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혁과 차현준 사이가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몇 번 있었지만 은하수 카페 영업 이틀차가 무사히 지나갔다. 삼일 차는 카페 영업을 하지 않고 서핑을 하기로 했다. 애초에 양양에서 촬영을 시작할 때부터 서핑이 계획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빠는 서핑 할 줄 알아요?”
서아의 질문에 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찬사에서 여성용으로 가져온 웻수트는 세 벌이었다. 그중 초보자인 서아가 입기 가장 편한 웻수트를 고르느라 우혁이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와, 언제 배웠어요? 요즘 서핑이 핫하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가을에 서핑이라니.”
“한 삼 년 됐어. 배럴을 타는 수준은 못되지만 그럭저럭 아주 보기 흉한 정도는 아니야.”
“배럴? 배럴이 뭐지?”
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우혁이 서아의 뺨을 쥐었다 놓았다. 우혁이 어린애 대하듯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서아는 코를 찡긋거렸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커다란 파도 안쪽에 둥그런 공간을 타는 서퍼 봤지?”
“아하, 서핑 한다고 하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서아의 말에 우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듣던 차현준이 두 사람 사이에 슬쩍 끼어들었다.
“저는 하와이에서 배럴 타봤어요. 그때 같이 서핑하던 친구들한테 바구스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어요.”
우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웻수트를 하나 집어 들었다. 서아는 바구스는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물어보려 했지만 우혁이 빨리 가서 갈아입으라고 성화를 대는 통에 묻지 못했다.
“그거 입기 힘드니까 입기 전에 몸에 비누 칠하고 입어.”
서아는 우혁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가 인조고무 재질의 웻수트에 몸을 집어넣지 못해 쩔쩔맸다. 그제야 우혁이 비누 칠을 하고 입으라는 소리를 떠올리고 제대로 입을 수 있었다.
‘하아, 수트 입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보드를 타라고…….’
서아는 웻수트를 입고 어색한 걸음으로 나갔다. 서핑 보드는 구경도 해본 적 없는 자신이 바다에서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일까를 생각하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 사이 두 남자도 웻수트로 갈아입은 모양이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웻수트에 알록달록 현란한 색상의 보드를 옆구리에 낀 우혁과 차현준을 보자 서아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한숨이 도로 들어가 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실눈이 떠지고 입꼬리가 저절로 실룩거렸다. 제작진 쪽으로 슬쩍 시선을 돌려보자 여자 스텝들이 죄다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 제작진이 서핑을 기획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머리에 근육질의 다부진 몸을 그대로 드러낸 웻수트 차림의 우혁과 베이비 페이스인 얼굴과 다르게 어깨가 넓은 차현준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기쁨을 줄만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낀 서아는 뭔가 어색하면서도 뿌듯한 기분이 들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우혁의 손을 잡았다 도로 놓았다.
“이만하면 파도가 괜찮아 보이는데요.”
우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현준이 재빨리 손가락을 튕기며 제작진을 향해 외쳤다.
“선배님이 먼저 타신답니다.”
우혁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더니 차현준을 빤히 응시했다.
“야, 차현준!”
우혁의 목소리에 불쾌한 감정이 잔뜩 실렸다. 차현준이 기대감에 침을 꼴깍 삼키며 우혁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런 식으로 네가 속내를 드러낸다 이 말이지.’
예능 프로를 찍던 아이돌 가수와 여배우의 욕설 파일이 세간에 화제가 됐던 것처럼 지금 우혁이 감정에 휩쓸리면 강우혁 욕설 파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걸 아는 우혁이 뜸을 들이며 차현준의 기대감을 증폭 시켰다.
짜증이 잔뜩 난 듯한 눈빛으로 한 번 더 이름을 부르자 차현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선배님.”
“양보해주니 고맙다. 역시 차현준이 인간성 좋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화를 내기 바라던 차현준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혁은 피식 웃으며 차현준의 어깨를 툭툭 치고 보드를 내려놓았다.
서아는 드디어 우혁이 화를 내는가 싶어 잔뜩 긴장해 있었다. 함부로 끼어들어 분위기를 반전시킬 재치가 있는 것도 아닌 서아는 마음속으로 제발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서아야!”
우혁이 손을 흔들어 서아를 불렀다. 그제야 서아는 우혁이 차현준의 얕은수를 비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활짝 웃었다.
“여기서 꼼짝 안 하고 오빠 서핑 하는 거 보고 있을 게.”
우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보드를 타고 패들링을 해서 나간 우혁이 파도 가까이 가자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우아하게 테이크 오프 하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우혁은 카메라가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근사하게 찍을 수 있는 방향까지 생각해가며 보드를 움직였다.
모래사장에 앉아 그런 우혁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서아 곁으로 차현준이 바싹 다가왔다. 너무 가까이 앉는 바람에 팔이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서아는 조심스럽게 옆으로 비켜 앉았지만 차현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따라와 붙었다. 서아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차현준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척 앉아 있었다.
“제가 불편하신가 봐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낯을 좀 가려서요.”
차현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서아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구나. 제가 아는 사람도 낯을 가린다고 하면서 정작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집에 가사도우미로 취직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낯을 가린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건가 싶을 때가 있어요.”
‘뭐지?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왜 우리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거지?’
서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차현준이 이해되지 않아 모래만 만지작거릴 뿐 대답하지 못했다.
“이렇게 같은 프로에 나온 것도 인연인데 서울 가서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요. 두 분을 위해서 제가 선물을 준비해 놓은 것도 있거든요.”
“선물요?”
차현준이 보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