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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Oct 11. 2024

64. 카메라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

“네, 보면 깜짝 놀랄 선물이니까 기대하셔도 좋을걸요.”


그 말과 함께 차현준이 바다로 나가 우혁의 뒤를 따랐다. 서핑 스폿으로 알려진 해변답게 파도가 제법 일었다. 그는 패들링으로 빠르게 우혁을 따라가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파도를 타는 모습을 서너 대의 카메라가 잡느라 분주했다. 


그들을 서포팅하기 위해 온 서핑 강사가 엄지를 치켜들며 ‘바구스’를 외쳤다. 서아는 그제야 바구스가 엄지를 치켜들 만큼 멋지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아들었다.


우혁은 차현준이 조금 더 카메라를 받도록 내버려 두고 혼자서 해변으로 들어왔다. 물에 젖은 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모래사장에 앉아있던 서아가 싱긋 웃으며 서핑 강사를 흉내 내며 외쳤다.


“오빠, 바구스!”


우혁이 젖은 이마를 서아의 이마에 대고 웃었다. 그에게서 비릿한 바다 냄새가 진하게 났다. 


“이제 우리 서아 인생 최초의 서핑 보드 배우기가 시작되겠습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 내가 원래 몸치라서 체육 시간에도 맨날 핑계를 대며 교실에 남아 있던 사람이거든. 

순발력이 워낙 좋지 못한 데다가 리듬감도 제로야.”

“누가 너보고 잘 하래? 내가 옆에 있어 줄 건데 무슨 걱정?”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너무 창피해.”


서아가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키며 코를 찡그렸다. 콧잔등에 주름이 잡히자 코 주변에 있는 서너 개의 주근깨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우혁은 손가락으로 서아의 콧잔등을 문지르며 잔소리했다. 


“나는 네가 이렇게 콧잔등을 찡그리는 게 엄청 귀여운데 이거 자꾸 하면 얼굴에 주름 잡혀서 안 될 것 같은데.”


서아가 민망한지 우혁의 손을 밀어내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은 할 줄 알아?”

“아니. 그런 거 배울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군.”


우혁은 서아가 새어머니와 살아온 시간이 기억나 갑자기 울적해지는 것을 가까스로 누르며 말했다.


“수영 못해도 상관없어. 내가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할 필요도 하나 없고.”


서아는 못 이기는 척 우혁을 따라가며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다에서 나온 차현준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는 두 분에게 방해되지 않게 여기서 보고 있겠습니다.”


우혁은 어쩐 일이냐는 눈빛으로 차현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아는 차현준이 자신에게 한 이야기를 빨리 전하고 싶었지만 카메라 앞에서 입을 열기 쉽지 않았다. 


무언가 석연찮은 분위기를 눈치챈 우혁이 서아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방이 카메라인 곳에서 우혁과 서아는 눈으로 말하는 기술을 터득한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야 들을 수 있는 말로 서아가 말했다. 


차현준이 우리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우혁은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라. 서울 가서 내가 자세히 알아볼게.’  


우혁이 서아를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웃었다. 서아는 그런 우혁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에 생기던 두려움이 여름 한낮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서아야, 서핑은 집중이야.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보드에서 떨어지게 되거든. 그러니까 다른 생각은 할 필요 없고 오직 보드 위에서 균형 잡는 것만 생각해.”


서아는 우혁이 그 말에 담고 있는 다른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사장에서 패들링 연습을 하고 물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무서웠다. 팔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보드는 난파선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걸핏하면 소리 지르는 서아 때문에 제작진은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서포트하기 위해 따라온 서핑 강사까지 동원되어 겨우 서아를 테이크 오프 시키는 데 성공했다.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은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우혁이 처음에 오른발을 앞에 둘지 왼발을 앞에 둘지 결정하라고 했다. 한번 그 자세로 결정하면 앞으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서아는 오른발이 앞으로 가는 구피 자세가 편했다. 보드에 몸을 붙이고 손으로 노를 저어 가는 패들링을 하며 기회를 엿봤다. 살짝 몸을 일으켜 발을 더듬더듬 움직이며 허리를 세웠다. 무릎을 엉성하게 굽힌 자세였지만 설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희열이 온몸을 덮쳤다.


“오빠, 오빠 나, 섰어! 어, 어, 어!”


우혁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순간 균형을 잃고 물속에 풍덩 빠져버렸다. 서아는 짭짤한 바닷물에 빠지자 눈이 따갑고 입안이 썼다. 하지만 짜릿함에 신이 나서 발끝을 세우고 물속에서 통통 뛰며 어쩔 줄 몰랐다.


우혁이 그런 서아의 허리를 잡고 허공으로 띄워 주었다. 서아의 입에서 아이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 테이크 오프 성공한 거 봤지? 와, 이거 진짜 짜릿해.”


우혁은 뺨이 발갛게 상기된 서아를 마주 보고 그녀의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봤지. 서아가 얼마나 잘하는지 카메라보다 더 열심히 봤지.”


웻슈트가 가진 기능 때문에 수영을 하지 못해도 몸이 물에 잘 뜬다는 것을 깨달은 서아가 재미있다는 듯 몸을 뉘었다. 가운데 서 있는 우혁을 기둥처럼 잡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바다가 이렇게 기분 좋은지 몰랐어.”

“네가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즉에 서핑하러 올걸.”

“나도 내가 좋아할 줄 몰랐는걸. 내가 대단한 몸치라 오기 전부터 서핑 때문에 걱정했거든. 이래서 뭐든지 겁내지 말고 해야 하는 것 같아.”

“또 해보고 싶은 거 뭐가 있어?”

“글쎄…….”


서아가 웃으며 우혁이 어깨를 잡고 등 뒤에 매달렸다. 그렇게 매달리다 보니 서아의 손이 어느새 우혁의 어깨에서 목으로 올라갔다. 서아의 팔로 우혁의 목을 감싸자 그녀의 가슴이 우혁의 등에 밀착되었다.


두 사람의 몸이 지나치게 밀착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서아가 우혁의 목을 감싸고 있던 팔을 풀고 뒤로 물러서려 했다. 우혁이 손을 들어 그녀가 멀어지지 못하게 팔을 잡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작진은 해변에 있었고 카메라 두 대만 그들을 따라 들어와 있었다. 이박 삼일 동안 카메라와 같이 생활하다 보면 어느새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할 일이 있고 하지 못할 일이 있다.


우혁은 충동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다. 서아의 손을 움켜쥔 우혁이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술이 서아의 입술을 덮었다. 당황한 카메라가 다급하게 물러섰다 다시 다가왔다. 


놀란 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은 손으로 서아의 눈꺼풀을 닫으며 조금 더 깊게 그녀의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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