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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Nov 04. 2024

74. 도움이 될까 싶어서

목걸이를 포장하는 동안 우혁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다 지친 듯 한숨을 쉬었다. 뭔가 엄청 많은 정보가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는 또 어려운 것이 인터넷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을 마치고 쇼핑백에 목걸이를 넣어 들고 온 여직원이 진심 어린 미소를 띠며 물었다.


“더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네?”

“제가 프러포즈하시는 고객님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추가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게 많아서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아? 정말요?”


여직원은 주변을 살피는 척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는 김배우인가 하는 그 사람 말 믿지 않아요. 파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실은 목걸이 말고 더 필요한 게 뭐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직원은 한쪽 눈을 살짝 감으며 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꽃을 사셔야지요. 혹시 필요하시면 제가 지금 전화해서 맞춰드릴 수 있는데. 프러포즈 꽃은 파스텔톤 장미가 주인공인 게 예쁘니까 그렇게 하세요.”


우혁이 빙긋 웃으며 부탁드린다고 하자 여직원은 재빨리 전화기를 들고 꽃을 주문했다. 강우혁 배우님이 갈 거니까 급행으로 부탁한다고 제일 근사한 걸로 해달라는 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덕분에 프러포즈 준비를 수월하게 했습니다. 결혼반지도 이리로 올 테니 기다려주세요.”


우혁의 말에 여직원은 얼굴에 홍조를 띠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달콤한 너의 맛보면서 은강 커플 응원할게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기사에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


우혁은 진심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백화점을 나왔다. 그녀가 알려준 플라워 숍은 백화점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파스텔 핑크가 주인공인 꽃다발은 리시안셔스와 적당히 어우러져 화사하니 서아에게 잘 아울려 보였다.


우혁은 꽃다발을 차로 옮겨놓으며 자신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건 유치한 짓이라고 코웃음 쳐야 마땅할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민석이나 직원들 시켜 사 오라고 해야 그 다운 일이었다. 


그런데 서아에게 줄 물건은 누구 손도 거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전혀 번거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즐거운 마음까지 들었다. 운전을 하면서 수시로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흘끔거렸다. 반짝이는 장미와 자잘한 꽃송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이 핑크로 물드는 것만 같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은 서아와 그가 결혼을 결심했다는 점에 집중하고 싶었다. 김배우 아니라 누가 떠들어대도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억지로 결혼할 강우혁이 아니었다. 그걸 서아에게 알려줘야 했다.


집으로 들어가자 달콤한 냄새가 우혁의 후각을 자극했다. 달콤은 서아의 냄새였다. 서아의 맛이었다. 서아가 드디어 방문을 열고 나온 모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혁은 데크에 내려놓은 꽃다발의 안부가 걱정스러워 자꾸만 문 쪽을 흘끔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서아는 완전히 몰두한 얼굴로 케이크 틀에 초콜릿 무스를 채워 넣고 스패출러로 평평하게 고르는 중이었다. 우혁이 주방으로 들어갔지만 작업에 집중한 서아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케이크 만드는 거야?”


서아가 놀라서 스패출러를 든 채 어깨를 흠칫했다.


“놀랬잖아요.”

“홍차 냄새가 좀 나는데.”


우혁이 서아가 작업을 하고 있는 아일랜드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서아는 우혁의 시선을 회피하며 다시 초콜릿 무스 고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빠 때문에 모양이 어긋났잖아요.”

“그으래?”


우혁이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길게 늘어트렸다. 서아는 그럼에도 고개를 들지 않고 케이크의 모양 고르기에 열중했다. 우혁이 보기에는 그와 눈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케이크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제 만들려다 못 만든 케이크를 오늘 만든 거야?”


우혁은 ‘어제’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었다. 스패출러를 든 서아의 손이 멈칫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우혁이 재빨리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서아야!”


하지만 서아는 쌀쌀맞게 그의 손을 밀어젖혔다. 서아는 케이크를 냉동실에 넣고 싱크대에 물을 틀었다. 우혁이 다시 한번 서아의 이름을 불렀지만 쏴아 하는 물소리가 우혁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우혁이 테이블을 큰소리 나게 탁탁 쳤다.


“은서아! 사람이 부르면 쳐다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서아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잠시 눈을 감고 서 있더니 그의 앞에 가서 섰다. 


“말씀하시지요.”

“심부름 좀 해주라.”

“저는 이 집 가사도우미니까 당연히 강우혁 씨가 시키는 일을 해야지요. 무슨 일을 시키실 건가요?”

“내가 너무 무거운 물건이 있어서 가지고 들어오지 못했거든. 현관 앞에 있으니까 네가 가서 좀 가져올래?”


서아는 눈썹을 치켜세운 채 우혁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말도 없이 몸을 휙 돌려 현관으로 가서 덜컹 소리가 나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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