라보는 언덕에도

바람은 분다


바람을 거스르지 않는 이들만

추자를 제대로 즐기겠지


오직 바람이 지배하는 이 곳

추자에 서다





초반 4킬로를 오는 데 오름을 세 개나 오른다. 추자도는 결코 쉽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6킬로 정도 와서 해가 가장 빨리 진다는 묵리에서 중간 스탬프 찍고 다시 언덕을 오른다. 추자도 코스는 여느 올레길과 다르게 거의 등산코스다. 눈 앞에 보이는 네 번째 봉우리, 아직 절반도 안 왔는데 벌써 지친다.  



황경한의 묘 표지판이 보인다. 황경한은 황사영 백서의 주인공 황사영과 그의 아내 정난주의 아들이다. 지난 3-B 코스 걸을 때 이자섭 형님이 말씀하신 곳이다. 사실 추자도는 황경한의 묘와 눈물의 십자가를 보기 위해 온 거나 진배없다. 과연 어떨까? 감정을 살짝 누르면서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황경한의 어미 정난주는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로 숙부 정약전을 통해 서학을 배우고 고모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로 남편은 피신했다 황사영 백서를 쓰게 되었고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발송되기 직전 발각되어 능지처참으로 순교하였고, 아내 정난주는 제주도로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각각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제주도 귀양길에 정난주는 두살배기 아들을 추자도 갯바위 위에 놓고 제주로 왔는데, 그 아이는 어부의 손에 키워지고 나중에 어머니 사연을 듣고 제주가 잘 보이는 하추자도 언덕에 올라 엄마를 그리며 눈물로 기도했다고 한다.



이 스토리를 알고 가서 인지,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해서 인지, 묘지 위 십자가와 두살배기 아들을 안고 있는 동상을 보니 눈물이 터졌다. 넘 슬픈 이야기다. 펑펑 운다.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다.


저 아래 갯바위가 두살배기 아이를 두고 간 바위겠지. 그 아이는 얼마나 엄마를 불렀을까? 아니 울었을까? 나중에 커서 엄마 얘기를 듣고 나서는 언덕에 올라 와 혹여 제주가 보일까 하면서 또 얼마나 울었을까. 내 어찌 그의 묘 앞에서 술 한잔 안 따라 드리리. 몇 모금 마신 술 따라드려 죄송할 뿐이다. 두 모자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기도를 드리며, 그의 묘 앞에 시를 바친다.





버려진 아이 


서학을 믿은 죄로

제주로 귀양 가는 두 모자

어미는 중간에 있는

추자에 두살배기 아들을 버리고

홀로 제주로 간다


버려진 아이는

어부의 손에 길러지고

나중에 어미의 사연을 듣고

저 멀리 제주를 바라보며

날마다 눈물로 기도했다


버려진 게 아닌

살려진

어미의 사랑과 아들의 애틋함이 숨 쉬는

추자의 언덕에서

나도 눈물 흘린다




추자! 제주도에 처음 천주교가 전파된 곳. 이 모든 것이 이 두 모자의 사연으로 시작된 곳.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왔는지도. 봉우리 다섯 개 넘고 고생해서 올라오게 만든 이유가 있는 거다. 그런 숭고한 사랑과 종교적 신념을 접하기 위해선 나도 고생해야 한다. 쉽게 접할 순 없다. 예수의 골고다 언덕이나 야고보(산티아고) 선생님의 스페인 선교길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 드리고 산티아고(예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 무덤에서 기도하기 위해 프랑스 생장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람의 언덕을 건너, 흙먼지 날리는 메세타 고원을 지나, 철의 십자가를 지나 그 긴 800킬로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참고, 몇 번은 터져 물집 눌린 발바닥과 발가락의 고통을 이기며, 지팡이 집고 터벅터벅 걸어갔지 않는가. 추자의 올레길과 황경한 묘도 산티아고와 닮았다.  


추자 올레길은 섬 코스지만 이건 섬이 아닌 산이 대부분이고,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다섯 봉우리를, 바다만 조금 보일 뿐 봉우리 오를 땐 깊은 숲 속을 걷는 듯하며, 마지막 그의 묘를 향해 갈 땐 시멘트 오르막이다. 고통을 느끼고 지칠 무렵 그의 묘는 나타난다. 우리 인내를 시험하는 듯이, 우리 신념을 떠보는 듯이.



눈물을 머금고 두살배기 아들을   갯바위로 한참을 내려간다. 저 아래 멀리 아들 버린 갯바위 위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 있다고 했는데 오르막 시멘트길만 보일  어디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해안가에 있는 동네 주민께 물어보니  시멘트 오르막을 오르면 된단다. 그리고 언덕을 한참 올라간다.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은 눈물의 십자가고 왼쪽은 올레길 방향이다. 고민할 틈도 없이 오른쪽이다. 보통 여기서 대부분은 올레길 코스가 아니라 그냥 지나치긴 한다.



다시 계단으로 눈물의 십자가로 향해 내려간다. 두살배기 아기가 내려진 갯바위에 그 두살배기 아기의 눈물을 모아 십자가를 만들어 두었다. 처음 십자가가 보이는 숨간 눈물이 터져 제대로 걸어 내려갈 수 없었다. 흡사 산티아고 도착했을 때 처음 산티아고 대성당의 높은 첨탑이 보였을 때 눈물이 터졌던 것처럼.  


이제 황경한과도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다. 바람이 거세다. 십자가는 굳건히 서 있다. 나는 저 까마득한 계단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 끝까지 힘들게 한다. 다 감수해야지.


이어진 여섯 번째 봉우리 돈대산. 오르막. 오르막. 누가 추자도를 4시간이면 된다고 했는가. 추자 올레길은 26개 올레길 코스 중 가장 힘든 코스다. 그 길이도, 그 경사도. 마지막 여섯 번째 봉우리에 올라섰다. 시야가 탁 트인다. 이젠 내려간다 ㅎㅎ



마을로 들어선다. 그리고 항구를 끼고돈다. 멀리 올레 안내소가 어디 있나 쳐다보며 오다가 아직 마르지 않은 시멘트 포장해둔 길을 밟다. 아직 굳지 않는 상태라 내 발자국 두 개가 선명하게 찍혔다. 이런 낭패가. 주위 분에게 바로 사과했지만 마음은 매우 죄송하고 불편하다. 감동이 앞서 분별을 못하고 있는 거다. 흑.


5:05에 18-1코스 종점에 도착하다. 4시간 49분 동안 18.15킬로를 걷다.  



추자 올레 게스트하우스 갔는데 을씨년스럽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래서 바로 나와 추자도 여객터미널 앞 모텔로 오늘 숙박지를 정했다. 점심 먹은 후 하나도 먹지 못해 배고파서 씻지도 않고 바로 나왔다. 오동여 식당에서 삼치회를 먹으려 했는데 오늘 단체 예약이 있어 안된단다. 그래서 좀 더 걸어 포차식당으로 왔다.  



한라산 소주와 사이다 먼저 시켰다. 그리고, 뿔소라 무침과 뽈락 튀김을 주문했다. 술 먹는데 손님 들락거리며 가게 문 조금만 열려 있는데도 춥다. 추자는 제주와 다르다. 4월 중순인데도 춥다. 그렇게 한라산 소주 두병이 비워졌다.  


추자의 밤도 바람과 함께 깊어진다.


P.S.

추자 올레길은 무조건 1박을 권한다. 그래야 추자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6개의 봉우리를 넘다 보면 산악 행군을 한다는 착각도 들지만, 봉우리에 오르면 추자의 멋진 풍경과 푸른 바다 전망이 선물로 다가온다. 거기에 산티아고를 꿈꾼다면, 그 종교적 고행길을 걷고 싶다면, 산티아고 가기 전에 추자에서 그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 않을까?


참, 어미 정난주님과 아들 황경한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창작 오페라로 부활된다고 한다.




산티아고(‘Sancti Iacobi-성스러운 야고보’에서 이름 지어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야고보(영어로는 James)로 나온다. 예수 사후 맏형 벌인 베드로는 로마로 가고 막내 벌인 야고보는 스페인으로 선교를 떠난다. 스페인 선교를 다니던 중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장례소식을 듣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야고보는 바로 헤롯왕에게 잡혀 교수형 처해진다. 열두 제자 중 막내가 제일 먼저 순교당한 것이다. 야고보의 제자들은 야고보의 시신을 거둬 그의 뜻을 기려 스페인의 서쪽 지방에 돌무덤을 만들어 매장한다. 그 유해가 거의 8, 9백 년이 흘러 산티아고 인근에서 발견된다. 그 당시 이베라아반도(스페인)는 이슬람이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야고보 유해 발견 소식은 스페인 카톨릭 신자들을 움직여서 결국 스페인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고 야고보가 지키고자 해던 종교를 수호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로마 교황청은 산티아고를 예루살렘, 바티칸에 이어 3대 순례성지로 명한다. 유해가 발견된 이곳은 산티아고로 칭해지며 그 후 산티아고는 유럽을 구한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고 천 년 전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그 유해를 보러 산티아고를 찾게 된 것이다. 그 유해가 발견된 돌무덤 위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들어섰다.


산티아고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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