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대표가 수첩을 꺼내 훑어보며 인터뷰와 예능 출연 일정을 줄줄이 읊었다. 듣고 있던 우혁이 손을 들어 중단시켰다.
“이게 전부 서아랑 같이 해야 하는 거라고?”
“굳이 같이 나갈 필요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같이 나오기를 원하는 프로야.”
“누가 일반인 여친을 예능에 데리고 나가?”
“서아는 지금 일반인 수준이 아니야. 이거 보고 얘기해.”
장 대표가 내민 태블릿 화면에는 러브나 하트가 붙은 가로수길 천사 팬카페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잘하면 우리 강우혁 배우님보다 많겠습니다.”
우혁은 눈썹을 치켜세운 채 손가락으로 태블릿을 넘기며 툴툴거렸다.
“내가 십 년 동안 구르고 넘어지고 별 생쇼를 다하며 얻은 인기보다 치매 걸린 할머니한테 신발 한 번 벗어준 은서아가 인기가 더 많다고?”
“물론 너는 계속 가는 인기지만 서아 씨야 한때 흥미지.”
우혁이 고개를 들어 장 대표를 쏘아보았다.
“내 인기가 계속 간다고 누가 그래?”
장 대표는 어깨를 흠칫하며 뒤로 반 발짝 물러섰다.
“예리하시군요.”
“아, 몰라. 서아가 같이 나간데?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서아는 일반인이야!”
장 대표는 무언가를 찾는 듯 태블릿 화면을 이리저리 밀었다. 장 대표의 손끝에서 넘어가는 문서의 제목 중에 달콤이라는 말이 보였다. 우혁은 서아가 만든 달달한 디저트 생각이 나서 장 대표의 손목을 잡았다.
“달콤한? 그거 뭐야?”
“응? 뭐라고?”
장 대표는 감추고 싶었던 걸 들킨 아이처럼 겸연쩍은 얼굴로 되물었다.
“네가 넘기던 화면에 달콤이라는 말이 보여서.”
“아하 그거. 지난번에 너한테 섭외 들어왔던 연애 예능인데 콘셉트를 바꿔서 너랑 은서아 씨가 출연하면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우혁이 장 대표 손에서 태블릿을 받아 들며 프로그램 제목을 중얼거렸다.
“달콤한 너의 맛?”
“응, 서아 씨가 파티시에니까 이 제목 하고도 되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
우혁이 달콤한 너의 맛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을 계속 중얼거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우혁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서아 퇴근 시간이다. 데리러 가야지.”
“내가 다녀올게.”
장 대표도 시계를 흘끔거리며 나서자 우혁이 정색을 했다.
“무슨 소리야, 아무리 소속사 대표이자 절친이라고 하지만 여자친구까지 맡기는 건 예의가 아니지.”
장 대표는 어이가 없는지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너, 진짜 메서드 연기 죽인다.”
“내가 연기하는 것 같아?”
우혁의 질문에 장 대표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우혁은 그런 장 대표가 재미있다는 듯 싱긋 웃으며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네가 어찌 알겠니.’
더운 여름날 마스크를 쓰고 캡을 눌러쓴 서아가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자마자 마스크를 벗은 서아가 더운지 얼굴 앞에서 손부채질을 했다. 우혁은 그런 서아를 위해 냉각시트 버튼을 눌러주고 에어컨 방향을 조절해 주었다.
“스타가 된 기분이 어때?”
“음……. 강우혁 씨는 참 힘들었겠다 뭐 이런 생각?”
“오호, 이거 괜찮은 경험이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늘은 농땡이 좀 피워볼까?”
“무슨 농땡이요?”
“저녁 사 먹고 데이트하기.”
“데에이이트?”
서아가 데이트라는 말이 무슨 못 들을 말이라도 되는 듯 길게 끌었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인데 남들 눈에도 좀 뜨여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것도 해 줘야 하는 거예요?”
서아가 신기한 이야기를 들은 아이 같은 표정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은 손끝이 움찔 거리는 걸 겨우 참았다. 마음 같아서는 순진한 서아의 볼을 잡아당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장난 삼아 손을 대다 보면 어디까지 갈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소문을 냈으면 서비스도 좀 해주는 게 스타로서 팬들에 대한 예의지.”
“그렇구나.”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나는 데이트 같은 거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우혁 씨가 알아서 가주세요. 나야 뭐 저녁밥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기는 하네요.”
서아가 자동차 시트에 몸을 편하게 기대며 우혁을 바라보았다.
“너, 연애도 안 해봤냐?”
“그런 개인적인 질문은 사양합니다.”
“답은 다 말해놓고 무슨 개인적인 질문이야. 데이트 같은 거 해보지 않았다고 한 주제에.”
“그런가?”
서아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거렸다. 차가 도착한 곳은 연남동 골목길이었다.
서아는 소문만 들었지 아직 제대로 다녀보지 않은 동네가 신기해서 두리번거리며 차창 밖 식당들을 구경했다. 우혁이 먼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던 서아가 냉큼 뛰어내렸다.
탕탕거리는 철 계단을 딛고 올라간 레스토랑 입구에는 게이로 유명한 연예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가장 안전한 오빠, 가장 위험한 형이라는 슬로건이 걸린 벽을 보고 서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 연예인 몰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는 그곳이지요?”
“맞아.”
“에이, 남들 눈에 뜨이게 간다더니 몰래 데이트하는 곳으로 왔네요.”
“왜? 눈에 뜨이고 싶었어?”
“아니요. 당연히 아니죠.”
서아가 양손을 마구 흔드는 것으로 모자라 머리까지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