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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Oct 04. 2024

61. 이 정도 쓰레기 일 줄은

젖은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자 더욱 또렷하게 울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 미성년인 이가영이었다. 이가영은 차현준과 같은 소속사 배우로 이번 드라마 서브 남주인 차현준과 함께 끼워 팔기로 캐스팅됐다. 드라마에서는 강우혁의 막내 여동생으로 나오는데 비중은 별로 없지만 얼굴은 제법 자주 등장하는 역할이었다.


어둠 컴컴한 나무 사이로 차현준이 바지를 내린 채 서 있었다. 흐느끼는 여자아이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차현준은 가영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자신의 다리 사이로 바싹 붙였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우혁이 성큼성큼 다가가며 차현준의 이름을 불렀다.


“야, 차현준, 너 뭐 하는 짓이야?”


흠칫 놀란 차현준이 몸을 휙 돌리더니 급하게 바지를 올렸다. 트레이닝복 바지는 내리기만큼이나 올리기가 쉬었던 모양인지 금방 옷매무새가 가다듬어졌다.  


“선배님, 여기는 어쩐 일로…….”


거기서 참았어야 하는데 우혁은 자기도 모르게 차현준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소리가 나면서 차현준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차현준의 멱살을 움켜준 우혁이 그를 소나무 줄기에 밀어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미성년자한테 무슨 짓이야? 이 새끼가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입술이 터진 차현준이 침을 퉤 뱉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히죽 웃었다. 


“씨발, 지금 누구를 때려?”

“미성년자 앞에서 바지 벗고 지랄하는 놈을 때렸다 왜?”


우혁이 강하게 나오자 차현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의 손을 밀어젖혔다. 우혁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벌벌 떨며 뒷걸음질 치는 가영을 향해 차현준이 소리 질렀다.


“야, 어딜 가? 너 이리 와 봐.”


도망가려던 가영이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차현준이 한 번 더 소리 지르자 부들부들 떨며 다가섰다.


“너 이리 와서 이 새끼한테 정확히 말해.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빨리!”


가영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강우혁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선배님. 그냥 현준 오빠랑 같이 산책 중이었는데 선배님이 오해하셨나 봐요.”

“뭐? 오해? 네가 울면서 사정하는 걸 똑똑히 들었는데. 쟤가 바지 벗고 너를 잡아끄는 걸 봤는데.”

가영은 양손을 깍지 낀 채 울음 섞인 목소리로 사정했다.


“선배님, 아니에요. 제발 그런 말씀 마세요. 이런 일 소문나면 저 다시는 일 못해요. 이제 겨우 얼굴 나오는 역할 맡기 시작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문나면 저는 정말 끝이에요.”


우혁은 기가 막혀서 차현준과 이가영을 번갈아 봤다. 가영은 우혁 때문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으면서도 우혁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싶어 뒤로 물러섰다.


차현준은 우혁에게 맞은 뺨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피가 섞인 침을 연신 뱉었다. 가영이 눈치를 살피며 뒷걸음질 치자 차현준이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나 참, 어이가 없네. 그래 내가 똥 밟았다.”


강우혁은 차현준을 노려보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걸음을 떼기 전에 차현준에게 붙잡혔다.


“그냥, 가시면 곤란하지요.”

“뭐라고?”

“엄한 사람을 이렇게 때려놓고 그냥 가시면 곤란하다고요.”

“이 새끼가 진짜!”


우혁이 몸을 돌려 주먹을 날렸지만 차현준에게 손목을 잡혔다.


“내가 아까처럼 또 맞을까 봐? 그건 아닌데.”


하지만 차현준은 우혁의 상대가 아니었다. 우혁은 그대로 차현준의 손을 뿌리치고 주먹으로 그의 배를 후려쳤다. 뒤로 벌렁 나자빠진 차현준이 배를 움켜쥐고 헉헉거렸다.


“닥쳐라. 내가 그 정도까지 가게 치지 않았다는 거 다 안다.”


차현준은 배를 움켜쥐었던 손을 내려놓고 히죽 웃었다.


“나는 지금 나가서 상해 진단서를 끊고 이가영 증인 녹취까지 해 놓을 겁니다. 선배님이 한마디만 떠들면 즉시 그거 풀어서 이 드라마고 뭐고 그냥 죄다 말아먹을 겁니다.”


우혁은 주먹을 움켜쥔 채 차현준을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입 꾹 다물고 계세요. 드라마 망치면 우리 둘 다 손해잖아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냥 술자리에서 술이나 마셨어야 했다. 아니다 울음을 들었을 때 재빨리 자리를 떴어야 했다. 그도 아니면 주먹질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차현준이 하는 짓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쓰레기인 줄은 몰랐다. 


“이번 드라마 끝나면 다시는 너랑 엮일 일 없었으면 좋겠다.”


우혁은 침 뱉듯 한마디 던지고 돌아섰다. 차현준은 허리를 굽히며 선배님 안녕히 가십시오란 말을 연달아했다. 아주 공손하게.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장 대표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가영을 이해할 수도 차현준을 용서할 수도 없었지만 우혁도 이 바닥 생활 십 년이었다. 그저 더러운 꼴을 본 게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차현준은 우혁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치근거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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