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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Aug 12. 2024

38. 벌써부터 설렘

서아는 우혁과 구선아가 반가워하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만의 영역에 발을 잘못 디딘 외부인 같은 느낌이었다.


“더우니까 우선 들어가실까요. 할 일이 많습니다.”


구 작가가 싱긋 웃으며 두 사람을 건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승강기에 타자 우혁보다 먼저 구 작가가 삼층을 눌렀다.


“너는 예나 지금이나 성격이 너무 급해서 탈이야.”


우혁이 툴툴대자 구 작가가 어깨를 움츠리기 히히 거리며 웃었다. 


“너 이번 프로에서도 나 그렇게 닦달해 대면 너랑 일 못한다.”


우혁이 구 작가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자 구 작가가 우혁의 팔을 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오빠, 이번 프로는 연애 프로야. 알콩달콩 더디게 가는 맛에 보는 프론데 내가 뭘 어쩌겠어.”

“그건 알지만 너를 보면 개 버릇 남 주지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하단 말이야.”


구 작가는 고개를 돌려 서아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전에 오빠랑 같이 예능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오빠를 하도 닦달해서 오빠가 저라면 아주 치를 떨어요.”

“아, 네에.”


서아는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꾸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장 대표와 지난번 만났던 임 팀장이 반겼다. JK401은 오래된 건물과 다르게 현대적인 분위기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입구 로비에는 앤디 워홀이 마릴린 먼로를 그린 것과 같은 기법으로 강우혁을 그린 그림이 걸려있었다. 서아는 그런 그림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는 강우혁의 자기애가 감탄스러웠다. 연예인에게 이런 정도의 자기애는 애교 수준에 불과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 작가와는 다들 친분이 있는지 허물없이 구작이라 부르며 반가워했다. 서아는 우혁과 알게 된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넘은 자신과 전에 작업을 같이 했던 구 작가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묘하게 소외감을 느꼈다.


구 작가가 먼저 자리에 앉고 맞은편에 우혁과 서아가 앉았다. 그들 사이에 장 대표가 자리를 잡으며 음료를 내놨다. 


“우선 이렇게 두 분과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가로수길 천사님 실제로 뵈니까 정말 카메라 잘 받을 얼굴이세요. 우리 팀 대박의 스멜이 느껴집니다.”

“이왕 시작한 일이니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서아가 레모네이드가 든 플라스틱 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원래 추석 파일럿으로 소문났지만 우혁 오빠가 합류하면서 정규 편성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달콤한 너의 맛의 시청률은 우리 팀한테 걸려있습니다.”

“부담스럽네.”


우혁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대답했다. 구 작가는 재빨리 노트북을 켜고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부터 물었다. 우혁은 서아와 미리 상의한 대로 실제 두 사람이 만난 상황을 설명했다.


서아의 아버지가 은장환 피디이며 우혁과 서아가 은 피디의 책을 사러 헌책방에 갔다가 만난 이야기를 해줬다. 그동안 매체 인터뷰에서 한 번도 한적 없는 이야기였다. 구 작가는 손가락으로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다 말고 신기하다는 듯 넋을 놓고 우혁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에 그렇게 만나서 사랑에 빠지다니. 이거 만나는 이야기부터 대박이네요.”

“그래서 나는 은 피디님이 우리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줬다고 생각해.”


우혁은 자연스럽게 서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아는 그런 우혁의 행동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우혁은 계속 이런 식으로 그녀를 대할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떨리면 어쩌자는 건가 싶었다.        


진심이 아니라고 이건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우혁의 손길은 부드럽고 눈빛은 따스했다. 서아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이 들킬까 봐 시선을 떨어트려 깍지 낀 손만 바라보았다.


“참 그런데 좀 전에 서아 씨가 우혁 오빠한테 우혁 씨라고 부르는 거 봤거든요.”


서아가 고개를 들어 구 작가를 바라보았다.


“네, 그게 무슨 문제 있나요?”


“아무래도 우혁 씨라고 하는 건 너무 거리감 있어 보여요. 더군다나 서아 씨는 우혁 오빠에 비해 열 살이나 어리니까 우혁 씨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그냥 오빠가 더 좋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우혁에게 오빠, 오빠 하던 구 작가는 자기만 오빠라고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서아에게도 오빠라고 부르기를 요청했다. 우혁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서아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마치 ‘내가 그래서 진작부터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서아가 눈은 웃지만 입매는 굳은 얼굴로 아, 네라고 대답하자 우혁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키득거렸다.


“아, 이거다!”

“뭐가?”


구 작가가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환호성을 지르자 서아와 우혁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첫 회 시작 에피소드 나왔어요. 두 분이 오빠라고 부르는 문제로 실랑이를 하다 결국 우혁 오빠가 이겨서 서아 씨가 오빠라고 부르게 되는 거요.”


구 작가는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 구 작가 앞에서 서아가 우혁을 쏘아보며 눈을 흘겼다. 우혁은 내가 먼저 꺼낸 말이 아니라 쟤가 먼저 꺼낸 말이라며 손가락으로 구 작가를 가리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장 대표가 보기에도 구 작가가 보기에도 두 사람의 눈빛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풋풋한 커플로 보였다. 다만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어떤 눈빛으로 상대방을 보고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저희가 다른 커플들은 처음 만나는 콘셉트라 집이 필요 없지만 두 분은 연인 사이라 미리 결혼 체험하는 콘셉트로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집을 새로 구할 예정인데 어떤 집이 좋으세요?”


“내가 요즘 작품 활동이 없어서 여유가 좀 있으니까 이왕이면 강원도 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집이 어떨까 싶은데.”

“그렇게 멀리요?”


구 작가가 다소 놀랍다는 듯 물었다. 


“촬영 핑계로 좀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우혁이 서아의 손 등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놓으며 말했다.


“어쩌면 좋아, 벌써부터 설렘, 설렘이에요.”


구 작가의 얼굴에 설렘 가득한 홍조가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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