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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Nov 06. 2024

75. 망설임의 이유

짜증스러운 듯 문을 벌컥 열어젖힌 서아는 눈앞에 서 있는 꽃다발을 보고 멈칫거렸다. 파스텔 핑크색의 장미가 그녀가 평소에 본 꽃다발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고급스러웠다. 그녀는 무심코 우혁이 팬에게 받은 꽃다발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뭐야?”


서아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꽃다발을 우혁에게 건넸다.


“서아야, 우리가 어쩔 수 없어서 좀 이르게 결혼을 결정했지만 내가 너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여느 결혼과 다르지 않아. 너랑 부부가 되고 싶어서 하는 결혼이야.”


우혁의 고백에 서아는 갑자기 울컥하고 뜨거운 감정이 올라와 가슴을 쳤다. 


“그래서 바뀐 순서를 바로잡고 싶어서 꽃다발을 사 왔어. 은서아 나랑 결혼해 줄래?”


우혁은 자신이 서아에게 받아든 꽃다발을 다시 그녀에게 내밀었다. 서아는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한테 말하기를 망설인 건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나는 네가 프랑스로 공부하러 가야 해서 결혼하고 싶지 않을까 봐 망설인 거야!”

“정말이야?”


서아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은 꽃다발을 옆에 내려놓고 양팔을 벌렸다.


“바보야. 내가 설마 그깟 김배우나 차현준 같은 조무래기 무서워 결혼을 결정했겠니? 아니야. 네가 좋아서 너랑 같이 살 수 있으니까 하겠다고 생각한 거야. 조금 빨리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서아는 우혁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런데 왜 나는 오빠가 망설인다고 느껴졌지. 그 망설임이 자꾸 나를 위축시키고 힘들게 했는데.”

“나는 결혼하고 싶지만 너한테 과연 이 결혼이 옳은 선택일까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모르다니 우리 아직 멀었구나.”

“그러게. 앞으로 더 잘 알려면 이런 걸 목에 두르고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우혁이 가운뎃손가락에 목걸이 줄을 건채 주먹을 쥐고 서아의 눈앞에 내밀었다. 서아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우혁이 주먹을 폈다. 서아의 눈앞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링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내며 흔들거렸다.


“두 개의 링은 우리 두 사람 마음이래. 해석이 그럴싸하지?”


우혁이 웃으며 서아의 몸을 뒤로 돌렸다. 서아의 등과 우혁의 가슴이 밀착되다시피 하면서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우혁은 목걸이를 쥔 손으로 부드럽게 서아의 팔을 쓸어 올리며 그녀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그는 서아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옆으로 밀어낸 뒤 고리를 걸었다. 서아가 얽혀있는 두 개의 링을 만지작거렸다.


“반지는 사이즈를 몰라서 목걸이로 했어. 그리고 생각해보니 없어져도 살 수 있는 손가락보단 목숨을 걸고 있는 목에 걸어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우혁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서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웃으면서도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두 개의 링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다행이야. 오빠가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여서.”

“바보.”


우혁이 고개를 숙여 서아의 코를 살짝 쥐고 흔들었다.


“이럴 때는 코를 쥐고 흔드는 것보다 다른 걸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서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 눈이 바보는 자신이 아니라 우혁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우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아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나랑 결혼을 결심해줘서 고마…….”


우혁은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서아의 입술을 덮었다. 서아의 입술에서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맛이 났다. 우혁은 초콜릿을 녹여먹듯 서아의 입술을 탐하며 점점 더 깊게 파고들었다. 서아의 손이 우혁의 재킷 안으로 들어갔고 우혁의 손은 서아의 앞치마 리본을 풀었다. 


입술은 여전히 마주한 채 손만 분주히 움직였다. 방으로 들어갈 여력이 없었다. 아니 푹신한 소파가 있는 거실까지 갈 여유도 없었다. 우혁은 선채로 서아를 끌어안고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서아의 등이 벽에 닿을 때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두 개의 얽힌 링이 흔들리며 리듬을 탔다. 서아는 모서리에 불이 붙어 타 들어가는 종이가 된 것 같았다. 열기에 휩싸인 그녀의 몸은 손끝에서부터 불에 타들어가는 것처럼 열기에 휩싸였다. 


아일랜드 식탁을 움켜쥔 서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얼그레이 초콜릿 무스를 만들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이 뒤엉킨 것만 같았다. 우혁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 배우고 결혼을 하면 확실히 캐릭터 설정에 제한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자 스타들은 대부분 사십이 넘어야 결혼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 결혼이 억울한 모양이라고 넘겨짚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 떨리는 마음으로 우혁과의 결혼을 생각해도 되는 것이다. 


우혁은 서아를 안아들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 옆에 자신도 드러누웠다. 서아를 품에 안은 채 등 뒤로 껴안은 우혁이 앞에 늘어져 있는 목걸이 링을 만지작거렸다. 좀 전에 서아가 하듯 이번에는 우혁이 만지작거린다.


“오빠,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우혁이 서아의 어깨를 꽉 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서툴러도 같이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혼자가 아니니까.”


서아는 혼자가 아니라는 우혁의 말이 좋아서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말을 잊지 않으면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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