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

by 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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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 오디오북을 시작했다가 집중이 되지 않아서 포기했다. 당시 책을 잘못 선택한 것도 한몫했는데 지금처럼 다양한 책이 나오지 않았기도 했다. 자차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새롭게 시작한 오디오북 청취는 꽤 성공적이다.


박정민의 무제 출판사에서 펴낸 책들, 김영하의 '다다다' 등 총 89권의 책을 들었다. 물론 이중에는 듣다 만 책들도 있어서 온전히 다 들은 책은 훨씬 적을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 찰스 두히그의 '대화의 힘' 같은 책은 한 시간 정도 듣다 중단했다. 가장 좋았던 책은 유병욱의 '인생의 해상도', 박상현의 '친애하는 슐츠 씨', 박지현의 '참 괜찮은 태도' 세 권이었다. 특히 '친애하는 슐츠 씨'는 맨 그게 그거 같은 책들 사이에서 단연코 빛나는 책이었다. 편견과 선입견 속에 사는 나의 뒤통수를 한 대 쳐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서 그 신선함에 충격이었다. 인류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배재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무지에서 비롯되었는지 하나하나 짚어 주는 동안 내 눈이 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디오북을 듣노라면 어린 시절 듣던 라디오 생각이 난다. 나는 주말이면 엄마랑 같이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을 열심히 들었다. 내용은 중고등학교 때 아이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던 사랑의 체험수기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아 각색해서 만든 드라마였는데 아마도 각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게 논픽션일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미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와 엄마는 시간 맞추어 라디오에 귀를 대고 짜릿한 시간을 보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라는 제목의 180분짜리 콘서트를 kbs에서 봤다. 조용필의 노래는 어느 하나 추억의 곡이 아닌 게 없지만 특히 감상에 젖게 만드는 노래가 '그 겨울의 찻집'이다. 당시 사랑의 계절은 김자옥이 진행했는지 아니면 왕영은이 진행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역은 왕영은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소녀가 나이 많은 남자를 사랑했는데 그게 알고 보니 친아버지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신파였는데 듣는 어린 나는 눈물 나게 슬펐다. 왕영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했던 아저씨가 기다리는 찻집을 외면하며 불렀던 '그 겨울의 찻집'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나에게 이 노래는 조용필의 노래가 아니라 왕영은의 노래였고 사랑의 계절 그 자체였다.


에세이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시간 날 때마다 여유 있게 들을 수 있는데 이게 소설이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몇몇 소설들은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최근 나온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인 '미로장의 참극'과 히라시노 게이고의 '가공범'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아마도 이걸 책으로 읽었다면 후반부는 대충대충 넘어가며 재빨리 결과를 보기 위해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디오북은 그럴 수가 없으니 꼼짝없이 식음을 전폐까지는 아니지만 멈추지 못하고 들었다. 소설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추리 소설은 별것 아닌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게 진짜 힌트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는 범인을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며 들었지만 제대로 맞추지 못하기도 하고 맞추기도 했다. 오랜만에 추리소설에 빠져 세상 시름을 잊었다. 여름에 왜 추리소설을 읽으라고 추천하는지 알만하다. 몰입은 확실히 더위를 잊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오자 갑자기 떠오르는 책이 있다. 지금까지 들은 오디오북중 가장 재미있었던 책을 빠트렸다. 재미로 따지자면 최고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들었던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다. 이영도 작가가 판타지 소설계의 대부라는 것은 알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다. 네이버에서 '눈물을 마시는 새'를 오디오북으로 만들었다며 문우에게 추천받아 들었을 때 나는 아이스크림을 아끼며 먹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었다. 소설도 좋고 만듦새도 좋아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는 꼭 들어보기 권한다. 이거야말로 진짜 개미지옥이다. 멈추기 쉽지 않으니 다리라도 다쳐서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들어가서 '눈물을 마시는 새'를 검색하기 바란다. 지루한 시간을 접어서 통과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과 달리 독서의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종이책은 기본이지만 책을 가지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때 핸드폰만 있으면 읽을 수 있는 전자책과 이어폰으로 듣는 오디오북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핸드폰으로 보는 전자책은 영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몰입하게 되면 종이책과 별 차이가 없다. 그 몰입이 쉽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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