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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Apr 29. 2021

33 우도에서 일출봉을 바라보다

20210415

33 우도에서 일출봉을 바라보다

(1-1 코스, 11.3킬로, 천진항 - 천진항)


오늘은 우도다. 1-1코스.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어제 '미미 이자카야'에서 많이 먹어서 그런지 아침이 잘 안 들어간다. 그래도 걷기 위해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차를 몰고 성산항으로 출발한다. 11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드디어 우도로 들어간다.  



어제 모슬포 사는 이자섭 형님께 연락드렸다. 그 형님이 추자도에 버려진 아이 황경한과 어미 정난주와의 애틋한 사연을 말씀해 주셨던 분이다. 미리 알고 감정의 준비를 하고 가서 눈물도 많이 쏟고 시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시를 보내 드렸더니 넘 감동적이라고, 제주 올레에 투고 한번 해보라고 말씀하신다. ㅎㅎ 꼭 모슬포 와서 소주 한잔 하자고 하시는데 오늘 우도 코스 돌면 남은 섬인 모슬포 앞에 있는 가파도는 꼭 형님과 함께 걸어야겠다.  



우도로 출발하는 배의 후미에서 며칠 전 걸었던 일출봉, 지미봉, 식산봉 등을 바라보는 것도 운치 있다. 저 멀리 한라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배는 십여분 만에 도착한다. 오늘 우도는 나를 어떻게 즐겁게 해 줄지 기대된다.  



도착해서 출발 스탬프 찍는 곳을 찾지 못해 초반에 헤맸다. 그러다 올레꾼들이 가는 곳을 보고 따라가서 스탬프를 찍었다. 이제 세 코스 남았다.  



길바닥에 톳을 말리고 있다. 톳을 피해 천천히 걸어간다. 낮은 언덕을 오르는데 牛島(우도)에서 첫 牛(소 우)도 만났다. 우도에서 소를 못 보고 지나 가는 愚(우)도 범하면 안 되지. ㅎㅎ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진 산호해변(홍조단괴해빈)은 사각사각 밟는 재미도 있고 모래밭 흰색의 고운 빛깔도 이쁘다. 꼭 밟아보고 만져봐야 그 느낌을 잘 알 수 있다. 저 잔 산호 덩어리들도 파도와 바람에 쓸리고 부딪치면 잘게 부수어지겠지.



세월이 만들어  산호해변을 걷다 우도의 명물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들어왔다. 우도 코스가 짧다 보니 여기선 진정한 놀멍 쉬멍 걷기가 된다. 인스타에 올린 아이스크림 사진을 보고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맛집 탐방'이라고 놀리는 정재우만 빼면 모든  좋다.  형은 내가 산티아고 갔을 때도 먹으러 갔냐고 놀리더니만, 참으로 일관성 있네.


올레꾼 누님  분이 잔디밭에 옹기종기 앉아 간단히 요기하고 계신  보인다. '사진 찍어드릴까요'하고 여쭤보니 그렇게 해달란다. 사진 찍어드리고 오이 하나를 선물로 . 여기도 누님은 사랑이시다.  



지붕이 초록, 주황, 흰색으로 칠해진 동네를 지난다. 마냥 푸르던 보리도 이제 익어간다. 머리 숙인 누런 보리삭, 곧 추수되겠지. 보리 알곡이 파랄 때 왔는데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중간 스탬프 찍는 곳을 찾지 못해 좀 헤매다. 앞에 가던 올레꾼에게 물어보니 하고수동해수욕장 끝 부근에 있단다. 걷는데 자전거, 작은 전기차들이 쉼 없이 지나간다. 다들 와서 그런 걸 타고 우도를 한 바퀴 도는구나. 난 두 발이지만.



우도봉 입구에서 화장실에 들렀다 잠시 쉬며 연양갱 하나 먹다. 양주 한 모금도 빼놓을 수 없지. 다시 오른다. 배도 고프고 살짝 힘이 부치려는 순간 봉우리에 다다르고 그 이후부턴 능선을 탄다. 아래 우도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반대편은 일출봉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분화구에 있는 드넓은 푸른 초원에는 말들도 뛰놀고 있다.  



올레코스는 등대에서 바로 내려오는 코스다. 내가 언제 우도에 올지 모르니 남은 산책로를 다 돌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올라간다. 중간 언덕에 이르는 순간 일출봉이 턱 하고 나타난다. 그 우아한 자태에 탄성이 저절로 터진다. 좀 더 올라가면 일출봉 분화구도 보일 것 같았다. 가파르다. 그래도 쉬지 않고 올러간다. 역시 올라 오길 잘했다. 우도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은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제 내려간다. 올레도 몇 코스 안 남았다.  



오후 2:45에 도착. 2시간 55분 동안 12.79킬로를 걷다. 바로 가는 배가 있는데 우도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뭐라도 먹기로 한다. 떠나는 배를 보며 뿔소라에 막걸리 한잔 하니 이곳이 천국이로세. 그렇게 삼십 분을 더 머물다 우도를 떠난다.  


P.S.

우도 코스는 시계 방향으로 우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이다. 초반에 산호해변, 돌담길, 하고수동해변 등을 지나고 마지막에 우도봉을 오른다. 전반적으로 코스는 평탄하나 마지막 우도봉에선 조금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만, 봉우리에 올라 해안가 절벽 위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코스도 짧고 어렵지 않기 때문에 놀멍 쉬멍 먹으멍 걸으멍 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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