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밤 말을 엿듣는 쥐

사랑아, 내 사랑아

by 은예진

문밖에서 엿듣던 보이가 재빨리 장연수에게 심부름꾼 아이를 보냈다. 김 군이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조차 목소리를 낮춘 것은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끄러움 때문에 달아오른 시월이의 목소리는 문을 넘고 말았다.


‘이본느, 유성준과 경성 역 근처 일성 여관 투숙 중.’


보이가 보낸 쪽지를 받아 든 장연수는 쾌재를 부르며 경찰서로 달려갔다. 보이에게 두둑한 봉투를 안겨 준 것이 효과가 있었다. 일이 잘되면 그 봉투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살롱 자체가 네 것이 될 수 있다고 꼬드겨 놨었다.


이것들을 아작 소리 나게 하겠다고 벼르던 장연수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유성준이야 죄가 워낙 크니까 들어가자마자 사형을 당할 것이고 본이도 지난번에는 어떻게 나왔지만 이번에는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장연수는 어린 시절부터 제가 가질 수 없는 것은 부숴버리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장덕순을 닮지 않고 허랑방탕한 것만 같지만 여러모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장덕순 또한 남의 땅을 빼앗지 못하면 그 땅을 농사지을 수 없는 땅으로 만들어 버리기라도 해야 속이 후련한 인물이니 말이다.


종로경찰서에 들어간 장연수가 서장 어디 있느냐고 큰소리를 쳤다. 경찰서에서는 웬 조선인이 들어와 거들먹거리는 것이 우습다는 듯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지나가던 형사 하나가 일이 있으면 절차를 밟으라며 호통을 쳤다.


장연수는 자신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왔는데 이따위로 푸대접이냐며 형사보다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갑작스럽게 경찰들의 시선이 장연수에게 쏠렸다. 좀 전에 호통치던 형사가 뒤돌아서서 장연수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 형사는 다름 아닌 본이를 취조하던 고무라였다. 고무라의 시선에 불쾌감을 느낀 장연수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혼마치 경무국장을 쏜 놈이 어디 있는지 알아 왔단 말이오.”


장연수의 손가락이 벽에 붙은 유성준의 사진을 가리켰다. 고무라 형사는 재빨리 장연수를 끌고 취조실로 들어갔다. 지난번에 상부 명령으로 이본을 풀어 준 것 때문에 이가 갈렸다. 상부에 있는 놈들이 돈을 받아 처먹으면 밑에 있는 사냥개만도 못한 형사들은 다 잡은 범인도 놓아주어야 한다.


이번에는 절대 호락호락하게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혼마치 국장과의 인연으로 조선에 들어와 있던 고무라는 자신만이라도 국장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무라는 장연수의 기를 꺾어 놓고 시작하기 위해 빈정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너 같은 놈이 어디 한둘인 줄 알아? 어떤 놈들은 돈만 주면 사이토 총독을 쏜 놈을 밀고하겠대. 그놈은 벌써 죽었는데 말이야. 어디 들어보기나 하자고.”


“뭐야, 이 사람들이 정말 내 말을 못 믿나. 유성준이 이본느의 살롱 여주인하고 지금 여관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단 말이야.”


고무라 형사의 눈이 반짝거렸다. 워낙 여러 차례 엉터리 고발이 들어와 그러려니 했었지만 살롱 여주인이라는 말에 정색했다.


“어딘가? 그 여관이 어딘지 당장 말해.”


“그럼 나한테는 뭘 주는 겁니까? 나도 뭐 얻어가는 게 있어야 신고를 하지요. 이거 얻어내느라 돈 좀 썼는데.”


마음이 급해진 고무라가 장연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 조센징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서 헛소리야. 당장 감방에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빨리 그 여관 이름이나 대라고.”


장연수는 캑캑 거리며 일성 여관이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외쳤다.


“빌어먹을 내가 동네북이냐?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왜 내 멱살만 쥐고 야단이야!”


고무라가 일성 여관으로 출동하라는 소리를 지르며 취조실을 빠져나가자 혼자 남은 장연수가 투덜거렸다. 군용 트럭에 시동 걸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군홧발이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취조실을 나오자 평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다가와 옆구리를 찌른다. 말하는 투를 보니 조선인 포상금 사냥꾼인 모양이었다. 얼굴색이 회색빛인 데다 이목구비가 용렬해 보이는 것이 제 아비도 팔아먹을 만큼 비열해 보인다.


“형씨는 어떻게 그걸 알았소. 좋겠네. 포상금이 꽤 되는 것 같던데. 아, 나는 요즘 벌이가 시원찮아서 굶어 죽게 생겼네. 부럽네. 부러워.”


장연수는 자기가 저런 인물과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자꾸만 고개를 외로 꼬고 사내를 외면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내는 의열단 한 명 고발하는데 얼마씩 받았느냐고 붙들고 늘어졌다.


참다못한 장연수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며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제기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총을 든 경찰이 가득 타고 있는 트럭의 꽁무니를 보고 있으려니 웃음이 비실거리고 나왔다.


“유성준이 너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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