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런치 머신을 하고 있는 우혁의 몸이 땀으로 번질거렸다. 두 시간째 운동을 하고 있는 우혁은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몰두하고 있다. 같이 운동을 하던 민석은 한 시간 만에 방전되어 눈치를 살피며 딴짓을 하고 있었다.
지옥의 조교로 불리는 우혁의 트레이너가 민석을 향해 입술을 실룩거리며 다가왔다. 민석은 그런 트레이너를 보고 겁에 질려 어깨를 움츠렸다. 마침 핸드폰이 울리자 민석은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창가에 서서 전화를 받던 민석이 몇 번이나 우혁을 흘끔거렸다.
통화를 끝낸 민석이 숄더 플레스를 잡고 있는 우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너 아직 서아 씨한테 달콤한 너의 맛 출연 여부 안 물어봤지?”
우혁은 이를 악물고 팔을 움직일 뿐 대답하지 않는다.
“이번 주 내에 출연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하는데.”
“안 해, 지난번에 이야기 안 했었나?”
민석도 안 했으며 싶었다. 무슨 마음인지 자기도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리얼리티 연애 프로에 나가는 게 탐탁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더 물어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알았어. 그럼 작가한테 전화해서 확실하게 거절한다.”
우혁은 또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민석은 전화기를 든 채 우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로는 안 한다고 하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미련이 있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하지 않겠다고 작가에게 통보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수습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혁이를 하루 이틀 겪어본 게 아니니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강우혁은 지금 은서아와 그 프로를 하고 싶은데 차마 서아에게 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거다. 다른 일 같았으면 민석이 기꺼이 나서서 서아에게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못된 심보인지 이번에는 그냥 모른 체하고 싶었다.
‘그래 우혁아, 네가 말하기 어려우면 그냥 말아라. 그게 낫겠다.’
우혁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꽉 다물고 있는 입술 위로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 헬스클럽 문이 열리고 매니저와 스텝을 동반한 차현준이 들어섰다. 피갈레 스냅백에 발렌시아가 스니커즈, 안드레아 폼필리오 셔츠를 입은 차현준은 운동을 하러 온 것인지 화보를 찍으러 온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강우혁 앞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차현준이 이제 스타가 되어 어깨에 힘을 주고 거들먹거린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브이로그 등을 통해 팬들과 일상을 공유하기로 유명한 차현준의 손에는 분신과도 같은 카메라가 들려있다.
차현준은 우혁을 보자 그의 팬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교활한 미소를 짓는다.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가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우혁은 비위가 상한다. 연예인들이 카메라 앞과 일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차현준처럼 심한 연예인은 또 흔하지 않다.
미소년 같은 얼굴에 여자들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어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차현준은 카메라가 꺼지면 개저씨라고 불리는 중년 남자처럼 느끼하게 군다. 차현준이 어떤 놈인지 그 바닥까지 아는 우혁은 시선도 마주치기 싫어 고개를 외면했다.
차현준은 우혁을 향해 다가오면서 그를 뒤따르던 매니저에게 카메라를 넘겼다. 카메라가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자 차현준은 재빨리 보호해주고 싶은 소년의 얼굴이 되어 깍듯이 허리를 굽힌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진심이 철철 넘치는 낭랑한 목소리다. 민석은 재빨리 다가가 카메라를 손으로 막았다.
“허락도 받지 않고 뭐 하는 짓입니까? 어디다 카메라를 들이대요?”
“저는 그냥 선배님을 뵙고 반가운 마음에…….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차현준이 혼이 난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쩔쩔맨다. 우혁이 무슨 말을 하건 그의 말은 편집될 것이다. 그리고 인상 쓰고 있는 그의 얼굴과 항의하는 민석의 모습만 등장하게 될 것이다.
방송국 카메라라면 막을 수 있지만 차현준 개인 방송을 무슨 수로 막는가. 동료 연예인의 브이로그에 얼굴이 등장했다고 초상권 운운하다가는 비난받을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민석은 혹시라도 우혁이 성질을 부릴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커버하기 위해 안절부절못했다. 우혁은 숨을 깊이 몰아쉬고 싱긋 웃으며 민석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우혁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걸핏하면 하던 말을 떠올리며 차현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돌아섰다. 그런데 차현준은 우혁이 그렇게 피하는 걸 가만 놔두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배님, 이번에 추석 파일럿으로 제작하는 달콤한 너의 맛 섭외받으셨다면서요? 가로수길 천사인 여자친구
분하고 동반 출연이지요?”
우혁은 차현준의 입에서 서아가 등장하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그걸 네가 어떻게?”
차현준은 아쉬운 눈빛으로 한숨을 쉬었다.
“제작진에서 저랑 선배님이랑 둘을 두고 저울질을 했었나 봐요. 그런데 선배님 여자 친구가 가로수길 천사라는 기사를 보고 선배님으로 결정한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차현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선배님이 양보해 주시면 제가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네가?”
우혁이 차현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작년 일을 떠올렸다. 차현준과 리얼리티 연애 예능을 찍을 여자가 누가 될지 몰라도 무사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은 아직 오케이 사인 안 하신 걸로 아는데요.”
“방금 결정했어. 나가기로.”
“우혁아, 그건…….”
당황한 민석이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듯 안타까운 목소리로 끼어들었지만 우혁이 손을 들어 막았다.
“어떤 놈이 감히 선배한테 프로그램을 양보해 달라고 해! 그런 버릇없는 녀석한테는 넘겨줄 수 없지. 안 그러냐?”
민석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혁이 흘러내린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샤워실을 향했다. 우혁과 민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차현준이 손가락을 튕기며 히죽거리고 웃었다.
“단순하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