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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Oct 18. 2024

67. 최대한 부드럽게

“나는 회사에 들어가서 차현준이가 어디서 무얼 알아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이 시간에?”


우혁이 시계를 보며 물었다. 벌써 밤 열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지금 임 팀장이 직원들 모아놓아 대책 회의 중이야.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주로 밤을 낮 삼아 사는 사람들이니까 괜찮아.”

“내 일인데 나는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우혁이 미안한 표정으로 민석을 바라보았다.


“이게 네 일이니까 너는 배제시키고 가는 거야. 지금 차현준이 저렇게 나오는 건 누군가 네 뒤통수를 친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네 감정 격해질 일은 걸러서 들어야지.”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우혁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 건가?”

“나 이만 들어가 볼 게. 서아 씨한테는 네가 대신 인사 전해줘라.”


민석이 시간이 없다는 듯 서둘러 집을 빠져나갔다. 화장실에 다녀온 서아는 민석이 보이지 않자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우혁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장 대표는 대책 회의하러 회사 들어갔어.”


서아가 피곤한지 우혁의 맞은편 소파에 팔을 베고 드러누웠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걱정하지 마. 우리가 지금 거짓이 아닌데 뭐.”

“그래도…….”


서아는 괜히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말끝을 흐렸다. 우혁은 가만히 앉아서 소파 헤드를 베고 누워있는 서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물처럼 모든 게 멈춰있는 것만 같은 실내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가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옆집 리트리버가 짖는 소리가 한 번씩 들릴 뿐이었다.


“그때 내가 좀 더 용기를 냈어야 하는 건데.”


서아는 우혁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민 기자가 가짜 열애설을 만들자고 할 때 나는 사실 이미 너에 대한 마음이 가짜가 아니었는데. 가짜로 진짜 마음을 포장하고 싶었어.”

“흣”


서아는 그제야 우혁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고 가볍게 웃었다.


“천하의 강우혁이 왜 그렇게 소심했어?”

“그런 감정이 처음이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 내 마음 나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진심이었거든.”


서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흐트러진 머리를 모았다. 손목에 끼워 두었던 고무줄을 빼서 머리를 묶으려는 순간 고무줄이 튕겨져 나갔다. 우혁은 재빨리 일어서 러그 위에 떨어진 고무줄을 들고 서아의 옆에 앉았다.


“내가 해줄게.”


서아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우혁에게 머리를 맡겼다. 우혁은 천천히 서아의 머리를 그러모아 느슨하게 고무줄로 묶었다. 


“어쩐지 엉성하다.”


우혁이 부끄러운 듯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서아는 그런 우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우리가 진짜 열애설을 발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게.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다른 사람 원망할 것 없이 결국 선택은 우리가 한 거니까 책임도 우리가 져야겠지?”

“이런 일은 나 혼자 당해야 하는데. 너까지 사람들에게 비난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아가 고개를 흔들며 우혁의 눈을 바라보았다.


“둘이 같이 한 일인데 왜 혼자 당해? 같이 헤쳐 나가야지!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민석 씨가 그 방법을 찾아내기 빌어야지!”


서아가 눈을 반짝이며 입술을 앙다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혁이 엉성하게 묶었던 고무줄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머리가 풀어졌다. 우혁은 풀어진 서아의 머리카락에 손을 집어넣어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서아는 눈을 감은 채 우혁의 손길에 자신을 맡겼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것만 같았다. 아마도 중간에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우혁도 서아도 멈추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탐하듯 몸을 탐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우혁은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로 서아의 등을 더듬었다. 그의 손이 서아의 맨투맨 티셔츠 밑단 속으로 들어갈 때 그녀가 먼저 우혁의 입술을 덮었다.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뭐든지 처음은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럼에도 우혁을 믿기에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긴 입맞춤이 끝나자 우혁이 서아를 번쩍 안아들고 일어섰다. 당황한 서아가 그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우혁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그의 방문을 열었다. 익숙한 우혁의 향기, 블랙베리 향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그의 방 침대에 서아가 누웠다. 


서아는 우혁의 침대에 눕자 마치 방 전체가 그녀를 껴안아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드 등 하나만 켜놓은 어둑한 방, 침대에 서아를 뉘어놓은 우혁은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녀가 긴장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움직였다. 침대 바닥에 옷가지가 떨어지고 방안 가득 열기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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