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사람들
경찰은 유성준이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혼마치의 생일 축하연 회장에서 그가 빠져나가는 것을 본 경찰들은 요란하지 않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고무라의 지휘 아래 몇몇 경찰들이 여관엘 들어가 주인을 붙잡았다.
나머지 경찰들이 여관 주변 도주로가 될 만한 곳은 모두 차단하고 나서 여관 주인을 앞세운 고무라가 유성준이 묵고 있는 방 앞에 섰다. 문을 두드렸지만 묵묵부답이다.
“이보게 방에 있나?”
여관 주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방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무라는 여관 주인을 밀어젖히고 발로 문을 걷어찼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문과 정면으로 나 있는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
고무라가 달려가 보니 창문 밖은 이웃집 마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달아났다고 소리를 지르며 이웃집으로 뛰어들자 여기저기서 경찰들이 모여들었다. 인근 집들을 모두 뒤지라며 경찰력을 분산시켰다.
경성역 인근이라 여관과 여인숙들이 많았고 작은 규모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경찰들이 이 집 저 집 문을 열어젖히고 여자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실제로 유성준과 본이는 일성 여관을 벗어나지 않았다. 심상찮은 기척을 느낀 그들은 창문을 통해 옆방으로 옮겨 갔다가 경찰들이 여관 곳곳을 뒤지는 동안 다시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왔다. 벽에 바짝 몸을 붙이고 문 뒤에 숨어 있다가 여관 주인의 방이 있는 별채로 뛰어 나갈 계획이었다.
유성준은 두 사람이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따로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별채로 혼자 가다 붙잡히면 최소한 본이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유성준이 혼자 뛰어 나갈 테니 이곳에 있으라고 손짓하자 본이는 고개를 흔든다.
본이는 눈에 힘을 주어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유성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본이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방을 뒤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마당에는 경찰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달리기 시작했을 때 어디선가 저기 연놈이 있다는 외침 소리가 들렸다.
본채는 틀렸다. 골목으로 달려야 한다. 유성준이 품에 감추고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총알은 함부로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뛰면서 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쫓는 자들에게 자신이 무방비가 아니라는 것은 보여 주어야 했다.
본이는 유성준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한다. 골목 끝은 경찰이 막고 있다. 유성준은 이제 골목 안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총을 쏘면 본이가 다친다. 그는 여기서 투항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였으면 총을 쏠 수 있지만 본이가 있는 이상 함부로 총을 쏠 수 없었다.
그가 총을 든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총을 겨눈 경찰들이 앞뒤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골목의 담벼락이 허물어진 부분이 보였다. 사람 하나는 뛰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눈 하나가 슬쩍 비쳤다. 유성준이 흘끔 그곳을 보자 손이 나와 그들을 불렀다. 유성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이지만 현재로서는 그 손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유성준은 본이에게 속삭였다.
“내가 그 말했던가. 이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던 순간 말이야. 장옷으로 감추어서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었다고 말이야. 아마 시월이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내가 강물에 빠졌던 것 같은데. 지금이 아니면 그 말을 당신에게 전해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제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우리한테 그런 말 할 시간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그러려면 당신이 꼭 살아야 해. 알았지?”
유성준은 갑자기 본이를 잡아끌어 허물어진 담벼락 안으로 밀어 넣고 경찰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본이가 달아날 시간을 끌어야 했다. 유성준은 담벼락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경찰 쪽을 향해 총을 쏘았다.
화약 냄새와 함께 요란한 총성이 서너 발 더 울렸다. 본이는 비명을 지르며 유성준에게 달려가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를 잡아챈 손의 완력은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었다.
손은 본이의 입을 틀어막고 허리를 움켜쥔 채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총성은 더 들리지 않았다. 본이의 허리를 움켜쥔 자는 담 위를 달리는 것처럼 날랜 발걸음으로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