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아침

by 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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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세이두가 쨍한 코발트블루색 상의를 입고 등장하자 내가 지금 프랑스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아름다운 파리의 정경이 화면 가득 펼쳐졌고 혼자 걷는 레아 세이두의 모습이 화룡점정처럼 장면을 완성시켰다. 영화 속에서 레아 세이두는 그다지 예쁜 얼굴이 아닌데 매력이 넘친다. 아마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느꼈던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야수처럼 거칠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 때문이지 모르겠다.


'어느 멋진 아침'에서 레아 세이두가 분한 산드라는 오 년 전에 남편이 죽고 홀로 여덟 살 난 딸 린을 키우고 있는 통번역 사다. 남편이 죽은 이후로 딸을 키우랴 희귀병에 걸린 아버지를 보살피랴 사랑 따위 잊고 살았다. 그랬던 산드라가 우연찮게 죽은 남편의 친구 클레망을 만나면서 흔들리게 된다.


린 또래의 아들과 아내가 있는 클레망과 산드라는 예의를 지키며 서로를 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화학 우주학자인 클레망은 남극에서 연구하다 돌아오면서 아내와의 사이가 순탄치 않았다. 가정이 있는 클레망과 산드라의 사랑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 싹을 틔웠으니 순탄하기 어려웠다.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느라 지쳐있던 산드라에게 수년만에 찾아온 사랑은 그녀의 가슴에 불꽃을 일으켰지만 어느 순간 그 불길에 휩싸여 타버릴 위험이 있는 사랑이었다. 산드라도 클레망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사랑에 빠졌으니 말이다.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와중에 산드라는 병든 아버지를 보살펴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늙은 부모를 보살펴야 하는 자식의 입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구나 생각했다. 서양에서는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진 우리와 다르게 자식은 부모에게서 일찍 독립하고 이후로 서로의 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이나 부모가 늙어 병들면 자식들은 부모를 보살피느라 동분서주한다.


철학 교수였던 산드라의 아버지 게오르그는 벤슨 증후군이라는 신경 퇴행성 시각신경 질환을 앓고 있다. 증세는 알츠하이머와 비슷하게 기억을 잃고 있지만 그는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후두피질이 위축된 뇌는 눈에 틀린 명령을 내려 제대로 앞을 볼 수 없게 만든다. 평생 책을 읽고 쓰던 사람답게 책으로 뒤덮인 성과 같은 집에 살던 게오르그는 영혼을 잃어버린 채 연인인 레일라만 찾아댄다.


산드라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했지만 병든 게오르그를 보살피는 것이 자신의 두 딸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적극적으로 전남편의 병원 일에 나선다. 그녀가 돕는 것은 남편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두 딸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산드라의 뺨이 소리 없이 젖는다. 아버지가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사랑하는 클레망과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도 가슴 아프다. 레아 세이두의 부은듯한 눈꺼풀은 그런 산드라의 슬픔을 잘 보여준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고 그가 소중하게 여기던 책을 제자에게 나누어 주면서 산드라는 아버지의 영혼은 그 책 속에 담겼다고 딸 린에게 말한다. 아버지의 습작 노트에는 상실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으려 노력하던 흔적이 보인다. '어느 멋진 아침'은 아버지가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한 자서전의 제목이었다.


산드라는 비록 병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글쓰기를 통해 자신에게 찾아온 시련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만으로도 산드라는 위로받을 수 있었다. 아내와 이혼하고 산드라를 찾아온 클레망과 린 세 사람은 샤크레쾨르 대성당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려다본다. 산드라에게 전쟁 같은 삶의 터전이었던 파리가 지금만은 관광객의 시야처럼 아름답게 펼쳐졌다.


남편이 어린 아르바이트생의 엄마가 응급실에 가느라 출근할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나온 아르바이트생은 엄마의 혈압이 300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아버지와 별거 중인 엄마를 모시고 응급실에 갔는데 엄마는 혈압이 그렇게 올라갔는데도 주사를 맞지 않고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단다. 돈 때문에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해서 어린 딸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무책임한 아르바이트생 엄마의 행태에 분노했다. 혈압이 300이면 정말 위험한 순간인데 돈타령을 하며 딸을 공포에 떨게 만든 엄마는 나쁜 사람이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딸 앞에서 대단한 수술도 아니고 응급실 주사비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지능이 모자라거나 딸의 입장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산드라가 아버지의 망가진 육체 앞에서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끝까지 싸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딸 앞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돈타령을 한 사람은 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 것인지 알까?


우리는 모두 늙고 병들고 아프고 죽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느 멋진 아침'은 있을 것이고 그런 아침이면 잠시 위의 포스터 속 세 사람처럼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말고 잘해야 한다지만 반드시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서 우리는 잘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지만 노력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최선까지 안 해도 상관없다. 노력해 준다면 그것으로 나를 떠나보야 할 사람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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