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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Nov 08. 2024

76. 결혼할 겁니다

서아와 우혁이 노크를 하자 안에서 막내 작가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어머? 벌써 오셨어요?”

“열한 시까지 오라고 한 거 아니에요?”


우혁이 시계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물었다. 현재 시간은 열 시 오십 분. 막내 작가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거냐며 어서 들어오시라고 했다. 우혁과 서아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쓰고 있던 구 작가가 서둘러 지우개질을 했다. 


“어서 오세요.”


피디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작가들과 조연출이 재빨리 따라 일어섰다. 우혁과 서아는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꼭 움켜쥔 채 그들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걸 것인지 모의하는 쥐처럼 무언가 할 말을 서로에게 미루고 있는 눈치였다.


눈치가 빠른 우혁이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고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말을 하는 게 여러분에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저희 결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네에? 결혼이라고요?”

“결혼이라고 하셨어요?”


피디와 구 작가가 앞다투어 진짜 결혼을 하기로 한 거냐고 물었다.


“아직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은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입니다. 저희 결혼할 겁니다.”

“잠깐만. 잠깐만. 정말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 이거지요?”


피디가 손을 들면서 우혁에게 몸을 기울였다. 우혁은 그런 피디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네, 결혼할 겁니다. 만약 달콤한 너의 맛에서 우리를 하차시키면 올 연말쯤 할 거고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과 상의해서 진행하겠습니다.”

“휴우. 이거 참.”


피디가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는 구 작가를 향해 살짝 눈짓을 했다. 그러자 구 작가가 커피를 사 오겠다며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저도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피디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우혁이 피식 웃었다.


“그냥, 상의 좀 하고 오겠다고 하셔도 됩니다.”

“그게 그러니까.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피디가 서둘러 자리를 뜨자 남은 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그때 갓 대학을 졸업한 신참내기 막내작가가 손뼉을 치며 나섰다.


“어머, 강 배우님 축하드려요. 저는 그래서 두 분이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고 은강 커플 실제 연애 맞는다고 했는데 다른 분들은 믿지 못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하아, 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요.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혁이 싱글거리고 웃자 누군가 막내 작가의 발을 쿡 밟았다. 막내 작가는 아얏 소리를 내지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본 서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써야 했다. 


피디와 구 작가는 그들 말대로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나갈 때는 따로 나간 두 사람이 들어올 때는 사이좋게 커피를 들고 같이 들어왔다. 


“우리 강 배우님 입에 방송국 커피가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피디가 손수 우혁과 서아 앞에 커피를 놓아주었다. 우혁이 커피에 입을 대는 사이 구 작가가 화이트보드에 커다랗게 썼다.


은강 커플 결혼 프로젝트!


우혁은 빙그레 웃으며 피디를 향해 물었다.


“플랜 비, 플랜 씨는 폐기처분하시는 모양이지요?”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제 양양 커피 하우스는 접고 결혼 준비에 본격 들어가야겠지요?”

“일정은 달콤 팀 하고 상의해서 진행하고자 하니 결혼 발표까지 알아서 진행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혁의 말에 피디가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굽신거렸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희야 감지덕지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단독으로 가는 것보다는 프로그램하고 같이 가는 게 훨씬 신뢰감이 가지요.”


우혁과 서아는 최대한 말을 아끼며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김배우 동영상 속 변조된 음성의 주인공이 민 기자 맞지요?”


구 작가의 질문에 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 언론 보도자료 대로 사진은 연출 맞습니다. 이왕이면 보기 좋은 사진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민 기자를 불러서 찍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짜라는 건 틀렸습니다.”

“민 기자는 도대체 자기한테 무슨 이득이 생긴다고 그걸 폭로한 겁니까?”

“나는 알고 있지만 이야기해도 믿지 않을 거라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우혁이 구 작가의 눈을 빤히 보면서 말했다. 구 작가는 우혁의 질책하는 눈빛이 찜찜해서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왜 나한테 저런 눈빛을 보내지? 내가 무슨 죄를 졌나? 강우혁이 모르게 내가 연루된 건가?’


구 작가는 우혁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돌려 화이트보드에 촬영 날짜를 쓰기 시작했다.


“우선 큰 그림을 그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촬영은 시치미를 떼고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만 잡겠습니다. 양양에서 은하수를 운영하느라 애쓴 서아 씨를 위해 우혁 오빠가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우혁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우혁이 동의 표시를 하자 구 작가가 자신감을 얻었는지 말을 빠르게 이어갔다.


“이번 촬영까지는 두 분의 결혼이 절대 소문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중대 발표를 예고하는 장면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외부에는 은강 커플이 하차한다는 식으로 소문을 내겠습니다.”


서아는 이런 식의 제작회의가 처음이라 그저 신기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구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결혼 발표와 진행 상황을 브리핑한 구 작가가 마지막에 우혁을 향해 물었다.


“결혼식 날짜를 정해 주시면 거기에 맞추어 다음 촬영 일정을 잡겠습니다.”


서아는 구 작가의 입에서 결혼식 날짜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결혼식이 실감이 났다. 우혁은 그런 서아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건 우리 서아와 다시 한번 상의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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