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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May 03. 2021

35 서귀포 도심에 피어난 꽃 같은 코스

20210419

서귀포 도심에 피어난  같은 코스 

(7-1 코스, 15.7킬로, 서귀포버스터미널-제주올레 여행자센터)


7:30에 일어나 아침부터 여유 부린다. 사려니 숲길을 걸을까 하다 이틀 후 서귀포로 숙소를 옮기니 그전에 고내포구 16코스 안내소 선생님 찾아뵙고 올레 간세 한 마리 후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연락드리니 오늘은 쉰다고 하셔서 내일 찾아뵙기로 했다. 그래서 급히 사려니 숲길에서 아직 못 걸은 두 코스 중 하나인 7-1 서귀포 코스를 걷기로 일정을 전환했다.   


서귀포가 멀다 보니 그때부터 서두르기 시작한다. 샤워하고 만두를 전자레인지 돌려 먹고 10:45에 숙소에서 나온다. 182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이동한다. 직행버스라 중간에 많이 안 서고 빠르게 간다.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해서 근처 이마트에서 화장실 들렀다 12:33에 출발한다.  



서귀포로 오는 중 버스에서 친구 은익이가 '오늘회' 에서 처음 판매 개시하는 생참치를 홍보해달라고 연락왔다. 바로 페북에 올렸다. 그리고, 과친구 단톡방에 올리며, 선착순 10명에게 내가 쏜다니 3명이 바로 신청한다. 짜슥들, 돈도 잘 버는 애들이 지 돈 내고 사먹지 더 그래. 공짜라니 환장한다. ㅎㅎ



서귀포 7-1 코스 출발점 표지석 찾느라 한참을 헤맨다. 출발점이 월드컵 경기장 입구에서 서귀포 터미널 앞으로 변경되었단 안내 표지판을 보고 12:55에 겨우 간세 스탬프 박스를 찾았다. 흑! 이마트와 월드컵 경기장 한 바퀴 돌았는데 출발도 하기 전에 힘을 뺐네.  


12:56에 진짜 출발한다. 공원을 지나 도로 옆으로 계속 오르막이다. 내가 늦게 출발해서인지 올레꾼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날은 무지 뜨겁다.  



언덕을 다 오르니 흙길이 나온다. 숲 속 길이 이렇게 좋을 수가. 서귀포 도심을 벗어나니 이렇게 향기가 달라진다. 흡사 아카시아 꽃 향이 난다. 벌써 핀 건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건 귤꽃 향기였다. 귤꽃 향기를 맡으며 걷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축복인가.



물 마른 엉또폭포. 난대림 우거진 절벽 아래 물은 고여있건만. 거대한 물줄기 떨어지는 장관을 보지 못해 안타깝다. 물 마른 폭포, 목마른 나. 당근을 꺼내 문다.  



엉또폭포를 우회해서 오름을 오른다. 오늘 코스 중 처음이자 마지막 오름이다. 숲이 무성하다. 곶자왈 느낌도 난다. 한참 오르니 마을이 나오고 시멘트 포장길로 접어든다. 언덕 위 이쁜 집들도 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름 시작이다. 길쭉길쭉 삼나무, 잘 만들어진 나무계단, 나무 사이로 가끔씩 들어오는 바람의 조화가 어우러진 길이다. 계단은 점점 가팔라지고 숨도 가빠진다. 숨이 턱 밑까지 차 오를 무렵 고근산 정상에 다다른다. 바로 분화구를 한 바퀴 돌게 만든다. 숨을 고르며 작은 분화구를 돈다. 멀리 서귀포 구 시가지가 보인다. 한라산도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오후 2:50에 고근산 정상에서 소시지 한 개, 귤 2개로 주린 배를 보충하다.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내려간다. 하산길은 올라올 때와 풍경이 사뭇 다르다. 꼬불꼬불 나무, 계단도 아닌 그냥 산길.  



도로 옆길을 한참 내려온다. 도로 끝에 바다도 보인다. 마을로 들어섰는데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온다. 향긋향긋. 나의 올레길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큰 논이라는 뜻을 가진 하논마을. 국내 유일의 마르(Marr) 형 분화구라고 하는데 말이 좀 어렵다. 쉽게 설명하면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올라오다 지하수층과 만나 증기 상태로 폭발하여 생긴 평평하고 넓은 분화구를 말한다. 이 분화구는 백록담보다 넓은 동서 간 지름이 1.8킬로에 달한다. 원래부터 지하수가 많고 평평해서 500년 전부터 논농사를 지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벼농사 보다 논두렁에 미나리만 조금 보일 뿐 잡초만 무성하다. 동시에 하논마을은 4.3 때 마을 전체가 소개(疏開)되는 아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록담 보다 큰 분화구 안 마을이라 바람도 적고 조용하다. 마을을 크게 병풍 두르고 있는 것 같다. 논두렁 옆에 개울도 있네. 여긴 밭이 아니다. 논이다. 밭 위 경계를 표시하는 돌담도 없다. 그저 물 빠진 논의 풍경이다.  



하논 분화구(습지)를 벗어나는 마지막 계단이 나의 마지막 체력을 테스트한다. 올라가다 보니 분화구를 관통하는 수로도 보인다. 이내 계단은 끝난다. 확실히 분화구를 벗어나니 바람이 분다. 얼음물 마시고 잠시 쉰다.  



하논 분화구를 오른쪽에 두고 잘 닭인 도로를 내려가다 작은 마을로 들어선다. 조금 더 가니 서귀포 구시가지가 나온다. 이내 리본은 걸매생태공원으로 안내한다. 올레 안내소 도착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에어 샤워를 시켜준다. 도심 속에 이런 생태공원이 있다니 넘 좋다. 오메. 한라산도 보인다. 공원을 벗어나는 길도 벽화와 예전 사진으로 잘 꾸며 놓았다.  



골목길 나오니 올레 센터가 딱. 드디어 도착이다. 5:14에 도착. 3시간 46분 동안 16.19킬로를 걷다.  


홀로 서귀포 올레 센터에 들어와 맥주 한잔 한다. 내 앞에선 6년 걸려 올레 완주하신 분이 넘 감격스러워하신다. 홀로 제주 간다고 와이프의 온갖 구박받으면서 일년에 몇 번씩 주말에 내려와 걸었다고. 또 한 노부부가 들어오셔서 완주 인증절차를 밟고 계신다. 진심을 담아 축하드렸다.  



맥주 한잔만 하고 나오려다 올레센터에서 저녁까지 했다. 근처 서귀포 올레 시장까지 다시 걸어가기가 싫어서 이다. 눌러앉아 식사까지 함에 따라 맥주도 한잔 더하게 되었다.  



600번 공항버스도 바로 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석양은 어떻게 저 색깔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핑크 색이 진하다. 잠시 감상에 잠긴다.


이제 가파도(10-1) 코스 하나만 남았다. 올레 여정도 슬슬 저물어 간다.


P.S.

7-1코스는 서귀포 신도심에서 출발해서 구도심까지 가는 다소 힘든 코스이다. 도중에 가파른 고근산도 오르고 역사와 아픔이 있는 하논 분화구도, 도심 속 생태공원인 걸매공원도 지난다. 엉또폭포의 물줄기를 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도심길 위주로 코스가 짜지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는 한방에 날려주는 멋진 코스이다. 특히, 귤꽃 향기 맡으며 걸을 수 있는 4월 하순에서 5월 초까지는 코도 호강하는 즐거운 코스이다. 마지막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 도착해서는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맥주 한잔 하는 것도 좋다. 왜냐면 바로 그곳에서 올레 완주 인증 및 완주증서를 주기 때문에 맥주 한잔 마시다 보면 완주자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다면 완주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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