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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Oct 14. 2024

65.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혁의 뜨거운 입맞춤에 해변은 순식간에 음소거가 된 듯 조용해졌다. 피디는 자리에서 일어서 멋쩍은 듯 흘끔거렸다.


“하, 강우혁 씨 대담하네. 저렇게 노골적인 장면은 방송에 쓸 수도 없는데 아깝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개인 소장할까요?”


카메라 감독이 엉큼한 목소리로 소곤거리자 구 작가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거, 꽤 오래.....”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마치 은강 커플에게 현실로 돌아오라고 불러주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서아가 우혁의 팔을 잡고 그를 밀어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서아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못 박힌 듯 한자리에 멈춰서 입맞춤을 했을 뿐인데 백 미터 달리기를 필사적으로 한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옆에서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를 의식한 서아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우혁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문질렀다.


“으, 으, 으.”

“왜 으으 거려?”

“몰라서 물어?”

“응, 모르겠어.”

“나도 몰라.”


서아가 주먹으로 우혁의 가슴을 쳤다. 우혁은 그런 서아를 갑자기 번쩍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물속에 풍덩 집어넣어 버렸다. 놀란 서아가 소리를 지르며 허우적거렸다. 우혁은 활짝 웃으며 그런 서아가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나가면 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마를 덮은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서아가 우혁의 얼굴을 향해 물을 튕겼다. 우혁도 같이 물을 튕기며 보드에 올라탔다. 서아가 허공으로 튕겨낸 바닷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햇빛 찬란한 시월의 오후 바닷가 연인의 모습은 그저 보기 좋았다.


해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현준이 다가와 우혁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애쓰십니다.”

“뭘?”

“그냥요.”


차현준의 입술이 실룩거리는 것을 본 우혁이 느긋한 표정으로 서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수건 고맙다.”


구 작가가 다가와 기막힌 화면이 나왔다며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차현준이 뒤로 물러섰다. 이박 삼일의 촬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차현준이 저게 무슨 속셈이 있는데 뭔지 정확히 모르겠어. 네가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장 대표가 몰고 온 벤에 올라탄 우혁이 인사도 하기 전에 차현준에 대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차현준이 서아한테 가사도우미 이야기를 하며 니들 사이를 다 알고 있다는 티를 냈나 봐.”

“저 자식이 진짜.”


장 대표가 주먹으로 핸들을 후려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현준이 비니를 뒤집어쓴 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타나 벤의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뭡니까?”


장 대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차현준은 해맑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께 인사를 못해서요. 조심해서 올라가십시오.”


우혁이 차에서 내려 차현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너도 조심해서 올라가라.”

“그런데 선배님.”


차현준이 갑자기 우혁과 잡은 손을 몸 쪽으로 끌어당겨 귀에 입을 바싹댔다. 


“서아 씨한테 들으셨나 모르겠네요. 제가 두 분을 위해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했거든요. 기대해 주십시오.”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니?”

“그게…….”


차현준이 비니를 긁적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 어려운 대답을 해야 한다는 듯 망설이던 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이 거기 그렇게 멀쩡하게 계신 게 싫어요. 이 바닥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선배님이 절 쓰레기로 만들어 놓으신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좋지 않아요.”


차현준이 다정한 눈빛과 애교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차현준이 우혁을 꽤나 좋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전 선배님이 이 바닥을 떠나게 하고 싶어요.”

"하아. 참. 너 내가 어지간히 겁나는 모양이구나?”


우혁이 차현준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차현준이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날 밤 저를 잘못 건드리셨다는 걸 잊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알았다. 맘대로 해라. 나도 단단히 마음먹고 있으마.”


우혁이 차현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돌아섰다. 차에 타자마자 서아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우혁의 손을 잡았다.


“뭘 어쩌려는 거지요?”

“우리가 가짜로 시작했다는 걸 폭로하려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럴만한 증거를 잡은 것 같은데.”

“차현준 씨가 우릴 그렇게 괴롭히는 이유가 도대체 뭐예요?”


우혁은 밴의 좌석 등받이를 뒤로 밀어 드러눕다시피 했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어 서아를 불렀다.


“이리 와. 여기 누워서 들어.”


서아는 장 대표가 민망한지 운전석 쪽을 흘끔거렸다. 앞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장 대표의 얼굴은 차현준을 당장 밟아버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우혁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장 대표 신경 쓰지 말고 오라고 눈짓했다. 


잠시 망설이던 서아가 우혁에게 다가가 그가 올린 팔을 베고 누웠다. 우혁은 서아를 껴안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구불구불하고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우혁의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서아는 몸을 모로 돌려 우혁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서아의 머리카락 속을 헤치고 들어가던 우혁이 그녀를 따라 몸을 돌렸다. 어둠이 내린 차 안에서 마주 보고 누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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