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4. Day 11
13 Amazing Grace
- 2017.10.14. Day 11
점심. 햄 앤 에그를 시켰다. 맙소사, 그냥 햄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하몽으로 계란 프라이를 싸 먹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햄은 하몽이다. 하몽은 사랑이다.
빨래. 스페인의 작렬하는 태양은 순례자의 빨래를 위한 것 같다. 널어놓은 지 두 시간이면 바싹 마른다. 빨래 걷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 산책을 시작한다. 광장 부근서 발견한 타파스 바, 맥주 1잔과 스페인 순대, 소시지 그리고 문어꼬치를 시키다. 스페인 순대는 또 한잔의 맥주를 요구한다. 난 당연히 그 요청에 응한다.
어젠 개인적인 돈이 입금된 날이다. 와이프가 연주회 간다길래 친구들과 맛난 거 사 먹으라고 카뱅으로 백만원 송금했다. 그랬더니 부담 갖지 말고 산티아고 순례길 맘껏 즐기다 오란다. 역시 돈의 힘은 위대하다. ㅎㅎ
맥주 두 잔 후 돌아오는 길에 벨로라도 성당에 들어갔다.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하고 돌아서려는데 오른쪽 끝 작은 예배당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순례자처럼 보였는지 신부님이 부르신다. 들어가니 한국어로 된 순례자 기도문을 주신다. 그리고 순례자를 위한 찬트를 부른다. 지난번 배웠던 ‘Ultreia(울트레이야)’다. 그리고 신부님의 부드러운 권유 아래 순례자 별로 각자 나라 찬송을 부르는 시간을 갖는다. 먼저 이태리, 아일랜드 애들이 부른 다음 내 차례가 와서 난 故 신상우(2017.10.12. 작고, 방금 전 부고를 들음)의 곡 ‘하나님의 은혜’를 불렀다. 가사가 생각 나지 않아 중간엔 허밍으로 하기도.
각 국가별 찬양이 끝나고 마지막은 다 함께 ‘Amazing Grace’ 합창으로 끝났다.
Amazing grace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Twas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And grace my fear relieved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The hour I first believed
다양한 나라의 순례자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멋진 연주였다. 신부님께서 화음도 넣으시고 목소리도 매우 훌륭하셨다. 미사 후 신부님께서 머리에 성수도 뿌려주셨다. 마지막에 기념촬영도 해주시는 멋진 신부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Amazing Grace 하니 2015년 미국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로 희생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 장례식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도사 중 잠깐 멈추고 ‘Amazing Grace’를 두 번 외치고 좀 더 긴 멈춤 후에 나지막이 ‘Amazing Grace’를 부르던 장면(https://youtu.be/IN05jVNBs64)이 생각난다. 자칫 흑백 간 대결로 갈 수 있는 분위기를 이 노래 하나로 풀어내는 모습을 보며 많은 감동을 느꼈다.
이게 이 노래가 갖는 힘이다. 종교를 믿던 그렇지 않던 절대적인 대상이 주는 아우라와 영향력은 때론 어떤 논리적인 설득보다 뛰어날 수 있다. 그것이 음악의 힘을 빌려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나온다면 그 힘은 배가된다. 난 그 힘을 믿는다.
애석하게도 한국의 ‘Amazing Grace’라 할 수 있는(이 부분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하나님의 은혜’ 작곡자 신상우 선생께서 엊그제 돌아가셨다. 안타깝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장례식 하관예배 때 김영미 교수가 부른 이 곡(https://youtu.be/vu9jp4Ha1t8)은 듣는 이의 마음을 많이 울렸었다. 물론 나도 많이 울었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늘은 6:40에 출발했다. 아침은 하몽 잔뜩 넣은 바게트로 해결했다. 프랑스 할머니가 얼그레이 차 만들어 주셔서 함께 먹었다. 할머니는 전 세계 어디나 사랑이시다.
지못미 랩노쉬(분말형 단백질 대용식). 쌩장부터 들고 다닌 미숫가루 봉지 모양의 랩노쉬를 오늘 아침 과감히 버렸다. 마치 내 몸속에서 지방을 긁어 모아 뭉쳐서 내던져 버린 느낌이 들었다. 아 근데 오늘 숙소에 왔더니 한 한국 친구가 어디 단백질 파우더 파는데 없냐고 하소연한다. 하루만 일찍 알았어도 쓰레기통 신세는 아니었을 텐데.
오전 7시, 성당 종소리. 좋다. 그래도 그 단백질 파우더를 버리니 몸이 가볍다. 오늘은 걷다가 첨으로 꼬꼬댁 소리를 들었다. 정겹네. 우리나라 닭과 비슷하다.
9.9킬로 와서 8:40에 첫 휴식을 취했다. 오렌지주스, 커피 그리고 사과 하나. 이제 남은 거리 18킬로. 언제 간다냐?
태양이 완전히 떴다. 새벽엔 빨리 해가 나오길 기대하는데 막상 나오면 뜨거워 언제 지나 걱정한다. 이게 인간이다. 적당한 오르막은 내리막보다 편하다. 적당한 고난도 마찬가지다. 고난 없이 너무나 평탄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왠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애경 누님이랑 뭔가 통하는 듯하다. 오늘 힘내라고 링크 걸어준 ‘Dona Nobis(도나 노비스)’. 아침에 햇살 받으며 언덕 오르며 부르니 넘 좋다. 사실 이 곡은 교회 성가대에서 연습 전 목을 풀 때 부르는 곡이라 나도 익숙하다. 근데 자꾸 누님이라 부르면 신대표님 화내실라나 모르겠네 ㅎㅎ
그리고 홀로 Ultreia(울트레이야)를 불렀다. 발걸음도 가볍고 힘이 절로 난다.
10시. 언덕에서 두 번째 휴식. 14.36킬로 옴. 물 한 모금 그리고 걸어가면서 사과 하나.
오늘은 오르막 내리막 벌판 산길 등이 적절히 섞인 길이다. 숲 속을 걸을 땐 그늘도 있어 시원하다. 새소리가 좋아 음악도 듣지 않고 걷는다. 온전히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이다. 잠깐 뙤약볕에 나와도 뜨거워지려고 하면 바로 숲 속 그늘이 나타난다. 완벽한 조화다. 이런 길은 길어도 재미있다. 피로도 덜하다.
산 정상에서 평탄한 길이 9킬로 가까이 펼쳐진다. 소나무 숲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순례자의 노래가 부르고 싶어 졌다. 이내 걷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으며 노래를 불러 내려갔다.
울트레이야 울트레이야 에수세이야 데우스, 아 주바 도스
(계속 걷고 계속 걸으면 위로 올라가고 하느님이 도와주실 거다)
정상 간이매점에서 귤과 사과 하나를 샀는데 가격은 없고 도네이션이란다. 앞사람을 보니 실제 가격보다 더 내는 경향이 있다. 난 정가 수준인 1.2유로만 냈다. 도네이션이 도네이션이 아닌 거다. ㅎㅎ
길게 펼쳐진 길, 작렬하는 태양, 그 아래서 9킬로를 걷다. 12:33 산후앙에 도착. 25.88킬로. 바게트 빵 샌드위치와 맥주, 오렌지주스 하나 후다닥 해치우고 다시 오늘 최종 목적지 Ages(아헤스)로 출발했다.
이 길은 아기자기하면서 이뻤다. 도중에 땅바닥에 원형으로 돌을 둘러놓은 게 보였다. 나도 작은 돌 하나 보탰다.
길이 재밌음 힘듬도 덜하다.
오후 1:50분 42,769 걸어 29.6킬로를 와 Ages에 무사히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샤워 전 맥주 한잔 했다. 이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샤워와 빨래. 잠시 후 어제 미사를 같이 본 아일랜드 친구 4명이 왔다. 그중 한 친구가 옆 친구 코골이 때문에 밤에 한숨도 못 잤다며, 어젯밤엔 아일랜드 돌아가는 비행기표 끊기 직전이었단 말을 한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Thank God, I’m in a different room tonight.
그랬더니 다 웃는다. 내 유머 코드는 여기서도 통한다. ㅎㅎ
그리고 마을 산책. 오래된 성당에 오다. 홀로 무릎 꿇고 기도하다. 벽돌은 삭았고 누런 곰팡이도 피었지만 그 안은 정갈하고 고요하다.
2017.10.14. 오후 5:43 스페인 아헤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쓰다.
#amazingg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