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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Nov 01. 2024

73. 바보가 된 기분

우혁은 회사에서 채영의 매니저를 만나 차를 바꿔 타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 주차장에 앉아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우혁은 자신이 한 번도 여자를 위해 선물을 직접 사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이가 없었다.


우혁에게 선물은 받는 거였지 주는 게 아니었다. 여자 친구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민석이 먼저 챙겼다. 해외에 나갔다 들어올 때도 민석이 빈손으로 들어가지 말라며 여자 친구의 취향에 맞을법한 선물을 손에 들려주었다. 


‘민석이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우혁은 자동차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주차장을 기웃거렸다. 백화점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자동차를 향해 걸음을 서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선물 하나도 사보지 못한 서른다섯 살짜리 남자라니 한심한 건지 우스운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아를 위해 직접 선물을 고를 생각을 하자 묘하게 긴장되면서도 흥분되었다. 이것도 연애의 한 과정인데 그동안 그걸 무시하고 살았다. 뭐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는 데만 익숙했던 삶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일 층 명품 주얼리 매장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오늘 같은 날은 집안에 틀어박혀서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그를 볼 것을 알지만 이대로 가만히 서아의 닫힌 방문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너무 비겁한 일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검은색 슈트 차림의 여자 직원이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빛내며 허리를 굽혔다. 매장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똑같은 스타일의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귀걸이가 일종의 유니폼처럼 느껴졌다.


“프러포즈 선물을 사려고 왔는데요.”


우혁이 쭈뼛 거리며 말을 하자 여자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아!’라고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도 오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강우혁 가짜 열애설 뉴스를 봤을 것이다. 여자는 프로답게 감정을 내보이지 않고 우혁을 상대한다.


“프러포즈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링을 많이 찾으시지요.”

“링이라면 반지요?”


우혁이 의외라는 듯 묻자 직원의 입매가 살짝 올라갔다.


“네, 반지가 일반적이지만 사이즈가 애매해서 네크리스로 대체하시는 분들도 제법 있으세요. 혹시 사이즈 가져오셨나요?”


우혁은 그제야 프러포즈는 당연히 반지라는 것, 그리고 반지는 사이즈가 필요하다는 걸 떠올렸다. 그동안 우혁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지 프러포즈를 한두 번 해본 게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프러포즈라고 하면 반지인데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백화점으로 달려오기만 하다니 뭔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어쩌지요? 제가 사이즈를 재서 오지 않았는데.”


우혁이 몹시 난감한 표정으로 여직원을 바라보자 그녀는 걱정하지 마시라며 세상 다정한 눈빛으로 웃었다.


“고액의 반지를 사이즈도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져가는 건 곤란하니까 네크리스로 하세요. 저는 사실 반지를 끼워주는 것보다 네크리스를 채워주는 게 여러모로 더 로맨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그런가요?”


여직원은 미소를 잃지 않은 표정으로 흰 장갑을 꼈다. 


“강우혁 배우님이 이렇게 직접 저희 매장을 찾아주셨으니 최고의 제품을 권해드리겠습니다.”


여직원은 안쪽에 들어가서 붉은색 케이스 몇 개를 들고 나왔다. 


“두 개의 링이 서로 교차되어 있는 네크리스는 진정한 결합과 영원한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이트골드에 다이아몬드 세팅으로 어떤 여성분이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제품입니다.”


여직원이 보여준 목걸이는 같은 디자인에 세팅이 조금씩 다른 버전이었다. 우혁은 그중 가장 화려하게 다이아몬드가 많이 박힌 목걸이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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