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혁은 서아에게 내준 손 말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앞머릿속 이마에 손가락을 댔다. 이마에 닿은 손가락이 조금씩 내려와 눈썹 위에 멈췄다.
“너는 눈썹이 참 예뻐.”
“얼굴에는 눈썹 말고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는데 하필이면 눈썹?”
서아가 큭큭 웃었다. 하지만 곧 웃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혁이 갑자기 코가 닿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 댔다. 놀란 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혁은 빙그레 웃으며 마주 닿은 이마를 살짝 비비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차현준이 왜 나한테 저러는지 궁금하지?”
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우혁을 올려다보았다.
우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그날 밤 차현준의 만행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걔는 겁이 나는 거야. 겁이 나면 차라리 엎드려 빌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해야 하는 데 그건 또 죽기보다 싫은 모양이야.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내 약점을 쥐고 거래를 하고 싶은 거지.”
“그렇구나.”
서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두 손을 모았다.
“나, 우혁 오빠한테 사과해야 할 것 같아요.”
서아가 갑자기 일어서는 바람에 놀란 우혁이 따라서 일어섰다.
“뭘 사과해?”
“내가 우혁 오빠 처음 만났을 때 차현준을 더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거 정말 큰 잘못인 것 같아요.”
우혁은 어이가 없는지 큰 소리가 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던 장 대표가 우혁의 웃음에 백미러를 흘끔거렸다.
“누가 봐도 차현준이 쟤가 그렇게 나쁜 놈처럼 보이지는 않잖아.”
“뭔가 회의감이 드네요.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차현준 씨는 정말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결국 내가 오지랖 부려서 똥 밟은 거지 뭐.”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서아가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서아가 너무 진지한 얼굴로 묻자 우혁이 당황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그 말을 듣고 우혁 오빠가 자랑스러워서 뿌듯한데.”
우혁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가 자랑스러워. 괜히 끼어들어 못 볼꼴 보고 이제 저 자식한테 협박까지 당하는데.”
“가영 씨를 구했잖아요.”
“응?”
우혁은 자신이 이가영을 구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서아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가영 씨가 어쩔 수 없이 아니라고 발뺌하기는 했지만 그 순간 오빠가 아니었으면 어떤 일을 당했을지 뻔하잖아요. 그런데 오빠가 끼어드는 바람에 어린 가영 씨를 구했잖아. 천사는 내가 아니라 오빠 같은데.”
“흠, 꿈보다 해몽인데.”
우혁이 어깨를 으쓱하자 서아가 손을 내밀어 우혁의 뺨에 손을 댔다. 아침에 면도를 했지만 시간이 늦어지자 다시 돋아난 수염이 까슬까슬했다.
“다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차현준 같은 사람이 아니고 강우혁이라서.”
순간 우혁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어둑한 차 안에서도 맑은 물이 넘실거리는 것만 같은 서아의 눈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그 눈에서 나오는 진심의 무게가 감당이 되지 않아 온몸의 피가 빠르게 돌았다. 우혁은 자신의 뺨 위에 있는 서아의 손을 잡아내려 입술을 댔다.
“흠, 흠, 흠.”
장 대표가 헛기침을 어찌나 요란하게 했는지 서아와 우혁 두 사람 모두 어깨를 화들짝 떨었다.
“두 분 분위기 좋은 건 알겠는데 이제 그만하고 대책 마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혁과 서아는 둘 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장 대표를 공공의 적이라도 되는 듯 흘겨보았다. 백미러를 통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장 대표가 어이없다는 듯 허허거렸다.
“지금 두 사람이 같이 나를 원망하는 겁니까. 계속 그렇게 깨 볶고 있게 놔뒀어야 한다 뭐 이런 겁니까?”
서아가 갑자기 운전석 시트를 잡고 고개를 내밀었다.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장 대표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게 영 못마땅한 것 같아요.”
그 말을 마친 서아가 우혁을 향해 ‘그렇지?’를 외쳤다.
“그걸 말해 뭐 해. 민석이는 우리를 십 대 청소년이 함부로 어른 흉내 내는 것처럼 불안스러워하잖아. 아무리 소속사 대표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야.”
“정말이에요? 장 대표님, 우리가 그렇게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불안해요?”
난감한 민석이 어이가 없는지 백미러를 보며 우혁을 향해 눈을 흘겼다. 우혁은 그게 재미있는지 민석과 눈이 마주치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마음 급한 민석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혁과 서아는 계속해서 그를 놀리며 서울까지 왔다.
집에 도착하자 벤에서 뛰어내린 우혁이 서아의 손을 잡고 내리는 걸 도왔다. 차에서 내려야 할 짐이 많았다. 평소 같았으면 임 팀장과 같이 와서 우혁은 짐 내리는 것 따위는 돌아보지도 않고 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짐은 임 팀장과 민석에게 맡기고 몸만 쏙 빠져나가 피곤하다며 드러누웠을 우혁이 아쉬운 표정으로 서아의 손을 놓고 짐을 집어 들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민석이 그런 우혁을 보더니 이게 웬일이냐는 듯 빤히 바라보았다.
“뭘 봐. 짐 안 옮겨?”
“내가 해도 되는데.”
“임 팀장이 없잖아. 너 혼자 이걸 다 어떻게 해.”
“그래도 어쩐지 네가 짐을 드는 게 좀 어색하다.”
“나 서아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 혼자 짐 나르는 거 보기 싫을 뿐이다.”
민석을 향해 떠들던 우혁은 짐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두리번거렸다. 우혁이 민석과 이야기하던 사이 그가 내려놓은 짐을 서아가 재빠르게 들고나갔다. 그걸 본 우혁이 손짓을 하며 서아를 불렀다.
“서아야, 같이 가!”
서아가 멈춰 서서 우혁을 기다렸다. 우혁이 다가가자 서아는 그의 팔을 잡고 올려다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나한테 멋있게 보이려고 한 거 아닌데 나는 멋있네. 어쩌지?”
우혁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서아의 입술에 뽀뽀해버렸다. 카메라 앞에서도 진한 키스를 했는데 민석 앞에서는 뽀뽀도 민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