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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시청률

by 은예진

우혁은 서아에게 채영이가 치즈 나초를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고 자랑하는데 어째서 나는 그걸 해주지 않은 거냐고 투덜댔다.


서아는 별 걸 다 질투한다며 양파와 베이컨을 볶았다. 이번에는 캔 옥수수까지 넣어 더 푸짐하게 만들었다. 카망베르 치즈 외에도 슬라이스와 모차렐라 치즈까지 동원해 칼로리 폭탄을 만들었다.


“서아야 시작한다. 빨리 와!”


서아는 재빨리 오븐에 치즈를 집어넣고 고개를 돌렸다. 달콤한 너의 맛 시그널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은 민석까지 모여 본방을 보기로 했다. 치즈 나초와 캔 맥주를 가져다 테이블에 놓고 소파에 앉자 우혁은 자연스럽게 서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조금 떨어져 앉은 민석을 위해 서아가 옥수수와 치즈가 잔뜩 얹힌 나초를 내밀었다. 민석은 싱긋 웃으며 나초를 받아 들고 먹었다.


“채영이가 그렇게 칭찬할 만하네요. 채영이는 지금 드라마 때문에 이런 거 절대 먹을 수 없으니 머릿속에서 이 맛이 계속 떠올라 괴롭겠어요.”


서아가 생긋 웃으며 맥주를 들었다. 우혁이 리모컨으로 음성을 높이는 사이 민석이 서아의 캔 맥주를 슬그머니 뺏어 꼭지를 따 주었다. 맥주 캔 따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서아가 맥주를 받으며 눈을 마주치자 민석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달콤한 너의 맛에는 세 커플이 나오는데 비중 면에서 볼 때 은강 커플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예고편에 반지가 등장하면서 나머지 두 커플은 들러리 수준에 불과했다. 서아가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는 순간 우혁이 갑자기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지금 시청률 얼마나 될 것 같아?”

“나는 잘 모르지만 오 프로는 넘을 것 같은데.”


서아의 대답에 우혁은 고개를 흔들며 역시 너는 방송에 대해 모른다고 핀잔을 주었다.


“민석이 너는?”

“칠 프로?”

“나는 팔 프로 본다.”

“에이 자기 나오는 장면이라고 너무 많이 썼다.”


서아가 끼어들자 우혁이 발끈하며 오만 원 내기를 하자고 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선 서아가 방에 들어가서 오만 원짜리를 들고 나왔다.


“콜, 나는 정확히 오 점 오 프로!”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민석은 칠 프로를 외쳤다. 우혁은 그 위에 오만 원을 얹으며 팔 프로가 안 되면 뭔가 잘 못된 거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방송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 작가의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에 뜬 구 작가의 이름을 본 우혁이 두 사

람을 불러다 세워놓고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우혁 오빠!”


구 작가의 목소리가 몹시 들떠 있었다. 서아는 구 작가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아무래도 자신이 오만 원을 잃은 거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구작 시청률 나온 모양이네.”

“네, 나왔어요.”


구 작가의 목소리가 들뜬 수준을 넘어 울먹거림을 바뀌었다. 세 사람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얼마나 나왔기에 구작 목소리가 이 정도인가?”

“그냥 알려드리기에는 너무 아쉬우니 한 번 맞춰보세요.”

“나는 한 팔 프로 예상했는데 너무 과한가?”

“꺅 오빠 대박인데. 우리 사무실에 제일 잘 맞춘 사람보다 정확해요. 칠 점 팔 프로 나왔어요.”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던 민석의 표정이 제일 먼저 환해졌다. 서아는 그런가 보다 했지만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시청률이라는 것을 아는 민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수고했네. 구작.”

“수고는 오빠랑 서아 씨가 했지요. 그런데 참, 가짜 열애설요 그게 도리어 도움이 됐어요. 어쩌다 보니 우리가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됐어요. 아무래도 김배우한테 고맙다고 꽃바구니라도 보내야 할까 봐요.”


구 작가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계속하고 싶어 했지만 주변에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구 작가는 전화를 끊기 전에 장 대표님께도 안부 전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우후!”


우혁은 테이블에 있는 십오만 원을 모두 들고 이마에 붙인 채 자랑스러운 듯 소파에 드러누웠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웠단 말이야.”

“그러게 오빠 부자 돼서 좋겠네. 우리 결혼하면 공동재산이니까 그 돈 나주면 안 될까?”


서아가 장난스럽게 우혁의 옆에 앉아 이마에 얹어놓은 돈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우혁은 재빨리 돈을 움켜쥔 채 몸을 뒤로 돌리며 말했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돈 욕심 있구나?”

“돈 욕심이라기보다는 결혼하면 니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니 돈 아니야? 프러포즈 한 시청률로 딴 돈은 나한테 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단 말이야.”

“싫어. 절대 줄 수 없어. 이거 내가 내기에서 딴 돈이야. 욕심내지 마!”

“와, 오빠 알고 봤더니 경제관념 투철하네. 다른 연예인들처럼 후배들에게 돈 꿔줬다 못 받는 일 별로 없겠어.”


서아의 말에 뒤에 앉아 있던 민석이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놀란 서아가 민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예요? 우리 우혁 오빠 막 보증 서서 돈 날리고 그런 사람이에요?”


갑작스러운 서아의 질문에 놀란 민석이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쩔쩔맸다. 서아의 뒤에서 그런 민석을 지켜보던 우혁이 눈을 부라렸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우혁에게 뼈도 못 추릴 분위기였다.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옛날에 보증 섰다가 집을 날린 적이 있어서 그때 생각이 났을 뿐입니다.”


민석은 집을 날린 적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서아는 아무래도 수상해서 우혁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우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서아가 벌떡 일어서 우혁 오빠를 부르며 다녔지만 우혁은 어디로 숨었는지 머리카락 하나 찾기가 어려웠다.


“정말이에요? 텔레비전에서 보면 연예인들이 그렇게 보증 섰다 망한 사람들 많던데 우혁 오빠도 뭐 있는 거예요?”


민석이 별거 아니라는 듯 걱정하지 말라고 서아를 달랬다.


“그런 거 아니고 예전에 한 번 제법 큰돈을 영화감독한테 빌려줬다 날린 적 있거든요. 당시에는 악재가 겹쳐서 우리 회사 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던 때라 우혁이가 집을 팔아서 해결한 적 있어요.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서아 씨가 너무 진지해지니까 우혁이가 도망가 버린 거예요.”

"우혁 오빠 마음고생이 컸겠다.”


서아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 감독이 나중에 영화 수입하는 데 도움을 줘서 덕분에 많이 벌었어요.”


민석의 말에 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캔 하나를 가지고 여러 번 마셨더니 미지근한 게 영 맛이 없었다. 역시 서아 입에는 술이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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